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민사사건 절반은 한 사람이 냈다…“5년여간 3만7000건”

입력 2024.09.22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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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전경대법원 전경

서울에 거주하는 50대 남성으로 추정되는 정 모 씨는 2016년부터 법관과 공무원, 보험회사 등을 상대로 다량의 소송을 제기하는 '소권남용인'입니다.

정 씨의 '소송 남발' 패턴을 보면, 먼저 보험사가 보험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다며 담당 직원들을 징계하라는 청구를 법원에 제기합니다. 사기업을 상대로 징계를 청구하는 소송은 허용되지 않으므로 각하됩니다.

그러면 각하 결정을 한 법관과 법원 직원들을 대상으로 손해배상소송을 냅니다.

소송을 제기할 때 내야 하는 인지대와 송달료도 제대로 내지 않아서 법원으로부터 납부 명령을 받고도 끝까지 불응하다 각하명령을 받습니다.

그러면 정 씨는 다시 이 각하명령에 대해 다투면서 항고와 재항고를 하고, 재항고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이에 불복해 재항고 명령에 대해 재심을 청구하고, 이 재심이 기각되면 다시 그 기각결정에 대해 항고, 재항고를 합니다. '도돌이표 소송' 입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송석준 의원이 대법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6월 30일 기준 대법원이 심리 중인 민사 사건은 총 7천283건인데, 그 중 정 씨가 낸 소송이 3천830건으로 52%에 달합니다. 최근 2년 이내 미제 사건으로 좁히면 전체 4천154건 중 92%인 3천829건이 정 씨의 소송입니다.

정 씨가 2019년부터 올해 6월까지 대법원에 제기한 사건은 총 3만7천425건으로 서울고법에는 1만5천937건, 서울중앙지법에는 1만4천328건을 냈습니다. 1년 평균으로 6,804건을 제기한 건데, 하루 평균 18.6건의 소송을 제기한 셈입니다.

이같은 소송 남발은 한정된 사법 자원의 낭비를 초래해 재판 지연으로 연결되고, 일반 국민들의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게 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사건 통계를 왜곡시키는 문제도 있습니다. 대법원의 올해 상반기 민사 사건 평균 처리 기간은 13.9개월 입니다. 2021년에는 8개월, 2022년 11.7개월, 지난해에는 7.9개월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재판 지연이 심화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정 씨가 제기한 사건들을 제외하면 오히려 평균 처리 기간은 올해 상반기 4.2개월로 크게 줄어듭니다. 2021년 4.7개월, 2022년 4.9개월, 지난해 4.4개월과 비교하면 처리 속도가 빨라지고 있습니다.

민사소송법 제219조의2(소권 남용에 대한 제재)
원고가 소권(항소권 포함)을 남용하여 청구가 이유 없음이 명백한 소를 반복적으로 제기한 경우에는 법원은 결정으로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에 처한다.


민사소송법이 개정돼 지난해 10월부터는 소권 남용인에게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거나 접수를 보류할 수 있지만, 정 씨의 '소송 남발'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송 의원은 "최근에는 전자소송의 편의성을 악용해 무분별하게 수백 건, 수천 건의 소장을 접수하거나 의미 없는 대용량의 증거자료를 반복적으로 제출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며 "국민이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현행 제도상 미비한 부분을 정비해 소권 남용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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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법 민사사건 절반은 한 사람이 냈다…“5년여간 3만7000건”
    • 입력 2024-09-22 15:17:20
    사회
대법원 전경
서울에 거주하는 50대 남성으로 추정되는 정 모 씨는 2016년부터 법관과 공무원, 보험회사 등을 상대로 다량의 소송을 제기하는 '소권남용인'입니다.

정 씨의 '소송 남발' 패턴을 보면, 먼저 보험사가 보험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다며 담당 직원들을 징계하라는 청구를 법원에 제기합니다. 사기업을 상대로 징계를 청구하는 소송은 허용되지 않으므로 각하됩니다.

그러면 각하 결정을 한 법관과 법원 직원들을 대상으로 손해배상소송을 냅니다.

소송을 제기할 때 내야 하는 인지대와 송달료도 제대로 내지 않아서 법원으로부터 납부 명령을 받고도 끝까지 불응하다 각하명령을 받습니다.

그러면 정 씨는 다시 이 각하명령에 대해 다투면서 항고와 재항고를 하고, 재항고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이에 불복해 재항고 명령에 대해 재심을 청구하고, 이 재심이 기각되면 다시 그 기각결정에 대해 항고, 재항고를 합니다. '도돌이표 소송' 입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송석준 의원이 대법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6월 30일 기준 대법원이 심리 중인 민사 사건은 총 7천283건인데, 그 중 정 씨가 낸 소송이 3천830건으로 52%에 달합니다. 최근 2년 이내 미제 사건으로 좁히면 전체 4천154건 중 92%인 3천829건이 정 씨의 소송입니다.

정 씨가 2019년부터 올해 6월까지 대법원에 제기한 사건은 총 3만7천425건으로 서울고법에는 1만5천937건, 서울중앙지법에는 1만4천328건을 냈습니다. 1년 평균으로 6,804건을 제기한 건데, 하루 평균 18.6건의 소송을 제기한 셈입니다.

이같은 소송 남발은 한정된 사법 자원의 낭비를 초래해 재판 지연으로 연결되고, 일반 국민들의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게 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사건 통계를 왜곡시키는 문제도 있습니다. 대법원의 올해 상반기 민사 사건 평균 처리 기간은 13.9개월 입니다. 2021년에는 8개월, 2022년 11.7개월, 지난해에는 7.9개월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재판 지연이 심화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정 씨가 제기한 사건들을 제외하면 오히려 평균 처리 기간은 올해 상반기 4.2개월로 크게 줄어듭니다. 2021년 4.7개월, 2022년 4.9개월, 지난해 4.4개월과 비교하면 처리 속도가 빨라지고 있습니다.

민사소송법 제219조의2(소권 남용에 대한 제재)
원고가 소권(항소권 포함)을 남용하여 청구가 이유 없음이 명백한 소를 반복적으로 제기한 경우에는 법원은 결정으로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에 처한다.


민사소송법이 개정돼 지난해 10월부터는 소권 남용인에게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거나 접수를 보류할 수 있지만, 정 씨의 '소송 남발'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송 의원은 "최근에는 전자소송의 편의성을 악용해 무분별하게 수백 건, 수천 건의 소장을 접수하거나 의미 없는 대용량의 증거자료를 반복적으로 제출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며 "국민이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현행 제도상 미비한 부분을 정비해 소권 남용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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