[울지마 키이우]② 국제정치의 냉엄한 현실…‘안전보장’과 ‘영토 회복’의 딜레마 [취재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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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우크라이나 특별 취재팀은 1월 한 달 동안 지난해 12월 우크라이나 출장 경험을 취재 후기 형태로 전합니다. 두번째 후기로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을 앞두고 제기된 우크라이나 ‘안전 보장’ 문제와 현재의 전황을 짚어봅니다
■ 30여 년간 계속된 '말뿐인 안전 보장' ..."전쟁 이후가 더 불안"
개인적으로는 이번이 3번째 우크라이나 취재였다. 첫번째 우크라이나 방문 취재는 지난 2007년이었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기존의 여러 핵 폐기 방식이 다시 검토되던 때였다. 우크라이나는 '자발적인 핵 폐기 모범국가' 였다. 당시만 해도 '우크라이나식 핵 폐기' 방식에서 조금이나마 '북핵 폐기의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국내외적으로 연구가 활발하던 시기였다. 그때 외교안보 분야를 담당하는 기자로서 이를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 우크라이나와 첫 인연을 맺었다. 두 번째 방문은 2011년 <방사능은 국경이 없다>라는 제목의 체르노빌 원전 사고와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다룬 다큐멘터리 제작 때였다.
우크라이나는 구 소련 붕괴 뒤 국내에 있던 천8백여 기의 핵탄두를 러시아와 서방세계로 이전했다. 세계 3위의 핵무기 보유국에서 비핵국가가 된 것이다. 처음엔 안보를 이유로 핵보유국으로 남겠다고 했다가 비핵화로 입장을 바꿨다. 국제사회 압력도 컸지만 경제적 지원 카드와 함께 강대국들의 안전보장 약속을 믿었던 것이다. 미국과 영국은 물론 러시아도 한결같이 우크라이나가 자국 내 핵무기를 이전하면 '영토 보장'과 '안전보장'을 하겠다고 굳게 약속했다. 이렇게 해서 1994년 '부다페스트 각서'가 체결됐다.
■ " 휴지 조각 '부다페스트 각서'...."단 하루도 제 구실 한 적 없어"
그러나 지난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인 크림반도를 전격적으로 합병하면서 '부다페스트 각서'는 순식간에 휴지 조각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러시아는 2022년 2월 전면 침공에 나섰다. 수많은 '안보 전문가'들은 그때까지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전면전을 벌이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엄청난 국제사회 제재를 감내해야 할 러시아로선 침공의 실익이 없다고도 했다. 전면전이 발발하고 나서야 '전쟁의 징후가 있었다'는 분석 기사와 연구들이 쏟아졌다.
지난달 5일은 '부다페스트 각서' 체결 3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영상 메시지를 통해 "이 문서가 제 구실을 한 적은 단 하루도 없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실효성 있는 안전보장'과 '진정한 동맹이 현실적인 안보 토대'라고 말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 NATO 가입이나 EU 회원국 되기를 희망한다는 말이었지만 이에 호응하는 NATO와 EU회원국은 없었다.
■ 교전 뜸한 북부전선도 '살벌'...우크라이나군 "촬영 불허...드론의 표적 될 수 있어"
지난 2007년 방문 시에는 우크라이나 페르보마이스크에 있는 핵미사일 기지를 취재하고, 핵 과학자들을 모아놓은 STCU (Science & Technology Center in Ukraine) 를 취재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내심 이 시설들을 둘러볼 수 있을까 취재 여부를 타진했다. 하지만 불가능했다. 관계기관들은 구체적인 불허 이유를 밝히진 않았다. 전쟁 중 민감한 군 시설이나 보안 기관 취재를 외국 언론사에 허용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취재의 어려움은 이 뿐만이 아니었다 . 우리는 우크라이나 체류 기간 벨라루스와 맞대고 있는 북부 전선 최전방 16킬로미터 지점까지 접근했지만, 우크라이나군은 벙커 등 군사시설과 중무장한 군인들, 심지어 철조망까지도 일절 촬영하지 못하게 했다. 러시아 드론 공격 시 손쉬운 표적이 될 수 있다는 게 촬영 불허의 이유였다.
나는 지난 2011년에도 체르노빌 원전 지대로 진입할 당시 자동차로 이 길을 따라 올라갔었다. 그리고 13년 만에 같은 길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예전엔 볼 수 없었던 수많은 벙커들이 도처에 세워져 있는 생경한 풍경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건장한 체구의 중무장한 우크라이나 병사들이 어깨에 AK-47 자동소총을 메고 긴장되고 무뚝뚝한 표정으로 경계를 서고 있었다.
현지 취재 기간 만났던 우크라이나 군인과 민간인들은 한결같이 '승리'를 외쳤다. 전쟁 발발 만 3년이 다 되어가는 상황에서 수십만 명의 인명피해를 감수하며 전쟁을 치렀는데, 러시아가 침공해서 점령한 땅을 그대로 차지하게 놔둘 수 없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민간인 신분으로 러시아에 끌려간 이들의 석방을 촉구하는 집회에서조차 " 결코 이 상태에서 전쟁을 끝낼 수 없다"는 목소리가 컸다. '종전'을 추진하겠다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을 '믿지 못한다' 발언도 나왔다. '언제 끝날지 모를 전쟁에 천문학적인 돈을 계속 쏟아부을 수는 없다'고 말하는 트럼프를 우크라이나인들은 불안한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 우크라이나 군 당국, 북한군 관련 동영상 12월 집중 배포
그러나 동부 전선과 남부 전선을 포함해 거의 모든 전선에서 우크라이나 군은 여전히 러시아군의 강력한 압박에 직면해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도 자국군이 점령한 러시아 내 쿠르스크에서 마을들을 하나씩 하나씩 러시아군에 다시 내주고 있다는 서방 언론의 보도를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특수작전부대(CCO)를 포함해 전방에서 드론 공격을 주도하는 부대들이 북한군을 공격하는 장면이라며 12월들어 유난히 많은 동영상을 배포했다. 대부분 드론 공격을 받는 병사들이 눈 덮인 평원에서 숨을 곳을 찾거나 우왕좌왕하다 쓰러지는 모습들이었다. 우크라이나 군 당국은 연일 드론으로 북한군을 공격하는 영상, 북한군이 치료받는 쿠르스크의 병원이라는 영상, 심지어 북한군 사상자들의 시신 영상이라는 것까지 공개했다. 북한군의 투입으로 전세가 러시아에 유리하게 전개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로 읽혔다.
그렇다고 우크라이나 정부가 '우리는 이기고 있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12월 18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빼앗긴 크림반도와 돈바스를 되찾을 힘이 없다"고 밝혔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승리 계획'을 마련했다며 미국 바이든 행정부와 유럽연합에 더 강력한 지원을 요구하던 때와는 확연히 달라진 태도였다. 그러면서 "우리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협상 테이블에 앉도록 국제 사회의 외교적 압력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실상 확실한 '안전 보장'을 전제로 '영토 포기'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대내외에 천명한 셈이었다. 트럼프 당선 이후 더 엄혹해질 국제 정세에 대한 현실적 진단이었을까.
■ 지워질 수 없는 전쟁의 상흔....무너진 다리· 학살 현장 그대로
전쟁 초기 우크라이나는 벨라루스를 경유해 북부 전선에서 쇄도하는 러시아군에 수도 키이우까지 위협당했다. 키이우 인근 부차와 이르핀에서 주민들까지 스스로 무장을 하고 러시아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인 뒤에야 간신히 수도를 지켜낼 수 있었다. 부차와 이르핀에는 러시아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의 상흔이 깊이 각인돼 있다는 것을 취재진은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수많은 피가 땅에 뿌려지는 가운데 우크라이나는 영토의 20퍼센트 가까이를 러시아에 빼앗겼다. 서방은 우크라이나에 많은 무기를 지원하면서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본토를 깊숙이 공격하지는 못하도록 미사일 사거리를 제한했다. 확전을 막는다는 명분이었다. 미국은 지난해 말에야 사거리 제한을 완화했지만 이미 전세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된 뒤였다. 하지만 그 기간 '핵 국가는 비핵국가를 핵으로 위협하지 않는다'는 국제 비확산 조약 NPT의 대전제도 무너졌다. 전쟁 기간 러시아는 여러 차례 핵무기 사용을 경고하며 위협했다. 핵 관련 교리와 법령도 바꿨다. 안보 위협을 빌미로 비핵국가를 공격할 수 있는 명분과 법리를 만든 것이다.
■ 계속되는 핵 위협...법령까지 바꾼 러시아
러시아보다 한발 앞서 핵 관련 교리와 법령을 바꾼 나라는 북한이다. 러시아는 2024년 6월 북한과 군사동맹에 준하는 조약을 체결했다. 이른바 군사적 차원의 '자동 개입 조항'도 포함됐다. '설마 그 조항이 작동할 일이 있겠냐'며 애써 평가 절하하려 해도 외교·안보를 다루는 사람들은 이게 얼마나 의미심장한 것인지 잘 안다. 대한민국으로서는 북핵 위협에 더해 또 다른 안보 시험대에 오르게 된 것이다. 러-우 전쟁이 끝나면 물론 상황도 달라지겠지만 한번 체결된 조약이 유명무실해지거나 폐기되는 것은 쉽지 않다. 게다가 국제정세는 늘 기대나 전망과 달리 전개된다. 대책 없는 '희망적 사고' 와 다가오는 위기를 애써 '평가절하' 하려는 이상한 관성들이 더 큰 피해를 초래할 뿐이다.
손자병법에는 적대적 상대방을 다루거나 전쟁에 대처하는 4가지 방안 가운데 2가지 '상책'을 이렇게 언급한다. 첫째는 '벌모(伐謀)'. 즉 상대가 전쟁이나 도발을 모의하고 기도하는 단계에서 그 계획과 의지를 좌절시키는 것. 둘째는 '벌교(伐交)'. 쉽게 말하면 상대방이 '군사 동맹'을 만들지 못하게 외교로 대처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상책'이요. 나머지 2가지는 '하책'에 해당하는 것으로 전쟁 개시를 의미하는 '벌병(伐兵)'과 '최하책'인 '공성(攻城)'이 그것이다. '공성'은 성을 공격한다는 뜻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는 상대방을 공격하느라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이 이 전쟁을 통해 친구를 얻었는지는 전쟁이 끝나봐야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안보적 측면에서 손에 카드를 하나 더 쥐게 됐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러시아는 전쟁 전 연간 교역규모가 연간 270억 달러에 달하던 대한민국을 전쟁 기간 '비우호 국가'로 지정하고, 교역규모가 4억 달러도 채 안 되던 북한은 사실상의 군사동맹으로 격상했다. 소련 붕괴와 한·소 수교로 폐기됐던 냉전 시대 북한과의 상호 군사원조 조약을 복원한 것이다.
■ 남북한 모두 개입...러-우 전쟁의 한반도에 미칠 '나비효과' 주시해야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은 대한민국의 안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남북한 모두 깊숙이 개입돼 있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이 전쟁의 나비효과가 어떻게 나타날지 주시해야 하는 이유다. 그것이 '남의 나라 전쟁'으로 치부할 수 없는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전쟁 발발 후 대한민국은 '자유'와 '가치 기반 외교'를 강조하는 현 정부의 기조하에서 미국 및 서방세계와 보조를 맞추기로 하고 수십억 달러 지원을 약속했다. 발표대로라면 2024년에 3억 달러가 지원됐을 것이고 올해부터는 20억 달러가 추가로 지원될 것이다. 지난해 10월에는 대통령이 직접 "살상 무기를 직접 공급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러한 부분에서도 더 유연하게 북한군의 활동 여하에 따라 검토해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김정은은 적지 않은 '병력'을 러시아에 보냈다. 그 병력이 폭풍군단으로 알려진 특수군 병력일지, 일부 분석처럼 범죄자 등 군 이외의 다른 인력까지 훈련시켜 보낸 것인지, 도대체 어떤 편제하에서 전선에 투입된 것인지, 북한군 파병의 정확한 실체는 시간이 지나면 더 구체적으로 드러날 것이다. 다만 이 전쟁이 길어진다면 사상자를 대체하고 피로가 누적된 병력을 교대시키기 위해 북한이 파병하는 연인원은 계속 늘어날 수도 있다. 이 파장이 북한 내부에 미칠 영향도 주시할 부분이다.
취재진은 우크라이나 군 관계자에게 북한군 사상자가 그렇게 많이 발생한다고 밝히고 있는데 "왜 북한군 포로는 발생하지 않고 있는가?" 물었다. 중령 계급의 한 우크라이나 정보장교는 이 질문에 "북한군이 항복을 거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드론 공격 시 투항을 권유하는 음성 방송이나 전단지를 뿌렸는지를 묻는 질문에 대해선 대답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군은 며칠 뒤 북한군 포로를 잡았다고 밝혔다가 심각한 부상을 당한 이 병사가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우크라이나군이 북한군 포로 발생에 대비하고 있는 구체적인 취재 내용과 전단지 작성의 배경 등은 이어지는 취재 후기에서 상세히 다룰 것이다.
■ 북한 병력 대부분 쿠르스크에 투입된 듯....우크라 정보 장교, "북한군이 항복하지 않고 있다"
현재 우크라이나에 투입된 '북한군 관련 영상'들이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쿠르스크에서 집중적으로 나오고 있다는 점으로 미뤄볼때, 러시아가 쿠르스크를 완전히 탈환하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고 바로 이곳에 북한 병력이 집중 투입됐음을 추론해 볼 수 있다. 물론 그 정확한 정황은 여전히 파악이 어렵다. 다만 현지에서 파악되는 정보들을 종합해 볼 때 북한 병력이 쿠르스크에 집중적으로 투입된 것은 사실일 가능성이 커보인다. 러시아 입장에서도 북한군 투입으로 우크라이나 정예 병력을 분산시킬 수 있다면, 푸틴의 자존심이 걸린 쿠르스크 탈환에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법하다.
쿠르스크는 2차대전 당시 러시아와 독일이 수천 대의 전차를 동원해 격돌했던 곳이다. 당시 러시아군은 파죽지세의 독일군 전차들을 막아내느라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 결국 승리했다. 독일군 전차 1대를 파괴하기 위해 러시아군 전차 3대가 달려들어 희생끝에 간신히 '승리의 땅'이 됐는데 지금 또다시 격전지가 됐고 여기에 북한 병력 상당수가 투입된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 긴 전쟁으로 힘에 부치는 것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압도적인 국력의 차이를 고려할 때 우크라이나가 더 힘겨워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가 종전을 압박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지원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그 예측은 어렵지 않다. 양측간 치열한 공방전이 계속되는 현 상황에서 종전이 하루아침에 이뤄지긴 어렵다.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한 러시아를 상대로 큰 피해와 사상자를 안긴 우크라이나의 군사력은 유럽에서 러시아 다음이라고 할 정도로 강해졌다. 우크라이나의 전쟁 수행 능력이 크게 향상됐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드론을 전투에 활용하는 능력은 러시아를 능가한다. 그럼에도 우크라이나가 향후 더 불리한 조건에서 협상 테이블에 앉을 가능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지금도 우크라이나는 최전선의 마을들을 하나씩 잃고 있다. 불행히도 시간은 우크라이나의 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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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지마 키이우]② 국제정치의 냉엄한 현실…‘안전보장’과 ‘영토 회복’의 딜레마 [취재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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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5-01-09 07:00:21
- 수정2025-01-09 07:21:25
■ 30여 년간 계속된 '말뿐인 안전 보장' ..."전쟁 이후가 더 불안"
개인적으로는 이번이 3번째 우크라이나 취재였다. 첫번째 우크라이나 방문 취재는 지난 2007년이었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기존의 여러 핵 폐기 방식이 다시 검토되던 때였다. 우크라이나는 '자발적인 핵 폐기 모범국가' 였다. 당시만 해도 '우크라이나식 핵 폐기' 방식에서 조금이나마 '북핵 폐기의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국내외적으로 연구가 활발하던 시기였다. 그때 외교안보 분야를 담당하는 기자로서 이를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 우크라이나와 첫 인연을 맺었다. 두 번째 방문은 2011년 <방사능은 국경이 없다>라는 제목의 체르노빌 원전 사고와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다룬 다큐멘터리 제작 때였다.
우크라이나는 구 소련 붕괴 뒤 국내에 있던 천8백여 기의 핵탄두를 러시아와 서방세계로 이전했다. 세계 3위의 핵무기 보유국에서 비핵국가가 된 것이다. 처음엔 안보를 이유로 핵보유국으로 남겠다고 했다가 비핵화로 입장을 바꿨다. 국제사회 압력도 컸지만 경제적 지원 카드와 함께 강대국들의 안전보장 약속을 믿었던 것이다. 미국과 영국은 물론 러시아도 한결같이 우크라이나가 자국 내 핵무기를 이전하면 '영토 보장'과 '안전보장'을 하겠다고 굳게 약속했다. 이렇게 해서 1994년 '부다페스트 각서'가 체결됐다.
■ " 휴지 조각 '부다페스트 각서'...."단 하루도 제 구실 한 적 없어"
그러나 지난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인 크림반도를 전격적으로 합병하면서 '부다페스트 각서'는 순식간에 휴지 조각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러시아는 2022년 2월 전면 침공에 나섰다. 수많은 '안보 전문가'들은 그때까지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전면전을 벌이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엄청난 국제사회 제재를 감내해야 할 러시아로선 침공의 실익이 없다고도 했다. 전면전이 발발하고 나서야 '전쟁의 징후가 있었다'는 분석 기사와 연구들이 쏟아졌다.
지난달 5일은 '부다페스트 각서' 체결 3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영상 메시지를 통해 "이 문서가 제 구실을 한 적은 단 하루도 없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실효성 있는 안전보장'과 '진정한 동맹이 현실적인 안보 토대'라고 말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 NATO 가입이나 EU 회원국 되기를 희망한다는 말이었지만 이에 호응하는 NATO와 EU회원국은 없었다.
■ 교전 뜸한 북부전선도 '살벌'...우크라이나군 "촬영 불허...드론의 표적 될 수 있어"
지난 2007년 방문 시에는 우크라이나 페르보마이스크에 있는 핵미사일 기지를 취재하고, 핵 과학자들을 모아놓은 STCU (Science & Technology Center in Ukraine) 를 취재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내심 이 시설들을 둘러볼 수 있을까 취재 여부를 타진했다. 하지만 불가능했다. 관계기관들은 구체적인 불허 이유를 밝히진 않았다. 전쟁 중 민감한 군 시설이나 보안 기관 취재를 외국 언론사에 허용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취재의 어려움은 이 뿐만이 아니었다 . 우리는 우크라이나 체류 기간 벨라루스와 맞대고 있는 북부 전선 최전방 16킬로미터 지점까지 접근했지만, 우크라이나군은 벙커 등 군사시설과 중무장한 군인들, 심지어 철조망까지도 일절 촬영하지 못하게 했다. 러시아 드론 공격 시 손쉬운 표적이 될 수 있다는 게 촬영 불허의 이유였다.
나는 지난 2011년에도 체르노빌 원전 지대로 진입할 당시 자동차로 이 길을 따라 올라갔었다. 그리고 13년 만에 같은 길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예전엔 볼 수 없었던 수많은 벙커들이 도처에 세워져 있는 생경한 풍경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건장한 체구의 중무장한 우크라이나 병사들이 어깨에 AK-47 자동소총을 메고 긴장되고 무뚝뚝한 표정으로 경계를 서고 있었다.
현지 취재 기간 만났던 우크라이나 군인과 민간인들은 한결같이 '승리'를 외쳤다. 전쟁 발발 만 3년이 다 되어가는 상황에서 수십만 명의 인명피해를 감수하며 전쟁을 치렀는데, 러시아가 침공해서 점령한 땅을 그대로 차지하게 놔둘 수 없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민간인 신분으로 러시아에 끌려간 이들의 석방을 촉구하는 집회에서조차 " 결코 이 상태에서 전쟁을 끝낼 수 없다"는 목소리가 컸다. '종전'을 추진하겠다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을 '믿지 못한다' 발언도 나왔다. '언제 끝날지 모를 전쟁에 천문학적인 돈을 계속 쏟아부을 수는 없다'고 말하는 트럼프를 우크라이나인들은 불안한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 우크라이나 군 당국, 북한군 관련 동영상 12월 집중 배포
그러나 동부 전선과 남부 전선을 포함해 거의 모든 전선에서 우크라이나 군은 여전히 러시아군의 강력한 압박에 직면해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도 자국군이 점령한 러시아 내 쿠르스크에서 마을들을 하나씩 하나씩 러시아군에 다시 내주고 있다는 서방 언론의 보도를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특수작전부대(CCO)를 포함해 전방에서 드론 공격을 주도하는 부대들이 북한군을 공격하는 장면이라며 12월들어 유난히 많은 동영상을 배포했다. 대부분 드론 공격을 받는 병사들이 눈 덮인 평원에서 숨을 곳을 찾거나 우왕좌왕하다 쓰러지는 모습들이었다. 우크라이나 군 당국은 연일 드론으로 북한군을 공격하는 영상, 북한군이 치료받는 쿠르스크의 병원이라는 영상, 심지어 북한군 사상자들의 시신 영상이라는 것까지 공개했다. 북한군의 투입으로 전세가 러시아에 유리하게 전개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로 읽혔다.
그렇다고 우크라이나 정부가 '우리는 이기고 있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12월 18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빼앗긴 크림반도와 돈바스를 되찾을 힘이 없다"고 밝혔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승리 계획'을 마련했다며 미국 바이든 행정부와 유럽연합에 더 강력한 지원을 요구하던 때와는 확연히 달라진 태도였다. 그러면서 "우리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협상 테이블에 앉도록 국제 사회의 외교적 압력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실상 확실한 '안전 보장'을 전제로 '영토 포기'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대내외에 천명한 셈이었다. 트럼프 당선 이후 더 엄혹해질 국제 정세에 대한 현실적 진단이었을까.
■ 지워질 수 없는 전쟁의 상흔....무너진 다리· 학살 현장 그대로
전쟁 초기 우크라이나는 벨라루스를 경유해 북부 전선에서 쇄도하는 러시아군에 수도 키이우까지 위협당했다. 키이우 인근 부차와 이르핀에서 주민들까지 스스로 무장을 하고 러시아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인 뒤에야 간신히 수도를 지켜낼 수 있었다. 부차와 이르핀에는 러시아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의 상흔이 깊이 각인돼 있다는 것을 취재진은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수많은 피가 땅에 뿌려지는 가운데 우크라이나는 영토의 20퍼센트 가까이를 러시아에 빼앗겼다. 서방은 우크라이나에 많은 무기를 지원하면서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본토를 깊숙이 공격하지는 못하도록 미사일 사거리를 제한했다. 확전을 막는다는 명분이었다. 미국은 지난해 말에야 사거리 제한을 완화했지만 이미 전세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된 뒤였다. 하지만 그 기간 '핵 국가는 비핵국가를 핵으로 위협하지 않는다'는 국제 비확산 조약 NPT의 대전제도 무너졌다. 전쟁 기간 러시아는 여러 차례 핵무기 사용을 경고하며 위협했다. 핵 관련 교리와 법령도 바꿨다. 안보 위협을 빌미로 비핵국가를 공격할 수 있는 명분과 법리를 만든 것이다.
■ 계속되는 핵 위협...법령까지 바꾼 러시아
러시아보다 한발 앞서 핵 관련 교리와 법령을 바꾼 나라는 북한이다. 러시아는 2024년 6월 북한과 군사동맹에 준하는 조약을 체결했다. 이른바 군사적 차원의 '자동 개입 조항'도 포함됐다. '설마 그 조항이 작동할 일이 있겠냐'며 애써 평가 절하하려 해도 외교·안보를 다루는 사람들은 이게 얼마나 의미심장한 것인지 잘 안다. 대한민국으로서는 북핵 위협에 더해 또 다른 안보 시험대에 오르게 된 것이다. 러-우 전쟁이 끝나면 물론 상황도 달라지겠지만 한번 체결된 조약이 유명무실해지거나 폐기되는 것은 쉽지 않다. 게다가 국제정세는 늘 기대나 전망과 달리 전개된다. 대책 없는 '희망적 사고' 와 다가오는 위기를 애써 '평가절하' 하려는 이상한 관성들이 더 큰 피해를 초래할 뿐이다.
손자병법에는 적대적 상대방을 다루거나 전쟁에 대처하는 4가지 방안 가운데 2가지 '상책'을 이렇게 언급한다. 첫째는 '벌모(伐謀)'. 즉 상대가 전쟁이나 도발을 모의하고 기도하는 단계에서 그 계획과 의지를 좌절시키는 것. 둘째는 '벌교(伐交)'. 쉽게 말하면 상대방이 '군사 동맹'을 만들지 못하게 외교로 대처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상책'이요. 나머지 2가지는 '하책'에 해당하는 것으로 전쟁 개시를 의미하는 '벌병(伐兵)'과 '최하책'인 '공성(攻城)'이 그것이다. '공성'은 성을 공격한다는 뜻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는 상대방을 공격하느라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이 이 전쟁을 통해 친구를 얻었는지는 전쟁이 끝나봐야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안보적 측면에서 손에 카드를 하나 더 쥐게 됐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러시아는 전쟁 전 연간 교역규모가 연간 270억 달러에 달하던 대한민국을 전쟁 기간 '비우호 국가'로 지정하고, 교역규모가 4억 달러도 채 안 되던 북한은 사실상의 군사동맹으로 격상했다. 소련 붕괴와 한·소 수교로 폐기됐던 냉전 시대 북한과의 상호 군사원조 조약을 복원한 것이다.
■ 남북한 모두 개입...러-우 전쟁의 한반도에 미칠 '나비효과' 주시해야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은 대한민국의 안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남북한 모두 깊숙이 개입돼 있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이 전쟁의 나비효과가 어떻게 나타날지 주시해야 하는 이유다. 그것이 '남의 나라 전쟁'으로 치부할 수 없는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전쟁 발발 후 대한민국은 '자유'와 '가치 기반 외교'를 강조하는 현 정부의 기조하에서 미국 및 서방세계와 보조를 맞추기로 하고 수십억 달러 지원을 약속했다. 발표대로라면 2024년에 3억 달러가 지원됐을 것이고 올해부터는 20억 달러가 추가로 지원될 것이다. 지난해 10월에는 대통령이 직접 "살상 무기를 직접 공급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러한 부분에서도 더 유연하게 북한군의 활동 여하에 따라 검토해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김정은은 적지 않은 '병력'을 러시아에 보냈다. 그 병력이 폭풍군단으로 알려진 특수군 병력일지, 일부 분석처럼 범죄자 등 군 이외의 다른 인력까지 훈련시켜 보낸 것인지, 도대체 어떤 편제하에서 전선에 투입된 것인지, 북한군 파병의 정확한 실체는 시간이 지나면 더 구체적으로 드러날 것이다. 다만 이 전쟁이 길어진다면 사상자를 대체하고 피로가 누적된 병력을 교대시키기 위해 북한이 파병하는 연인원은 계속 늘어날 수도 있다. 이 파장이 북한 내부에 미칠 영향도 주시할 부분이다.
취재진은 우크라이나 군 관계자에게 북한군 사상자가 그렇게 많이 발생한다고 밝히고 있는데 "왜 북한군 포로는 발생하지 않고 있는가?" 물었다. 중령 계급의 한 우크라이나 정보장교는 이 질문에 "북한군이 항복을 거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드론 공격 시 투항을 권유하는 음성 방송이나 전단지를 뿌렸는지를 묻는 질문에 대해선 대답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군은 며칠 뒤 북한군 포로를 잡았다고 밝혔다가 심각한 부상을 당한 이 병사가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우크라이나군이 북한군 포로 발생에 대비하고 있는 구체적인 취재 내용과 전단지 작성의 배경 등은 이어지는 취재 후기에서 상세히 다룰 것이다.
■ 북한 병력 대부분 쿠르스크에 투입된 듯....우크라 정보 장교, "북한군이 항복하지 않고 있다"
현재 우크라이나에 투입된 '북한군 관련 영상'들이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쿠르스크에서 집중적으로 나오고 있다는 점으로 미뤄볼때, 러시아가 쿠르스크를 완전히 탈환하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고 바로 이곳에 북한 병력이 집중 투입됐음을 추론해 볼 수 있다. 물론 그 정확한 정황은 여전히 파악이 어렵다. 다만 현지에서 파악되는 정보들을 종합해 볼 때 북한 병력이 쿠르스크에 집중적으로 투입된 것은 사실일 가능성이 커보인다. 러시아 입장에서도 북한군 투입으로 우크라이나 정예 병력을 분산시킬 수 있다면, 푸틴의 자존심이 걸린 쿠르스크 탈환에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법하다.
쿠르스크는 2차대전 당시 러시아와 독일이 수천 대의 전차를 동원해 격돌했던 곳이다. 당시 러시아군은 파죽지세의 독일군 전차들을 막아내느라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 결국 승리했다. 독일군 전차 1대를 파괴하기 위해 러시아군 전차 3대가 달려들어 희생끝에 간신히 '승리의 땅'이 됐는데 지금 또다시 격전지가 됐고 여기에 북한 병력 상당수가 투입된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 긴 전쟁으로 힘에 부치는 것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압도적인 국력의 차이를 고려할 때 우크라이나가 더 힘겨워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가 종전을 압박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지원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그 예측은 어렵지 않다. 양측간 치열한 공방전이 계속되는 현 상황에서 종전이 하루아침에 이뤄지긴 어렵다.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한 러시아를 상대로 큰 피해와 사상자를 안긴 우크라이나의 군사력은 유럽에서 러시아 다음이라고 할 정도로 강해졌다. 우크라이나의 전쟁 수행 능력이 크게 향상됐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드론을 전투에 활용하는 능력은 러시아를 능가한다. 그럼에도 우크라이나가 향후 더 불리한 조건에서 협상 테이블에 앉을 가능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지금도 우크라이나는 최전선의 마을들을 하나씩 잃고 있다. 불행히도 시간은 우크라이나의 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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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철영 기자 cykum@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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