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아티스트만이 아니다…중국 내 잇단 공연 취소 이유는? [특파원 리포트]

입력 2023.05.24 (16:20) 수정 2023.05.24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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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승려 음악가인 야쿠시지 칸호(앞줄 가운데)의 중국 순회 공연이 중단됐다. 사진은 충칭 공연 장면(사진: 야쿠시지 칸호 트위터) 일본인 승려 음악가인 야쿠시지 칸호(앞줄 가운데)의 중국 순회 공연이 중단됐다. 사진은 충칭 공연 장면(사진: 야쿠시지 칸호 트위터)

중국에서 5월 20일은 젊은이들 사이의 기념일입니다. 520의 중국어 발음이 ‘워아이니(我爱你·너를 사랑해)’와 비슷한 ‘우얼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날을 ‘제2의 밸런타인데이’로 기념합니다. 특히 올해는 고강도 코로나19 방역이 해제된 이후 처음 맞는 520이라 더욱 관심이 높았습니다.

■ 중국, 중화권 등 해외 활동 가수 콘서트 잇달아

올해 중국 젊은 연인들의 520 특별 이벤트 가운데 하나는 공연입니다. 그 중에서도 코로나19 빗장이 풀리며 중국을 찾은 홍콩과 타이완 등 중화권과 해외 아티스트들의 공연이 주목받았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홍콩의 배우 겸 가수 알란 탐이 지난 20일 상하이에서 공연을 했습니다. 90년대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어 CF에 출연하기도 했던 인물입니다. 이번 상하이 공연에서도 조용필의 '친구여'를 번안해 부르기도 했습니다.

타이완 가수 제프 창, 안젤라 창 등도 중국에서 비슷한 기간 콘서트를 열었습니다.

홍콩 가수 알란 탐이 20일 상하이에서 콘서트를 열었다. 조용필의 ‘친구여’ 번안곡도 불렀다.(사진: 빌리빌리 캡처)홍콩 가수 알란 탐이 20일 상하이에서 콘서트를 열었다. 조용필의 ‘친구여’ 번안곡도 불렀다.(사진: 빌리빌리 캡처)

이같은 공연들이 성공적으로 열리면서 중국의 코로나19 방역 규제가 완전히 걷혔다는 분위기가 확산됐습니다. 공연 예술 분야에서 중국 당국의 대외 개방 의지를 확인하는 리트머스 실험 역할도 했습니다. 이른바 '한한령' 유지 여부에 관심이 큰 한국 방송계와 연예 기획사들도 이같은 흐름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 중국, 갑작스런 공연 취소 이어져...한국 정용화 씨 출연도 돌연 취소

그런데 갑자기 몇몇 공연들이 잇달아 취소됐습니다. 일본의 선불교 음악가인 야쿠시지 칸호가 대표적입니다. 광저우와 항저우, 베이징, 상하이 등 적어도 중국 도시 4곳의 콘서트가 취소되었습니다. 주최 측은 '불가항력적 이유'가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상급 부문의 통지'가 있었다고도 밝혔습니다.

야쿠시지 칸호의 공연이 ‘상급 부문’의 통지에 따라 ‘불가항력’적 이유로 공연이 취소됐다는 내용의 안내문 야쿠시지 칸호의 공연이 ‘상급 부문’의 통지에 따라 ‘불가항력’적 이유로 공연이 취소됐다는 내용의 안내문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지난 주말 항저우에서 열릴 예정이던 한 타이완 밴드(The Chairs)의 공연도 열리지 않았다고 보도했습니다. '정책 관련 이유'였다고 전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한국의 가수 겸 배우 정용화 씨의 중국 예능 프로그램 출연이 돌연 무산된 사실도 전해졌습니다. 지난 17일 베이징에 도착했다 이틀 만에 한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정용화 씨 기획사 측이 말을 아끼는 가운데 방송통신 규제기구인 베이징 광전총국의 '안내글'이 사안의 일단을 설명했습니다. "외국인의 프로그램 촬영 및 제작 참여는 각 성과 자치구, 직할시 라디오와 텔레비전 행정 부서의 검토를 거쳐 국가광전총국에 보고해 승인을 받아야 한다," "해당 프로그램은 앞으로도 정용화 씨를 출연자로 기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한국의 배우 겸 가수 정용화 씨(사진 맨 오른쪽)는 중국 OTT의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할 계획이었다. 정 씨는 중국어 노래도 부르는 등 과거 중국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사진: 웨이보)한국의 배우 겸 가수 정용화 씨(사진 맨 오른쪽)는 중국 OTT의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할 계획이었다. 정 씨는 중국어 노래도 부르는 등 과거 중국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사진: 웨이보)

이에 대해 중국 제작사가 당국 심의를 받지 않은 채 정 씨를 불러 촬영을 시작했다가 누군가 문의 형식으로 신고를 하자 출연 자체를 없었던 일로 한 것이라는 해석이 뒤따랐습니다. 정용화 씨의 출연 여부와 관련한 SNS 글에는 '한한령 지지' 등을 담은 댓글도 적지 않게 달렸습니다. 따라서 정용화 씨의 출연 불발은 심의 미비라는 형식적 이유와 최근 한중 관계를 반영한 비판적 여론이 겹친 결과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습니다.

■ 중국 코미디언의 '설화' 사건...'사상 검증'·'표현의 자유' 문제도 재부상

이같은 동향과 관련해 최근 중국 내 한 사건도 거론됩니다. 중국의 코미디언 리하오스의 사례입니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중국군 관련 발언을 패러디했다가 최근 소속사 전체가 휘청이게 됐습니다. 소속사에 우리 돈 25억 원이 넘는 벌금과 2억 5천만 원 가량의 부당 이익 몰수 처분이 내려졌습니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까지 나서 "일방적인 웃음 효과만 노리다 선을 밟으면 오류에 빠지게 된다"고 경고했습니다. '최고 존엄'과 '신성한' 군대를 코미디 소재로 삼은 결과는 이처럼 처참했습니다.


시진핑 주석의 중국군 관련 발언을 코미디 소재로 패러디했다 소속사에 수십억대 벌금이 부과된 중국 코미디언 리하오스. 해당 사건 이후 중국내 ‘표현의 자유’ 문제가 다시 부각됐다.(사진: 웨이보)시진핑 주석의 중국군 관련 발언을 코미디 소재로 패러디했다 소속사에 수십억대 벌금이 부과된 중국 코미디언 리하오스. 해당 사건 이후 중국내 ‘표현의 자유’ 문제가 다시 부각됐다.(사진: 웨이보)

SCMP는 야쿠시지 칸호의 광저우 공연이 취소된 날이 바로 베이징 공안 당국이 리하오스 조사에 들어간 날이었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비슷한 시기 중국 본토 그룹 '상하이 치우톈'의 산토우 공연도 20일 '불가항력'을 이유로 취소됐다 이후 재개되기도 했습니다. 리하오스의 사례와 이같은 공연 취소들이 맞물리며 중국 내 문화 예술 공연의 자유, 나아가 '표현의 자유', '사상 검증'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습니다.

■ "중국 내 사상 검증 강화·국제 정세 복합 영향...개별 사안들 나름의 이유도"

이와 관련해 야쿠시지 칸호의 경우 승려인만큼 그의 공연이 선교 활동으로 비쳤기 때문은 아닌지, 또는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G7 정상회의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성명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일본인 승려 아티스트의 중국 공연이 영향을 받은 것 아니냐는 등의 추측도 제기됐습니다.

이처럼 중국 내 공연 취소가 잇따르다 보니 정용화 씨의 사례도 단순히 '한한령'의 잣대로 보기만은 힘들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윤호진 한국콘텐츠진흥원 베이징센터장은 개별 사안들이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있어 일반화하기는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중국의 사상 검열 강화 흐름과 G7 정상회의 등 국제 정세 속 내부 단속 등이 문화계에 복합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평가했습니다. 이같은 흐름은 가뜩이나 코로나19 이후 경기 회복의 탄력을 받지 못하고 있는 중국의 문화 예술 산업계에 악재가 되고 있다고도 설명했습니다.

이른바 한류의 중국 재진출은 이처럼 단순히 한한령 여부를 떠나 중국의 국내외적 여러 요인들이 작용하며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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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아티스트만이 아니다…중국 내 잇단 공연 취소 이유는? [특파원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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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23-05-24 19: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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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승려 음악가인 야쿠시지 칸호(앞줄 가운데)의 중국 순회 공연이 중단됐다. 사진은 충칭 공연 장면(사진: 야쿠시지 칸호 트위터)
중국에서 5월 20일은 젊은이들 사이의 기념일입니다. 520의 중국어 발음이 ‘워아이니(我爱你·너를 사랑해)’와 비슷한 ‘우얼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날을 ‘제2의 밸런타인데이’로 기념합니다. 특히 올해는 고강도 코로나19 방역이 해제된 이후 처음 맞는 520이라 더욱 관심이 높았습니다.

■ 중국, 중화권 등 해외 활동 가수 콘서트 잇달아

올해 중국 젊은 연인들의 520 특별 이벤트 가운데 하나는 공연입니다. 그 중에서도 코로나19 빗장이 풀리며 중국을 찾은 홍콩과 타이완 등 중화권과 해외 아티스트들의 공연이 주목받았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홍콩의 배우 겸 가수 알란 탐이 지난 20일 상하이에서 공연을 했습니다. 90년대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어 CF에 출연하기도 했던 인물입니다. 이번 상하이 공연에서도 조용필의 '친구여'를 번안해 부르기도 했습니다.

타이완 가수 제프 창, 안젤라 창 등도 중국에서 비슷한 기간 콘서트를 열었습니다.

홍콩 가수 알란 탐이 20일 상하이에서 콘서트를 열었다. 조용필의 ‘친구여’ 번안곡도 불렀다.(사진: 빌리빌리 캡처)
이같은 공연들이 성공적으로 열리면서 중국의 코로나19 방역 규제가 완전히 걷혔다는 분위기가 확산됐습니다. 공연 예술 분야에서 중국 당국의 대외 개방 의지를 확인하는 리트머스 실험 역할도 했습니다. 이른바 '한한령' 유지 여부에 관심이 큰 한국 방송계와 연예 기획사들도 이같은 흐름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 중국, 갑작스런 공연 취소 이어져...한국 정용화 씨 출연도 돌연 취소

그런데 갑자기 몇몇 공연들이 잇달아 취소됐습니다. 일본의 선불교 음악가인 야쿠시지 칸호가 대표적입니다. 광저우와 항저우, 베이징, 상하이 등 적어도 중국 도시 4곳의 콘서트가 취소되었습니다. 주최 측은 '불가항력적 이유'가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상급 부문의 통지'가 있었다고도 밝혔습니다.

야쿠시지 칸호의 공연이 ‘상급 부문’의 통지에 따라 ‘불가항력’적 이유로 공연이 취소됐다는 내용의 안내문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지난 주말 항저우에서 열릴 예정이던 한 타이완 밴드(The Chairs)의 공연도 열리지 않았다고 보도했습니다. '정책 관련 이유'였다고 전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한국의 가수 겸 배우 정용화 씨의 중국 예능 프로그램 출연이 돌연 무산된 사실도 전해졌습니다. 지난 17일 베이징에 도착했다 이틀 만에 한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정용화 씨 기획사 측이 말을 아끼는 가운데 방송통신 규제기구인 베이징 광전총국의 '안내글'이 사안의 일단을 설명했습니다. "외국인의 프로그램 촬영 및 제작 참여는 각 성과 자치구, 직할시 라디오와 텔레비전 행정 부서의 검토를 거쳐 국가광전총국에 보고해 승인을 받아야 한다," "해당 프로그램은 앞으로도 정용화 씨를 출연자로 기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한국의 배우 겸 가수 정용화 씨(사진 맨 오른쪽)는 중국 OTT의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할 계획이었다. 정 씨는 중국어 노래도 부르는 등 과거 중국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사진: 웨이보)
이에 대해 중국 제작사가 당국 심의를 받지 않은 채 정 씨를 불러 촬영을 시작했다가 누군가 문의 형식으로 신고를 하자 출연 자체를 없었던 일로 한 것이라는 해석이 뒤따랐습니다. 정용화 씨의 출연 여부와 관련한 SNS 글에는 '한한령 지지' 등을 담은 댓글도 적지 않게 달렸습니다. 따라서 정용화 씨의 출연 불발은 심의 미비라는 형식적 이유와 최근 한중 관계를 반영한 비판적 여론이 겹친 결과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습니다.

■ 중국 코미디언의 '설화' 사건...'사상 검증'·'표현의 자유' 문제도 재부상

이같은 동향과 관련해 최근 중국 내 한 사건도 거론됩니다. 중국의 코미디언 리하오스의 사례입니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중국군 관련 발언을 패러디했다가 최근 소속사 전체가 휘청이게 됐습니다. 소속사에 우리 돈 25억 원이 넘는 벌금과 2억 5천만 원 가량의 부당 이익 몰수 처분이 내려졌습니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까지 나서 "일방적인 웃음 효과만 노리다 선을 밟으면 오류에 빠지게 된다"고 경고했습니다. '최고 존엄'과 '신성한' 군대를 코미디 소재로 삼은 결과는 이처럼 처참했습니다.


시진핑 주석의 중국군 관련 발언을 코미디 소재로 패러디했다 소속사에 수십억대 벌금이 부과된 중국 코미디언 리하오스. 해당 사건 이후 중국내 ‘표현의 자유’ 문제가 다시 부각됐다.(사진: 웨이보)
SCMP는 야쿠시지 칸호의 광저우 공연이 취소된 날이 바로 베이징 공안 당국이 리하오스 조사에 들어간 날이었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비슷한 시기 중국 본토 그룹 '상하이 치우톈'의 산토우 공연도 20일 '불가항력'을 이유로 취소됐다 이후 재개되기도 했습니다. 리하오스의 사례와 이같은 공연 취소들이 맞물리며 중국 내 문화 예술 공연의 자유, 나아가 '표현의 자유', '사상 검증'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습니다.

■ "중국 내 사상 검증 강화·국제 정세 복합 영향...개별 사안들 나름의 이유도"

이와 관련해 야쿠시지 칸호의 경우 승려인만큼 그의 공연이 선교 활동으로 비쳤기 때문은 아닌지, 또는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G7 정상회의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성명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일본인 승려 아티스트의 중국 공연이 영향을 받은 것 아니냐는 등의 추측도 제기됐습니다.

이처럼 중국 내 공연 취소가 잇따르다 보니 정용화 씨의 사례도 단순히 '한한령'의 잣대로 보기만은 힘들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윤호진 한국콘텐츠진흥원 베이징센터장은 개별 사안들이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있어 일반화하기는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중국의 사상 검열 강화 흐름과 G7 정상회의 등 국제 정세 속 내부 단속 등이 문화계에 복합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평가했습니다. 이같은 흐름은 가뜩이나 코로나19 이후 경기 회복의 탄력을 받지 못하고 있는 중국의 문화 예술 산업계에 악재가 되고 있다고도 설명했습니다.

이른바 한류의 중국 재진출은 이처럼 단순히 한한령 여부를 떠나 중국의 국내외적 여러 요인들이 작용하며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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