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한국 관광? 징집 회피?…러시아 ‘요트 피플’의 정체는

입력 2022.10.15 (09:00) 수정 2022.10.25 (17:04)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예비역 30만 명을 군에 동원하겠다고 발표한 지 3주가 흘렀습니다. 그 사이 크림 대교 폭발 사건이 있었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 군사적 충돌은 더욱 격화하는 모습입니다.

이런 가운데 '부분 동원령'을 피하기 위한 '탈(脫) 러시아'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습니다.

KBS도 이달 들어 우리나라 동해안 쪽에 러시아 요트 네 척이 잇따라 진입했지만, 승선원 23명 가운데 21명이 '입국 허가'를 받지 못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입국 목적이 불분명하고 관련 서류가 미비하다는 이유였습니다. “관광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는 러시아인들의 방문 목적을 믿을 수 없다고 본 것입니다.

[연관 기사]
[단독] “동원령 회피 의심”…러시아 요트 ‘입국 불허’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575968
[단독] 포항에도 러시아 요트 3척 입항…“20여 명 밀착 감시”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575969

■ 해경 "러시아 요트, 징집 회피 목적 입국 의심"

그런데 추가 취재 결과, 우리 출입국 당국이 이들을 '부분 동원령' 여파로 시작된 탈(脫)러시아 행렬의 일부일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지난 1일 포항해경이 작성한 상황 보고서에는 A요트에 대해 "포항출입국사무소에서는 승선원 10명 전원에 대해 자국 징집회피 목적 입국 의심 등 사유를 들어 입국 불허대상자로 지정"이라는 내용이 적시된 겁니다. 해경은 보고서에서 이 요트에 대한 철저한 동향 감시를 지시하기도 했습니다.

입국이 불허된 뒤 국가 '가급' 보안시설인 포항신항에 접안해 감시를 받던 이 요트는 열흘 만인 지난 11일 동해안으로 떠났습니다. 우리 해군 초계기는 이튿날 오후 1시 반쯤 이 요트가 동해 북방한계선(NLL)을 통과해 우리 해역에서 이탈한 것으로 확인했습니다.


■ 러시아 요트 또 왔다…남해 물건항에 입항

KBS는 이에 더해 지난 9일 오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항한 또 다른 요트 한 척이 국내 입국에 성공한 사실도 확인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들어왔지만, 불허 통보를 받았던 다른 요트들과 달리 무사히 입국 수속을 마친 요트가 나온 겁니다.

길이 20m, 폭 5m, 42톤 규모의 요트에 러시아 남성 4명이 타고 있었는데, 경남 남해군 물건항에 닻을 내렸습니다.

당시 상황 보고서를 보면 해경은 전탐(전파 탐지기) 감시 중 특이사항을 발견하지 못했고, 대행업체를 통해 입항 수속에도 특이점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해당 요트는 내년 4월 30일까지 한국에 머물 수 있다는 허가를 받았고, 앞으로 6개월가량 요트 수리를 진행한 뒤 한국을 떠날 예정입니다.


[연관 기사] [단독] “징집 회피 목적 의심” 보고서 입수…러시아 요트 ‘또’ 왔다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578804

■ 이번엔 '입국 허가'…무엇이 달랐나?

앞서 KBS가 보도했던 러시아 요트 4척의 경우, '전자여행허가(K-ETA)'를 신청했지만 승인받지 못해 입국이 불허됐습니다. 하지만 이번 요트의 경우 K-ETA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들의 출입국을 관리하는 법무부 관계자는 "구체적으로 왜 허가가 났는지는 개인정보라서 답변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말을 아꼈습니다.

현행 출입국관리법에 따르면 입국심사 시 ▲입국 목적이 체류자격에 맞는지 ▲입국의 금지 또는 거부 대상이 아닌지 ▲허가된 체류 기간 내에 대한민국에서 출국할 것으로 인정되는지 등을 따져보게 됩니다.

하지만 K-ETA 발급이 불허됐을 경우 그 구체적인 사유를 알기는 사실상 어렵습니다.

K-ETA 공식 홈페이지는 이에 대해 "K-ETA 센터의 내부 심사 기준을 만족하지 못할 경우 불허 통보를 받게 되며, 내부 심사 기준은 비공개 대상이므로 안내해 드릴 수 없음을 양해 부탁드린다"고 공지하고 있습니다.


다만, 추정해볼 수 있는 입국 허가 사유는 우선 이들의 나이입니다. 입국을 허가받은 요트에 탄 건 50대 후반 남성 2명과 40대 초반 남성 2명으로 파악됐는데요. 20~30대 젊은 남성이 다수였던 다른 요트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러시아군이 공식적으로 밝힌 바에 따르면, 군 동원 대상은 병사와 부사관으로 전역한 35살 이하 예비군, 초급 장교로 전역한 50살 이하 예비군, 고급 장교로 군 복무를 마친 55살 이하 예비군입니다.

또 입국 절차 대행 업체에 따르면 이 요트는 10년 가까이 겨울철마다 한국을 오간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추운 겨울 블라디보스토크의 바닷물이 얼면 선체가 견뎌내지 못하니 경유지를 찾아 남하한 건데, 과거엔 포항이나 부산 등에 정박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 내부심사 기준은 '비공개'…"명확한 매뉴얼 필요"

하지만 전쟁이 길어질 경우 유사한 사례가 잇따를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더 명확한 입국 허가 기준이나 조사 절차가 필요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옵니다.

현재 입국이 불허돼 포항에 계류 중인 러시아 요트의 대행업체 관계자는 "저희도 K-ETA에 물어보니까 당분간은 승인이 안 되고 있다고만 들었다""언제부터 왜 안 되는지는 파악을 못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들이 태국 푸껫이 최종 목적지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실제로 갈지는 알 수 없다""(징집 회피 목적이) 추정은 되는데 증거가 없고 본인들이 이야기한 것도 아니니, 저희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고 전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안호영 국회 농해수위 위원(더불어민주당)은 "이번 사례를 보더라도 러시아 탈출이 급증할 경우에 한국이 사실상 '중간 기착지'가 될 가능성이 큰 만큼 외교와 인권 등을 고려한 구체적인 대응 매뉴얼 마련이 시급하다"고 밝혔습니다.

정봉훈 해양경찰청장은 그제(13일) 열린 국회 농해수위 국정감사에서 "법무부나 해수부 등 관계기관과 같이 모여서 한번 논의를 하도록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대문사진: 배동희 / 인포그래픽: 김서린)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취재후] 한국 관광? 징집 회피?…러시아 ‘요트 피플’의 정체는
    • 입력 2022-10-15 09:00:07
    • 수정2022-10-25 17:04:31
    취재후·사건후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예비역 30만 명을 군에 동원하겠다고 발표한 지 3주가 흘렀습니다. 그 사이 크림 대교 폭발 사건이 있었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 군사적 충돌은 더욱 격화하는 모습입니다.

이런 가운데 '부분 동원령'을 피하기 위한 '탈(脫) 러시아'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습니다.

KBS도 이달 들어 우리나라 동해안 쪽에 러시아 요트 네 척이 잇따라 진입했지만, 승선원 23명 가운데 21명이 '입국 허가'를 받지 못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입국 목적이 불분명하고 관련 서류가 미비하다는 이유였습니다. “관광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는 러시아인들의 방문 목적을 믿을 수 없다고 본 것입니다.

[연관 기사]
[단독] “동원령 회피 의심”…러시아 요트 ‘입국 불허’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575968
[단독] 포항에도 러시아 요트 3척 입항…“20여 명 밀착 감시”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575969

■ 해경 "러시아 요트, 징집 회피 목적 입국 의심"

그런데 추가 취재 결과, 우리 출입국 당국이 이들을 '부분 동원령' 여파로 시작된 탈(脫)러시아 행렬의 일부일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지난 1일 포항해경이 작성한 상황 보고서에는 A요트에 대해 "포항출입국사무소에서는 승선원 10명 전원에 대해 자국 징집회피 목적 입국 의심 등 사유를 들어 입국 불허대상자로 지정"이라는 내용이 적시된 겁니다. 해경은 보고서에서 이 요트에 대한 철저한 동향 감시를 지시하기도 했습니다.

입국이 불허된 뒤 국가 '가급' 보안시설인 포항신항에 접안해 감시를 받던 이 요트는 열흘 만인 지난 11일 동해안으로 떠났습니다. 우리 해군 초계기는 이튿날 오후 1시 반쯤 이 요트가 동해 북방한계선(NLL)을 통과해 우리 해역에서 이탈한 것으로 확인했습니다.


■ 러시아 요트 또 왔다…남해 물건항에 입항

KBS는 이에 더해 지난 9일 오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항한 또 다른 요트 한 척이 국내 입국에 성공한 사실도 확인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들어왔지만, 불허 통보를 받았던 다른 요트들과 달리 무사히 입국 수속을 마친 요트가 나온 겁니다.

길이 20m, 폭 5m, 42톤 규모의 요트에 러시아 남성 4명이 타고 있었는데, 경남 남해군 물건항에 닻을 내렸습니다.

당시 상황 보고서를 보면 해경은 전탐(전파 탐지기) 감시 중 특이사항을 발견하지 못했고, 대행업체를 통해 입항 수속에도 특이점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해당 요트는 내년 4월 30일까지 한국에 머물 수 있다는 허가를 받았고, 앞으로 6개월가량 요트 수리를 진행한 뒤 한국을 떠날 예정입니다.


[연관 기사] [단독] “징집 회피 목적 의심” 보고서 입수…러시아 요트 ‘또’ 왔다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578804

■ 이번엔 '입국 허가'…무엇이 달랐나?

앞서 KBS가 보도했던 러시아 요트 4척의 경우, '전자여행허가(K-ETA)'를 신청했지만 승인받지 못해 입국이 불허됐습니다. 하지만 이번 요트의 경우 K-ETA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들의 출입국을 관리하는 법무부 관계자는 "구체적으로 왜 허가가 났는지는 개인정보라서 답변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말을 아꼈습니다.

현행 출입국관리법에 따르면 입국심사 시 ▲입국 목적이 체류자격에 맞는지 ▲입국의 금지 또는 거부 대상이 아닌지 ▲허가된 체류 기간 내에 대한민국에서 출국할 것으로 인정되는지 등을 따져보게 됩니다.

하지만 K-ETA 발급이 불허됐을 경우 그 구체적인 사유를 알기는 사실상 어렵습니다.

K-ETA 공식 홈페이지는 이에 대해 "K-ETA 센터의 내부 심사 기준을 만족하지 못할 경우 불허 통보를 받게 되며, 내부 심사 기준은 비공개 대상이므로 안내해 드릴 수 없음을 양해 부탁드린다"고 공지하고 있습니다.


다만, 추정해볼 수 있는 입국 허가 사유는 우선 이들의 나이입니다. 입국을 허가받은 요트에 탄 건 50대 후반 남성 2명과 40대 초반 남성 2명으로 파악됐는데요. 20~30대 젊은 남성이 다수였던 다른 요트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러시아군이 공식적으로 밝힌 바에 따르면, 군 동원 대상은 병사와 부사관으로 전역한 35살 이하 예비군, 초급 장교로 전역한 50살 이하 예비군, 고급 장교로 군 복무를 마친 55살 이하 예비군입니다.

또 입국 절차 대행 업체에 따르면 이 요트는 10년 가까이 겨울철마다 한국을 오간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추운 겨울 블라디보스토크의 바닷물이 얼면 선체가 견뎌내지 못하니 경유지를 찾아 남하한 건데, 과거엔 포항이나 부산 등에 정박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 내부심사 기준은 '비공개'…"명확한 매뉴얼 필요"

하지만 전쟁이 길어질 경우 유사한 사례가 잇따를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더 명확한 입국 허가 기준이나 조사 절차가 필요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옵니다.

현재 입국이 불허돼 포항에 계류 중인 러시아 요트의 대행업체 관계자는 "저희도 K-ETA에 물어보니까 당분간은 승인이 안 되고 있다고만 들었다""언제부터 왜 안 되는지는 파악을 못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들이 태국 푸껫이 최종 목적지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실제로 갈지는 알 수 없다""(징집 회피 목적이) 추정은 되는데 증거가 없고 본인들이 이야기한 것도 아니니, 저희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고 전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안호영 국회 농해수위 위원(더불어민주당)은 "이번 사례를 보더라도 러시아 탈출이 급증할 경우에 한국이 사실상 '중간 기착지'가 될 가능성이 큰 만큼 외교와 인권 등을 고려한 구체적인 대응 매뉴얼 마련이 시급하다"고 밝혔습니다.

정봉훈 해양경찰청장은 그제(13일) 열린 국회 농해수위 국정감사에서 "법무부나 해수부 등 관계기관과 같이 모여서 한번 논의를 하도록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대문사진: 배동희 / 인포그래픽: 김서린)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