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보다 낫다?…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동물의 ‘리더십’

입력 2023.01.28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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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장이권 교수가 펼쳐 보이는 '동물의 리더십'
리더십을 진화생물학적 관점에서 조망
환경·상황 따라 발전한 각양각색 동물의 리더십
동물의 리더십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나?


※ [주말& 책] 토요일, 책을 소개합니다.

북미에 서식하는 늑대 수컷의 몸무게는 흔히 50킬로그램이 넘어갑니다. 대형견인 골든 레트리버가 30킬로그램대인 점을 고려하면 늑대의 '덩치'를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키나 무게는 상대적입니다. 야생의 세계로 나가면 늑대보다 큰 동물들도 많습니다. 사슴인 엘크는 300킬로그램, 들소는 1톤 정도 나갑니다.

그래도 늑대는 자신보다 몇 배나 더 크고 무거운 엘크나 들소를 노립니다. 비결은 무리에 있습니다. 외로운 늑대 한 마리가 아니라, 늑대 떼가 나서 자신보다 훨씬 더 큰 동물을 사냥합니다. 협동 작전을 펼치는 겁니다.

여러 마리가 나서기 때문에, 늑대의 사냥은 지도자가 중요합니다. 늑대 가족의 리더인 엄마 늑대와 아빠 늑대의 역할이 중요한 것이죠. 특히 사냥할 때는 아빠 늑대의 판단과 행동이 중요한데, 사냥의 지휘자이자 감독이라 할 수 있는 이 아빠 늑대를 '알파 수컷'이라고 부르고는 합니다.

그렇다면 늑대 무리는 사냥을 어떤 방식으로 하는 것일까요? 알파 수컷은 지도력을 어떻게 발휘해서 사냥 성공이라는 공통의 과제를 달성하는 것일까요? 궁금증이 일게 되는데, 동물의 리더십에 관해 얘기하는 책이 나왔습니다. 장이권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가 쓴 <인류 밖에서 찾은 완벽한 리더들>입니다.

■ 협동 사냥과 최후의 일격... 강하지만 친절한 알파 늑대의 리더십

진화적인 관점에서 동물의 행동과 생태를 연구하고 있는 장이권 교수는, 늑대의 사냥하는 모습을 보면 레프트윙, 라이트윙, 센터로 나뉘어 대형을 짜는 축구 선수들 같다고 말합니다. 역할 분담이 잘 이뤄져 있다는 것이죠. 늑대의 사냥 과정은 이렇습니다.

예를 들어, 엘크를 발견하고 목표물로 삼게 되면 암컷이나 몸집이 작은 수컷들이 먼저 추격합니다. 젊은 수컷이 달아나는 엘크의 뒷다리를 물어 속도를 늦춥니다. 하지만 경험이 많지 않은 젊은 수컷의 역할은 여기까지입니다. 엘크의 숨통을 끊어버리는 마지막 임무는 알파 수컷이 맡습니다. 몸짓과 소리로 의사소통을 하며 사냥을 지휘하는 것은 물론, 성공 여부를 가리는 가장 중요한 일 또한 리더가 맡는 것이죠.

리더인 알파 수컷은 성과물을 독식하지도 않습니다.

알파 수컷은 성공적인 사냥에 결정적으로 기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냥감을 먼저 차지하지 않는다. 우선 가족들을 배불리 먹게 하고, 그러는 동안 자신은 지친 몸을 추스르며 잠을 잔다. 알파 수컷의 이런 배려심은 자신이 무리를 항상 통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알파 수컷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전체 구성원에게 안정감을 준다.
<인류 밖에서 찾은 완벽한 리더들>, p36~37

동물은 종마다 신체 특성도 다르고, 먹이도 다르고, 서식 환경도 다릅니다. 당연히 리더십도 다릅니다. 코끼리, 꿀벌, 침팬지, 카리부, 흰동가리, 미어캣, 개미, 하이에나까지, 크고 작은 집단생활을 하는 여러 동물은 저마다의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책 <인류 밖에서 찾은 완벽한 리더들>도 늑대의 얘기만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 다양하게 발전한 저마다의 리더십... 꿀벌의 분산성 리더십

각양각색인 동물의 리더십! 늑대처럼 '카리스마' 느껴지는 리더십이 있는 반면, 나름의 민주적 리더십도 있습니다. 꿀벌이 그러합니다.

꿀벌들은 무리가 커지면 분봉을 합니다. 봉, 꿀벌들이, 분, 분가한다는 것으로, 기존 벌집의 밀도가 높아져서 상당수 벌이 새로운 벌집을 찾아 이주하는 것을 말합니다.

분봉하게 되면 여왕벌과 일벌의 3분의 2 정도가 기존 벌집을 떠나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나게 됩니다. 문제는 새로 살 집이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일단, 벌집을 떠나온 여왕벌과 일벌들은 나뭇가지 같은 곳에서 임시 거처를 마련합니다.

임시 거처는 말 그대로 잠시 동안 머무르는 곳, 이른 시간 안에 새집을 구해야 합니다. 특히나 이 벌집은 벌의 생존에 아주 중요합니다. 몇 년을 살아야 할 공간이고, 무엇보다 벌집 안에서 추운 겨울도 나야 합니다. 그래서 볕이 잘 드는 남향이어야 합니다. 크기는 충분해야 하고, 벌집 내부에는 습기가 차면 안 됩니다. 이런저런 까다로운 조건을 맞춰야 해서 좋은 새집 구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들 벌에게는 시간도 촉박합니다.

괜찮은 집을 찾으려면 시간이 필요한데 이들에게는 그럴 여유가 없다. 당장 집도 없고 저장된 식량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먹이 활동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이렇게 분봉한 벌들에게 새집을 찾는 데에 주어진 시간은 기껏해야 3일 정도다. 그때까지 어떻게든 새로운 집을 찾아야 한다.
<인류 밖에서 찾은 완벽한 리더들>, 173~174

벌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새집을 마련하는 것일까요? 꿀벌의 새집 찾기 과정은 탐색과 토론, 이주의 단계로 이뤄져 있습니다. 먼저 탐색, 아무나 나서지 않습니다. 경험이 풍부한 나이 많은 일벌이 맡습니다. '정찰벌들'입니다. 이들 정찰벌들은 무리의 5% 정도에 불과합니다. 비행 경험도 많고, 주변 자연환경에 대한 정보도 많이 가진 '베테랑들'인 셈입니다.

새집 정찰을 나간 각각의 정찰벌은 독립적으로 판단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새집 후보를 추천합니다. 그리고 널리 알려진 것처럼, 이때도 벌들 특유의 춤을 춰서 소통합니다.

꿀벌의 의사소통도 인간의 언어처럼 기호를 사용한다. 그 기호는 바로 꿀벌이 추는 '8자춤'이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새집 후보를 찾아낸 정찰벌들이 무리로 돌아와 그 후보 새집을 추천한다. 이때 좋은 새집 후보를 찾은 정찰벌은 격렬하게 8자춤을 추고, 보통의 새집 후보를 찾으면 시원찮게 춤을 추기도 한다.
<인류 밖에서 찾은 완벽한 리더들>, p177~178

신호를 받은 또 다른 정찰벌은 그곳으로 가서 확인해봅니다. 새집 후보가 맘에 들면 이 벌도 돌아와서 8자 춤을 춥니다. 좋은 새집 후보일 경우에는 그곳을 방문하고 돌아와 8자 춤을 추는 정찰벌의 수가 계속해서 늘어나게 되는 구조입니다.

그렇지만 확인해봤더니 맘에 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는 춤을 추지 않습니다. 이렇게 정찰벌마다 자기 의사를 표현합니다. A가 더 나은가, B가 더 나은가, 찬성인가, 반대인가, 민주사회의 투표와도 비슷합니다.

그럼 최종 의사결정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정찰벌들은 정족수를 이용해 의사결정을 한다.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정찰벌의 수가 일정한 수치에 도달하면, 그 즉시 의사결정이 이루어진다.
<인류 밖에서 찾은 완벽한 리더들>, p178

새집이 결정되면, 이주를 합니다. 이주 과정에서도 정찰벌들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정찰벌들만 새집의 위치를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찰벌들이 안내를 하고, 나머지 다른 벌들이 따라갑니다.

장이권 교수는 꿀벌이 새집을 찾아 나설 때의 과정을 보면, 의사결정을 하는 주체가 한 개인이나 소수에게 집중돼 있지 않고 정찰벌 모두에게 퍼져있다고 강조합니다. 장 교수는 그래서 이것을 '분산성 리더십'이라고 부른다고 설명합니다. 이와 같은 의사결정 방식은 민주적인 의사결정이라고도 할 수 있을 텐데, 장 교수는 이의 장점에 관해서도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이론적인 연구 결과를 보면 민주적인 의사결정이 독재적인 의사결정보다 집단에 항상 유리하다(Conradt and Roper, 2003). 그 이유는 민주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갖는 경우 극단적인 결정을 내리는 경향이 적기 때문이다. 독재적 의사결정을 가진 집단은 아홉 번의 훌륭한 선택을 하고도 마지막 한 번의 치명적인 결정을 통해 구성원들이 몹시 어려워질 수 있다.
<인류 밖에서 찾은 완벽한 리더들>, p197

책 <인류 밖에서 찾은 완벽한 리더들>은 야생의 세계에 사는 여러 동물의 다양한 리더십에 관해 말하고 있습니다. 동물의 세계에서 '어떤 동물의 리더십이 정답이다', '어떤 동물의 리더십이 다른 리더십보다 우월하다', 이런 것은 없습니다. 동물마다 자신들이 처한 환경에서 최적의 리더십을 선택해 오며 진화해 왔기 때문입니다.

〈인류 밖에서 찾은 완벽한 리더들, p11〉〈인류 밖에서 찾은 완벽한 리더들, p11〉

지난 26일 취재진을 만난 장이권 교수는 동물의 세계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리더십'에 관해 강조했습니다.

"다양한 리더십이 저는 이 책의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리더십이라는 것은 어떤 사회, 그리고 그 사회를 이루고 있는 구성원들의 고유 특징이에요. 모임이라고 해도 가족인가, 친목 모임인가, 집단인가에 따라 구성 요인이나 기능이 다 다르잖아요. 각 사회에서 필요한 리더십도 다 달라요. 집단마다, 사회마다 나타나는 문제점도 다 다르고요. 그렇기 때문에 사회마다 고유의 리더십이 필요한 겁니다."

장이권 교수는 특히 동물 집단도 규모에 따라 리더의 주요 임무가 달라지고는 한다고 말했습니다. 혈연 위주로 이뤄진 소규모 동물 집단의 경우 리더는 문제 해결에 힘을 쏟으면 되지만, 대규모 집단이 되면 리더가 나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죠. 그래서 꿀벌 사회처럼 무리의 규모가 커지면, 리더는 무리의 번성과 함께 무리 안 구성원들을 결속시키는 일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합니다.

인간 사회는 어떨까요? 인간은 일반적으로 동물의 '사회'보다 훨씬 더 거대하고, 복잡다단한 사회를 이뤄 살고 있습니다. 작은 집단도 있고 큰 집단도 있는 등 사회 속 집단의 규모가 다양합니다. 동질적 집단도 있는 반면 이질적 집단도 있어서 구성원의 성격도 같지 않습니다. 쉬운 과제와 어려운 과제로 나뉘는 등 과제의 난이도도 제각각입니다. 그만큼 다양한 종류의 리더십이 필요할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지가지인 동물의 리더십은 인간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장이권 교수는 동물의 리더십을 살펴보는 것은 인간의 리더십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완벽한 리더는 없다고 하지만, 우리 모두 완벽한 리더에 대한 갈증이 있잖아요. 인간 사회와 다양한 동물사회를 비교해 보면 리더의 본질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에서 이 책을 집필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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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밖에서 찾은 완벽한 리더들
장이권 지음 / 21세기북스 / 2023년 1월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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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보다 낫다?…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동물의 ‘리더십’
    • 입력 2023-01-28 09:01:09
    취재K
<strong>장이권 교수가 펼쳐 보이는 '동물의 리더십'</strong><br /><strong>리더십을 진화생물학적 관점에서 조망</strong><br /><strong>환경·상황 따라 발전한 각양각색 동물의 리더십</strong><br /><strong>동물의 리더십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나?</strong><br />

※ [주말& 책] 토요일, 책을 소개합니다.

북미에 서식하는 늑대 수컷의 몸무게는 흔히 50킬로그램이 넘어갑니다. 대형견인 골든 레트리버가 30킬로그램대인 점을 고려하면 늑대의 '덩치'를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키나 무게는 상대적입니다. 야생의 세계로 나가면 늑대보다 큰 동물들도 많습니다. 사슴인 엘크는 300킬로그램, 들소는 1톤 정도 나갑니다.

그래도 늑대는 자신보다 몇 배나 더 크고 무거운 엘크나 들소를 노립니다. 비결은 무리에 있습니다. 외로운 늑대 한 마리가 아니라, 늑대 떼가 나서 자신보다 훨씬 더 큰 동물을 사냥합니다. 협동 작전을 펼치는 겁니다.

여러 마리가 나서기 때문에, 늑대의 사냥은 지도자가 중요합니다. 늑대 가족의 리더인 엄마 늑대와 아빠 늑대의 역할이 중요한 것이죠. 특히 사냥할 때는 아빠 늑대의 판단과 행동이 중요한데, 사냥의 지휘자이자 감독이라 할 수 있는 이 아빠 늑대를 '알파 수컷'이라고 부르고는 합니다.

그렇다면 늑대 무리는 사냥을 어떤 방식으로 하는 것일까요? 알파 수컷은 지도력을 어떻게 발휘해서 사냥 성공이라는 공통의 과제를 달성하는 것일까요? 궁금증이 일게 되는데, 동물의 리더십에 관해 얘기하는 책이 나왔습니다. 장이권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가 쓴 <인류 밖에서 찾은 완벽한 리더들>입니다.

■ 협동 사냥과 최후의 일격... 강하지만 친절한 알파 늑대의 리더십

진화적인 관점에서 동물의 행동과 생태를 연구하고 있는 장이권 교수는, 늑대의 사냥하는 모습을 보면 레프트윙, 라이트윙, 센터로 나뉘어 대형을 짜는 축구 선수들 같다고 말합니다. 역할 분담이 잘 이뤄져 있다는 것이죠. 늑대의 사냥 과정은 이렇습니다.

예를 들어, 엘크를 발견하고 목표물로 삼게 되면 암컷이나 몸집이 작은 수컷들이 먼저 추격합니다. 젊은 수컷이 달아나는 엘크의 뒷다리를 물어 속도를 늦춥니다. 하지만 경험이 많지 않은 젊은 수컷의 역할은 여기까지입니다. 엘크의 숨통을 끊어버리는 마지막 임무는 알파 수컷이 맡습니다. 몸짓과 소리로 의사소통을 하며 사냥을 지휘하는 것은 물론, 성공 여부를 가리는 가장 중요한 일 또한 리더가 맡는 것이죠.

리더인 알파 수컷은 성과물을 독식하지도 않습니다.

알파 수컷은 성공적인 사냥에 결정적으로 기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냥감을 먼저 차지하지 않는다. 우선 가족들을 배불리 먹게 하고, 그러는 동안 자신은 지친 몸을 추스르며 잠을 잔다. 알파 수컷의 이런 배려심은 자신이 무리를 항상 통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알파 수컷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전체 구성원에게 안정감을 준다.
<인류 밖에서 찾은 완벽한 리더들>, p36~37

동물은 종마다 신체 특성도 다르고, 먹이도 다르고, 서식 환경도 다릅니다. 당연히 리더십도 다릅니다. 코끼리, 꿀벌, 침팬지, 카리부, 흰동가리, 미어캣, 개미, 하이에나까지, 크고 작은 집단생활을 하는 여러 동물은 저마다의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책 <인류 밖에서 찾은 완벽한 리더들>도 늑대의 얘기만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 다양하게 발전한 저마다의 리더십... 꿀벌의 분산성 리더십

각양각색인 동물의 리더십! 늑대처럼 '카리스마' 느껴지는 리더십이 있는 반면, 나름의 민주적 리더십도 있습니다. 꿀벌이 그러합니다.

꿀벌들은 무리가 커지면 분봉을 합니다. 봉, 꿀벌들이, 분, 분가한다는 것으로, 기존 벌집의 밀도가 높아져서 상당수 벌이 새로운 벌집을 찾아 이주하는 것을 말합니다.

분봉하게 되면 여왕벌과 일벌의 3분의 2 정도가 기존 벌집을 떠나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나게 됩니다. 문제는 새로 살 집이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일단, 벌집을 떠나온 여왕벌과 일벌들은 나뭇가지 같은 곳에서 임시 거처를 마련합니다.

임시 거처는 말 그대로 잠시 동안 머무르는 곳, 이른 시간 안에 새집을 구해야 합니다. 특히나 이 벌집은 벌의 생존에 아주 중요합니다. 몇 년을 살아야 할 공간이고, 무엇보다 벌집 안에서 추운 겨울도 나야 합니다. 그래서 볕이 잘 드는 남향이어야 합니다. 크기는 충분해야 하고, 벌집 내부에는 습기가 차면 안 됩니다. 이런저런 까다로운 조건을 맞춰야 해서 좋은 새집 구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들 벌에게는 시간도 촉박합니다.

괜찮은 집을 찾으려면 시간이 필요한데 이들에게는 그럴 여유가 없다. 당장 집도 없고 저장된 식량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먹이 활동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이렇게 분봉한 벌들에게 새집을 찾는 데에 주어진 시간은 기껏해야 3일 정도다. 그때까지 어떻게든 새로운 집을 찾아야 한다.
<인류 밖에서 찾은 완벽한 리더들>, 173~174

벌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새집을 마련하는 것일까요? 꿀벌의 새집 찾기 과정은 탐색과 토론, 이주의 단계로 이뤄져 있습니다. 먼저 탐색, 아무나 나서지 않습니다. 경험이 풍부한 나이 많은 일벌이 맡습니다. '정찰벌들'입니다. 이들 정찰벌들은 무리의 5% 정도에 불과합니다. 비행 경험도 많고, 주변 자연환경에 대한 정보도 많이 가진 '베테랑들'인 셈입니다.

새집 정찰을 나간 각각의 정찰벌은 독립적으로 판단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새집 후보를 추천합니다. 그리고 널리 알려진 것처럼, 이때도 벌들 특유의 춤을 춰서 소통합니다.

꿀벌의 의사소통도 인간의 언어처럼 기호를 사용한다. 그 기호는 바로 꿀벌이 추는 '8자춤'이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새집 후보를 찾아낸 정찰벌들이 무리로 돌아와 그 후보 새집을 추천한다. 이때 좋은 새집 후보를 찾은 정찰벌은 격렬하게 8자춤을 추고, 보통의 새집 후보를 찾으면 시원찮게 춤을 추기도 한다.
<인류 밖에서 찾은 완벽한 리더들>, p177~178

신호를 받은 또 다른 정찰벌은 그곳으로 가서 확인해봅니다. 새집 후보가 맘에 들면 이 벌도 돌아와서 8자 춤을 춥니다. 좋은 새집 후보일 경우에는 그곳을 방문하고 돌아와 8자 춤을 추는 정찰벌의 수가 계속해서 늘어나게 되는 구조입니다.

그렇지만 확인해봤더니 맘에 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는 춤을 추지 않습니다. 이렇게 정찰벌마다 자기 의사를 표현합니다. A가 더 나은가, B가 더 나은가, 찬성인가, 반대인가, 민주사회의 투표와도 비슷합니다.

그럼 최종 의사결정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정찰벌들은 정족수를 이용해 의사결정을 한다.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정찰벌의 수가 일정한 수치에 도달하면, 그 즉시 의사결정이 이루어진다.
<인류 밖에서 찾은 완벽한 리더들>, p178

새집이 결정되면, 이주를 합니다. 이주 과정에서도 정찰벌들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정찰벌들만 새집의 위치를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찰벌들이 안내를 하고, 나머지 다른 벌들이 따라갑니다.

장이권 교수는 꿀벌이 새집을 찾아 나설 때의 과정을 보면, 의사결정을 하는 주체가 한 개인이나 소수에게 집중돼 있지 않고 정찰벌 모두에게 퍼져있다고 강조합니다. 장 교수는 그래서 이것을 '분산성 리더십'이라고 부른다고 설명합니다. 이와 같은 의사결정 방식은 민주적인 의사결정이라고도 할 수 있을 텐데, 장 교수는 이의 장점에 관해서도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이론적인 연구 결과를 보면 민주적인 의사결정이 독재적인 의사결정보다 집단에 항상 유리하다(Conradt and Roper, 2003). 그 이유는 민주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갖는 경우 극단적인 결정을 내리는 경향이 적기 때문이다. 독재적 의사결정을 가진 집단은 아홉 번의 훌륭한 선택을 하고도 마지막 한 번의 치명적인 결정을 통해 구성원들이 몹시 어려워질 수 있다.
<인류 밖에서 찾은 완벽한 리더들>, p197

책 <인류 밖에서 찾은 완벽한 리더들>은 야생의 세계에 사는 여러 동물의 다양한 리더십에 관해 말하고 있습니다. 동물의 세계에서 '어떤 동물의 리더십이 정답이다', '어떤 동물의 리더십이 다른 리더십보다 우월하다', 이런 것은 없습니다. 동물마다 자신들이 처한 환경에서 최적의 리더십을 선택해 오며 진화해 왔기 때문입니다.

〈인류 밖에서 찾은 완벽한 리더들, p11〉
지난 26일 취재진을 만난 장이권 교수는 동물의 세계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리더십'에 관해 강조했습니다.

"다양한 리더십이 저는 이 책의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리더십이라는 것은 어떤 사회, 그리고 그 사회를 이루고 있는 구성원들의 고유 특징이에요. 모임이라고 해도 가족인가, 친목 모임인가, 집단인가에 따라 구성 요인이나 기능이 다 다르잖아요. 각 사회에서 필요한 리더십도 다 달라요. 집단마다, 사회마다 나타나는 문제점도 다 다르고요. 그렇기 때문에 사회마다 고유의 리더십이 필요한 겁니다."

장이권 교수는 특히 동물 집단도 규모에 따라 리더의 주요 임무가 달라지고는 한다고 말했습니다. 혈연 위주로 이뤄진 소규모 동물 집단의 경우 리더는 문제 해결에 힘을 쏟으면 되지만, 대규모 집단이 되면 리더가 나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죠. 그래서 꿀벌 사회처럼 무리의 규모가 커지면, 리더는 무리의 번성과 함께 무리 안 구성원들을 결속시키는 일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합니다.

인간 사회는 어떨까요? 인간은 일반적으로 동물의 '사회'보다 훨씬 더 거대하고, 복잡다단한 사회를 이뤄 살고 있습니다. 작은 집단도 있고 큰 집단도 있는 등 사회 속 집단의 규모가 다양합니다. 동질적 집단도 있는 반면 이질적 집단도 있어서 구성원의 성격도 같지 않습니다. 쉬운 과제와 어려운 과제로 나뉘는 등 과제의 난이도도 제각각입니다. 그만큼 다양한 종류의 리더십이 필요할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지가지인 동물의 리더십은 인간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장이권 교수는 동물의 리더십을 살펴보는 것은 인간의 리더십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완벽한 리더는 없다고 하지만, 우리 모두 완벽한 리더에 대한 갈증이 있잖아요. 인간 사회와 다양한 동물사회를 비교해 보면 리더의 본질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에서 이 책을 집필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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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밖에서 찾은 완벽한 리더들
장이권 지음 / 21세기북스 / 2023년 1월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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