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픽] “잘 가요 내 사랑”…카터가 남긴 마지막 한마디

입력 2024.12.31 (18:23) 수정 2024.12.31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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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39대 대통령을 지낸 지미 카터입니다.

100번째 생일까지 보내고 지난 29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미 역사상 최장수 대통령입니다.

잘 가요, 내 사랑, 내일 만나요.

카터 전 대통령은 지난해 말 77년을 해로한 부인 로절린 여사를 먼저 보내며 이런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당시 99세의 카터는 오랜 암 투병 끝에 1년 가까이 호스피스 치료를 받던 중이었습니다.

[지미 카터 : "능력이 되는 한 내가 지금까지 해온 일을 계속 하고 싶습니다."]

‘내일 만나자’는 말처럼 카터는 딱 1년을 더 살고 부인의 뒤를 따랐습니다.

땅콩 농장주 출신인 카터는 1976년 백악관 입성 뒤 후한 평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절대 거짓말하지 않겠다’는 공약으로 국민의 지지를 받았지만 워싱턴 정치는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중동 불안으로 인한 오일 쇼크를 관리하지 못해 물가 상승률 13% 최악의 인플레이션을 겪었고 1979년 이란에서 인질로 잡힌 미 대사관 직원 인질로 잡혔을땐 구출 작전에 실패하면서 파견된 특공대원 8명이 숨지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미국인 자존심에 큰 상처를 남긴 사건 재선 실패는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카터의 대통령직은 4년 만에 끝났지만 정작 그의 진가가 빛난건 그 이후였습니다

한국인의 기억엔 그의 인권외교가 각인돼 있습니다.

1994년 5월 북한 1차 핵위기 평양을 전격 방문해 김일성과 담판했습니다.

2011년 이명박 김정일 평양정상회담 계획을 만들어 낸것도 카터였습니다.

자칭타칭 프리랜서외교관으로 쿠바, 보스니아 등 분쟁지를 누볐습니다.

서민들에게 집을 지어주는 해비타트 운동으로 90대가 돼서도 공구를 들고 현장을 오갔습니다.

미국인들 기억에 남은 그의 마지막 모습은 교회 주일학교 선생님.

노년에 그를 괴롭혔던 암세포도 신앙의 열정은 사르지 못했습니다

[지미 카터/전 미국 대통령 : "이번 주에 병원에 갔더니, 의사들이 암세포를 전혀 찾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좋은 소식입니다. 기도해 주신 많은 분께 감사드립니다."]

밥 딜런 같은 록 스타 ‘절친’들과 어울렸던 낭만주의자 고향 팀인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경기를 즐기는 야구광의 면모.

현직은 짧고 여생은 길다는걸 몸소 보여준 카터 대통령 장례식은 다음달9일 국가장으로 치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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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슈픽] “잘 가요 내 사랑”…카터가 남긴 마지막 한마디
    • 입력 2024-12-31 18:23:58
    • 수정2024-12-31 18:2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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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39대 대통령을 지낸 지미 카터입니다.

100번째 생일까지 보내고 지난 29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미 역사상 최장수 대통령입니다.

잘 가요, 내 사랑, 내일 만나요.

카터 전 대통령은 지난해 말 77년을 해로한 부인 로절린 여사를 먼저 보내며 이런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당시 99세의 카터는 오랜 암 투병 끝에 1년 가까이 호스피스 치료를 받던 중이었습니다.

[지미 카터 : "능력이 되는 한 내가 지금까지 해온 일을 계속 하고 싶습니다."]

‘내일 만나자’는 말처럼 카터는 딱 1년을 더 살고 부인의 뒤를 따랐습니다.

땅콩 농장주 출신인 카터는 1976년 백악관 입성 뒤 후한 평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절대 거짓말하지 않겠다’는 공약으로 국민의 지지를 받았지만 워싱턴 정치는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중동 불안으로 인한 오일 쇼크를 관리하지 못해 물가 상승률 13% 최악의 인플레이션을 겪었고 1979년 이란에서 인질로 잡힌 미 대사관 직원 인질로 잡혔을땐 구출 작전에 실패하면서 파견된 특공대원 8명이 숨지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미국인 자존심에 큰 상처를 남긴 사건 재선 실패는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카터의 대통령직은 4년 만에 끝났지만 정작 그의 진가가 빛난건 그 이후였습니다

한국인의 기억엔 그의 인권외교가 각인돼 있습니다.

1994년 5월 북한 1차 핵위기 평양을 전격 방문해 김일성과 담판했습니다.

2011년 이명박 김정일 평양정상회담 계획을 만들어 낸것도 카터였습니다.

자칭타칭 프리랜서외교관으로 쿠바, 보스니아 등 분쟁지를 누볐습니다.

서민들에게 집을 지어주는 해비타트 운동으로 90대가 돼서도 공구를 들고 현장을 오갔습니다.

미국인들 기억에 남은 그의 마지막 모습은 교회 주일학교 선생님.

노년에 그를 괴롭혔던 암세포도 신앙의 열정은 사르지 못했습니다

[지미 카터/전 미국 대통령 : "이번 주에 병원에 갔더니, 의사들이 암세포를 전혀 찾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좋은 소식입니다. 기도해 주신 많은 분께 감사드립니다."]

밥 딜런 같은 록 스타 ‘절친’들과 어울렸던 낭만주의자 고향 팀인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경기를 즐기는 야구광의 면모.

현직은 짧고 여생은 길다는걸 몸소 보여준 카터 대통령 장례식은 다음달9일 국가장으로 치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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