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잡고보니 여고 행정공무원”…DNA가 밝혀낸 7년 전 ‘강간 미제 사건’

지난 11일 오전, 경기도의 한 여자고등학교 행정실에 경찰이 들이닥쳤습니다.

경찰이 체포한 사람은 이 학교에서 시설 관리 업무를 해오던 행정직 공무원 A 씨였습니다. 경찰은 A 씨를 7년 전 인천 미추홀구에서 발생한 강간 미제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했습니다.

A 씨는 어쩌다 경찰에 붙잡히게 됐을까요? 또 이제야 붙잡힌 이유는 무엇일까요?

■ 7년 전 '강간 미제 사건' 범인, 잡고 보니 여고 행정 공무원

2017년 9월, 인천 미추홀구 문학경기장에서는 세계적인 EDM(일렉트로닉 댄스 뮤직) 축제가 열렸습니다.

약 12만 명이 참석한 대규모 축제였는데, 이 축제장 옆 천막에서 남성 두 명이 술에 취한 여성 한 명을 성폭행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밤이 늦어 어두웠던 탓에 CCTV에는 범인들의 인상착의가 명확하게 담기지 않았고, 사건은 한동안 미제로 남았습니다.

피해자의 몸에 남은 남성 2명의 DNA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관됐습니다.

끝내 미제로 남을 것만 같았던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건 사건 발생 6년 만인 지난해입니다.

경기 과천에서 또 다른 성폭행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 사건의 범인 B 씨의 DNA가 2017년 사건 당시 남았던 DNA 중 하나와 일치한 겁니다.

B 씨는 결국 징역 5년 형을 선고받고 수감됐지만, '2017년 사건의 공범이 누구냐'는 경찰의 질문엔 입을 닫았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항소심 공판이 부담됐던 탓인지, B 씨는 7년 만에 입을 열었습니다. B 씨가 지목한 공범은 여고 행정직 공무원으로 일하던 지인 A 씨였습니다.

경찰은 곧바로 학교를 찾아가 근무 중이던 A 씨를 체포해 특수준강간혐의로 구속했습니다.

특수준강간은 흉기를 가지거나 두 명 이상이 함께 항거불능 상태의 사람을 간음할 경우 성립합니다. 공소시효는 15년으로, 이번 사건의 경우 시효 만료를 약 8년 남겨두고 있었습니다.

부천오정경찰서는 오늘(15일) 국과수로부터 'A 씨의 DNA가 2017년 강간 미제 사건 당시 남아 있던 DNA와 일치한다'는 소견을 받았습니다.

사건 발생 7년 만에 성폭행 사건의 범인 두 명이 모두 검거된 겁니다.

■ DNA는 누가 범인인지 알고 있다

미제로 남을 뻔한 사건을 해결하는 데는 'DNA'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DNA 분석을 통해 과거의 범행이 들통나는 사례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난 5월, 한 경찰관이 서울 은평구의 한 노래방에 무단 침입한 혐의로 붙잡혔는데, DNA 대조 결과 13년 전 서울 강남에서 발생한 성폭행 미제 사건의 범인 DNA와 일치했습니다.

지난 2월에는 19년 전 흉기를 들고 경기도 일대 가정집에 침입해 5명을 성폭행한 남성이 DNA 대조를 통해 출소 직전 다시 구속되기도 했습니다.

2010년 DNA 신원확인 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DNA법)이 시행됨에 따라, 구속된 피의자의 DNA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수감자의 DNA는 대검 국가디지털포렌식센터로 보내집니다.

살인, 강도, 강간 등 재범 가능성이 높거나 강력범죄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은 11개 범죄군이 채취 대상인데, 우리나라의 DNA 데이터베이스에는 범죄자 약 28만 명의 DNA가 수록돼 있습니다.

DNA가 실마리가 돼 수사가 재개된 사건은 6천 5백여 건에 달하고, 이 가운데 1천 80여 건의 형이 확정됐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DNA는 쌓이고, 분석 기술 역시 발전하고 있습니다. '완전 범죄란 없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그래픽: 이영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