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큰그림 샅샅히 해부하니, 실패한 ‘최종지휘자’ 나왔다 [창+]

입력 2025.01.19 (10:01) 수정 2025.01.19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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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은 갑자기 일어난 일이 아니다. 준비됐고, 명확한 지시자가 있었다."

이것은 검찰의 판단이다. 계엄의 순간과 그 전후를 수사한 검찰이 [김용현 공소장]을 통해 내놓은 결론이다. 공소장에 드러난 계엄의 기승전결과 실패이유를 5개의 장면으로 구성했다.

#1. 계엄의 시작 0:00
#2. 계엄의 준비 1:57
#3. 계엄의 현장 4:06
#4. 계엄의 후과 5:31
#5. 계엄의 실패 이유 6:27

[시사기획 창 '대통령과 우두머리 혐의-여러분 저를 믿으시죠 Ⅱ' 중에서]

■##1 계엄의 시작
김용현 / 당시 국방부 장관 후보자 (2024년 9월 2일) 지금 이런 우리 대한민국의 상황에서 과연 계엄을 한다 그러면 어떤 국민이 과연 이게 용납을 하겠습니까. 그리고 우리 군에도 따르겠습니까? 저는 안 따를 것 같아요, 솔직히.

계엄은 용납될 수 없고, 군도 따르지 않을 거라는 말.

그러나 이 발언 한 달 전 대통령이 계엄을 말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 기록이 맞다면 김 전 장관은 거짓말을 했다.

“그래서 이런 계엄 문제는 지금 시대적으로 좀 안 맞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너무 우려 안 하셔도 될 것 같다 하는 생각을, 말씀을 올립니다.”

그리고 한 달 뒤 국군의 날.

문건에서 대통령은 시가행진을 마친 뒤 김 전 장관 등에게 시국, 언론, 좌익세력 이야기와 함께 다시한번 비상대권을 언급한다.

계엄이 일상처럼 논의됐다는 이 문서.

4월 총선 전후로도 두 차례 대통령은 삼청동 안가에서 국방장관과 국정원장 등을 만나 ‘비상대권’ (밖에 없다’) ‘비상조치’ (가 아니면)를 말했다.

문건은 바로 검찰이 쓴 김용현 전 국방장관의 공소장이다.

공소장에 기록된 계엄의 과정은 현실 정치의 현장과 씨줄과 날줄처럼 교차된다.

■##2 계엄의 준비
윤 대통령 (2022년 5월 9일)
“공관위에서 나한테 들고 왔길래 내가 김영선이 경선 때부터 열심히 뛰었으니까 그거는 김영선이를 좀 해줘라 그랬는데 말이 많네 당에서...”

녹취가 공개되자 비선실세 의혹은 대통령 부부가 연루된 공천 개입 의혹으로 전환된다.

(11.15) 보름뒤 명태균은 구속되고 (11.23) 곧이어 김건희 여사 특검법이 통과된다.

이 다음날,(11.24) 공소장에서 대통령은 ‘정말 나라가 이래서 되겠느냐’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겠다.
국회가 패악질을 하고 있다’며 비상대책 필요성을 주장했다.

공소장은 김 전 장관이 준비절차에 착수해 계엄에 필요한 세 개의 서류 초안을 직접 작성했다고 밝혔다.
(계엄 선포문/대국민 담화문/포고령)

2017년 탄핵 당시 작성된 계엄령 문건 등을 참고했다고 했다.

그 사이 정치 일정은 숨가쁘게 이어진다.

(11.24) 일본 사도광산 추도식 불참
(11.26) 김건희 여사 특검법 거부권
(11.29) 국회 예결위 감액 예산안 처리

(11.30)
공소장은 이후 대통령이 김 전 장관을 만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비상 대권을 써야 난국을 해결할 수 있다’ 말했다고 기록한다.

이튿날(12.1) 대통령은 다시 22건의 탄핵, 예산삭감 등을 패악질이라 언급하며 분노했다.

검찰은 대통령이 곧이어 병력 규모, 필요 서류를 논의했고, 계엄 하루 전인 2일, 구두로 승인한 거로 봤다.

그동안 특전사는 특수부대 투입을 준비하고,
정보사는 점집을 차린 전직 사령관과 함께 선관위 체포작전 등을 모의했으며,
방첩사는 오물풍선을 이유로 음주자제와 통신대기를 지시하고
경찰은 국회 전체 1선 봉쇄를, 수방사는 2선 봉쇄를 준비하는 등

계엄이 치밀하게 준비됐다는게 검찰이 그린 큰 그림이다./통CG

■##3 계엄의 현장
“계엄 포고령이 하달되었습니다. 가능한 장소부터 차벽 조치하세요”

계엄 당일, 검찰은 대통령이 경찰청장에 수차례 직접 전화해 의원들을 체포하라 지시했다고 했다.

동시에 특전사령관에도 직접 전화해 헬기 이동을 확인하고,

국회 도착 뒤에는 ‘도끼를 써서라도 의원을 끄집어내라‘ 지시했단게 공소장의 기록이다.

수방사령관에도 수차례 직접 전화해 1) 4인 1조 활동이나 2) 발포, 3) 국회 의결 뒤에도 작전하라는 지시를 연이어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특정 인물 체포 임무를 맡은 방첩사

검찰은 국회 해제요구안 가결이 임박하자 대통령 등이 우선 이재명 우원식 한동훈 3인을 체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했다.

공소장은 이렇게 분명한 목적을 가진 최종 지휘자를 가리킨다.

■##4 계엄의 후과
<녹취> 대통령 변호인단
지금 사령관들 진술한 부분들이 저희는 전혀 납득할 수 없는 허위의 진술들을 하고 있기 때문에/
대통령제 국가에서 이렇게 대통령이 고립된 약자가 되는 경우는 사실 저도 이번에 처음 겪어봤습니다.”

대통령의 변호인단은 검찰 공소장 속 대통령의 행위가 허위라고 일축한다.

계엄의 의미는 이렇게 축소한다.

“사실은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발생한 것이 없는데 이런 국민들이 볼 때는 장난 같은 그런 계엄이 왜 일어났는지"

장난 같은 그런 계엄.

■##5 계엄 실패의 이유
공소장에 따르면 분명한 목적아래 준비, 실행됐는데 왜 실패한 것일까.

다시 공소장으로 들어가 찾아보았다.

수방사 병력은 출입 통제와 봉쇄 지시를 받았지만, 시민들이 차량을 가로막아 실패한다.

특전사는 후문을 봉쇄하려다 국회 경비 인력에 부딪혀 포기하고, 의사당 정문으로 향하지만 또 시민 저항에 부딪힌다.

(64) 검찰은 이때 특전 사령관이 공포탄과 테이저건 사용을 건의했다고 기록했다.

(72) 다급한 대통령 등은 이재명, 우원식, 한동훈 우선 체포 지시를 내렸지만 체포조는 시민에 가로막혀 국회 진입조차 못한다.

즉, 공소장에 따르면 계엄은 시민에 의해 저지됐다.

저항이 강력해 실패했다.

공소장은 영상과 통신기록으로 뒷받침되는 치밀한 기록이지만, 일방적인 기록이기도 하다.

다만, 이에 대한 대통령 측의 구체적인 해명은 아직 들을 수 없다.

취재기자 : 김지선, 서영민, 하누리
촬영기자 : 신봉승, 오광택, 김성현, 김대원, 임현식, 김민준
영상편집 : 이종환, 성동혁, 김대영
자료조사 : 김현우, 여의주, 김예진
조연출 : 최명호
방송일: 2025년 1월 14일(화) 밤 10시 KBS 1TV /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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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1-19 10:01:03
    • 수정2025-01-19 10: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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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은 갑자기 일어난 일이 아니다. 준비됐고, 명확한 지시자가 있었다."

이것은 검찰의 판단이다. 계엄의 순간과 그 전후를 수사한 검찰이 [김용현 공소장]을 통해 내놓은 결론이다. 공소장에 드러난 계엄의 기승전결과 실패이유를 5개의 장면으로 구성했다.

#1. 계엄의 시작 0:00
#2. 계엄의 준비 1:57
#3. 계엄의 현장 4:06
#4. 계엄의 후과 5:31
#5. 계엄의 실패 이유 6:27

[시사기획 창 '대통령과 우두머리 혐의-여러분 저를 믿으시죠 Ⅱ' 중에서]

■##1 계엄의 시작
김용현 / 당시 국방부 장관 후보자 (2024년 9월 2일) 지금 이런 우리 대한민국의 상황에서 과연 계엄을 한다 그러면 어떤 국민이 과연 이게 용납을 하겠습니까. 그리고 우리 군에도 따르겠습니까? 저는 안 따를 것 같아요, 솔직히.

계엄은 용납될 수 없고, 군도 따르지 않을 거라는 말.

그러나 이 발언 한 달 전 대통령이 계엄을 말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 기록이 맞다면 김 전 장관은 거짓말을 했다.

“그래서 이런 계엄 문제는 지금 시대적으로 좀 안 맞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너무 우려 안 하셔도 될 것 같다 하는 생각을, 말씀을 올립니다.”

그리고 한 달 뒤 국군의 날.

문건에서 대통령은 시가행진을 마친 뒤 김 전 장관 등에게 시국, 언론, 좌익세력 이야기와 함께 다시한번 비상대권을 언급한다.

계엄이 일상처럼 논의됐다는 이 문서.

4월 총선 전후로도 두 차례 대통령은 삼청동 안가에서 국방장관과 국정원장 등을 만나 ‘비상대권’ (밖에 없다’) ‘비상조치’ (가 아니면)를 말했다.

문건은 바로 검찰이 쓴 김용현 전 국방장관의 공소장이다.

공소장에 기록된 계엄의 과정은 현실 정치의 현장과 씨줄과 날줄처럼 교차된다.

■##2 계엄의 준비
윤 대통령 (2022년 5월 9일)
“공관위에서 나한테 들고 왔길래 내가 김영선이 경선 때부터 열심히 뛰었으니까 그거는 김영선이를 좀 해줘라 그랬는데 말이 많네 당에서...”

녹취가 공개되자 비선실세 의혹은 대통령 부부가 연루된 공천 개입 의혹으로 전환된다.

(11.15) 보름뒤 명태균은 구속되고 (11.23) 곧이어 김건희 여사 특검법이 통과된다.

이 다음날,(11.24) 공소장에서 대통령은 ‘정말 나라가 이래서 되겠느냐’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겠다.
국회가 패악질을 하고 있다’며 비상대책 필요성을 주장했다.

공소장은 김 전 장관이 준비절차에 착수해 계엄에 필요한 세 개의 서류 초안을 직접 작성했다고 밝혔다.
(계엄 선포문/대국민 담화문/포고령)

2017년 탄핵 당시 작성된 계엄령 문건 등을 참고했다고 했다.

그 사이 정치 일정은 숨가쁘게 이어진다.

(11.24) 일본 사도광산 추도식 불참
(11.26) 김건희 여사 특검법 거부권
(11.29) 국회 예결위 감액 예산안 처리

(11.30)
공소장은 이후 대통령이 김 전 장관을 만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비상 대권을 써야 난국을 해결할 수 있다’ 말했다고 기록한다.

이튿날(12.1) 대통령은 다시 22건의 탄핵, 예산삭감 등을 패악질이라 언급하며 분노했다.

검찰은 대통령이 곧이어 병력 규모, 필요 서류를 논의했고, 계엄 하루 전인 2일, 구두로 승인한 거로 봤다.

그동안 특전사는 특수부대 투입을 준비하고,
정보사는 점집을 차린 전직 사령관과 함께 선관위 체포작전 등을 모의했으며,
방첩사는 오물풍선을 이유로 음주자제와 통신대기를 지시하고
경찰은 국회 전체 1선 봉쇄를, 수방사는 2선 봉쇄를 준비하는 등

계엄이 치밀하게 준비됐다는게 검찰이 그린 큰 그림이다./통CG

■##3 계엄의 현장
“계엄 포고령이 하달되었습니다. 가능한 장소부터 차벽 조치하세요”

계엄 당일, 검찰은 대통령이 경찰청장에 수차례 직접 전화해 의원들을 체포하라 지시했다고 했다.

동시에 특전사령관에도 직접 전화해 헬기 이동을 확인하고,

국회 도착 뒤에는 ‘도끼를 써서라도 의원을 끄집어내라‘ 지시했단게 공소장의 기록이다.

수방사령관에도 수차례 직접 전화해 1) 4인 1조 활동이나 2) 발포, 3) 국회 의결 뒤에도 작전하라는 지시를 연이어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특정 인물 체포 임무를 맡은 방첩사

검찰은 국회 해제요구안 가결이 임박하자 대통령 등이 우선 이재명 우원식 한동훈 3인을 체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했다.

공소장은 이렇게 분명한 목적을 가진 최종 지휘자를 가리킨다.

■##4 계엄의 후과
<녹취> 대통령 변호인단
지금 사령관들 진술한 부분들이 저희는 전혀 납득할 수 없는 허위의 진술들을 하고 있기 때문에/
대통령제 국가에서 이렇게 대통령이 고립된 약자가 되는 경우는 사실 저도 이번에 처음 겪어봤습니다.”

대통령의 변호인단은 검찰 공소장 속 대통령의 행위가 허위라고 일축한다.

계엄의 의미는 이렇게 축소한다.

“사실은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발생한 것이 없는데 이런 국민들이 볼 때는 장난 같은 그런 계엄이 왜 일어났는지"

장난 같은 그런 계엄.

■##5 계엄 실패의 이유
공소장에 따르면 분명한 목적아래 준비, 실행됐는데 왜 실패한 것일까.

다시 공소장으로 들어가 찾아보았다.

수방사 병력은 출입 통제와 봉쇄 지시를 받았지만, 시민들이 차량을 가로막아 실패한다.

특전사는 후문을 봉쇄하려다 국회 경비 인력에 부딪혀 포기하고, 의사당 정문으로 향하지만 또 시민 저항에 부딪힌다.

(64) 검찰은 이때 특전 사령관이 공포탄과 테이저건 사용을 건의했다고 기록했다.

(72) 다급한 대통령 등은 이재명, 우원식, 한동훈 우선 체포 지시를 내렸지만 체포조는 시민에 가로막혀 국회 진입조차 못한다.

즉, 공소장에 따르면 계엄은 시민에 의해 저지됐다.

저항이 강력해 실패했다.

공소장은 영상과 통신기록으로 뒷받침되는 치밀한 기록이지만, 일방적인 기록이기도 하다.

다만, 이에 대한 대통령 측의 구체적인 해명은 아직 들을 수 없다.

취재기자 : 김지선, 서영민, 하누리
촬영기자 : 신봉승, 오광택, 김성현, 김대원, 임현식, 김민준
영상편집 : 이종환, 성동혁, 김대영
자료조사 : 김현우, 여의주, 김예진
조연출 : 최명호
방송일: 2025년 1월 14일(화) 밤 10시 KBS 1TV /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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