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탄소, 너 얼마니?”…우리나라엔 없는 ‘탄소 사회적 비용’

입력 2021.12.28 (07:00) 수정 2021.12.2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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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도 영상 10도를 유지하는 미국 남부 텍사스. 지난 2월, 영하 20도의 이상 한파가 찾아왔습니다. 북극의 찬 공기가 이례적으로 미국 남부까지 내려왔기 때문입니다. 이례적인 북극의 찬 공기, 원인은 기후변화였습니다.

도시는 한순간에 마비됐습니다. 주민들은 수도관이 파열돼 마실 물조차 구하기 어려웠고, 정전도 계속됐습니다. 경제적 피해도 심각했습니다. 관련 피해액만 약 1조 원 이상이 났습니다.

이렇듯 기후위기는 이제 온몸으로 체감할 수 있는 피해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는 돈으로 따지면 얼마나 될까요?

미국과 영국 등에서는 이런 기후위기 피해 규모를 계산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탄소의 사회적 비용'입니다.

탄소의 사회적 비용 (SCC, Social Cost of Carbon)

◆ 1톤의 탄소(이산화탄소) 배출로 인해 사회가 1년 동안 부담해야 하는 경제적인 비용.
기후위기로 사회가 부담하는 손실 규모. 기후위기로 인한 농업 생산성, 재산 피해, 건강 영향 등 포함
◆ 국제적으로 규정된 계산법이나 기준은 없으며, 나라마다 상황에 맞춰 자의적으로 계산


■ 같은 탄소, 다른 계산…나라마다 '탄소 비용' 다른 이유는?



같은 탄소인데, 나라마다 따져 내놓은 값이 천차만별입니다.

이유는 나라마다 '기후위기 심각성'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기후위기로 인한 인명손실, 미래세대가 입을 피해에 대한 가중치에 따라 할인율 등 적용하는 값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미국의 경우 정권에 따라 이 '탄소의 사회적 비용'이 달라졌습니다. 트럼프 정부 때 탄소의 사회적 비용은 1톤당 7달러였습니다. 2017년 파리 기후변화협약을 탈퇴하는 등 기후위기 대응에 부정적이었던 까닭입니다.

반면, 기후변화협약에 재가입한 바이든 정부는 탄소의 사회적 비용을 1톤당 51달러로 계산했습니다. 전 정권과 비교해 7배 넘게 오른 셈입니다. 그나마 바이든 정부의 추산 비용도 다른 유럽 국가와 비교하면 탄소 피해를 적게 잡은, 보수적 계산이라는 게 환경전문가들의 평가입니다.

김지석 /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전문위원
"미국의 '1톤당 51달러'는 오바마 정부 때 '1톤당 36달러'에 물가 상승을 반영한 겁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1톤당 7달러'까지 내린 걸 급한 대로 복귀시킨 것에 불과합니다. 내년 초 미국 정부는 다시 사회적 비용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유럽 주요국들은 미국보다 탄소의 사회적 비용이 높습니다. 예를 들어, 독일은 비용을 계산할 때 미래세대가 겪을 기후위기 피해를 현재 피해와 동등하게 평가해 계산합니다."


■ '탄소의 사회적 비용', 우리나라는 얼마?

결론부터 말하자면 '계산 불가'입니다.

'탄소의 사회적 비용'은 기후위기 대응에 나선 해외 주요국들을 중심으로 제법 진행됐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관련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경제적 영향에 대한 연구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닙니다. 환경부는 기후위기로 인한 경제 피해 연구를 2011년과 올해 두 차례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도 '탄소의 사회적 비용'에 대한 연구는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한국환경연구원의 ‘기후위기 경제 피해 분석’ 자료. 여러 기후 시나리오별로 피해 비용을 분석한국환경연구원의 ‘기후위기 경제 피해 분석’ 자료. 여러 기후 시나리오별로 피해 비용을 분석

전문가들은 '탄소의 사회적 비용'을 정하는 건 국책연구기관 한 곳에서 진행할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합니다. 실제로 미국 정부는 탄소의 사회적 비용을 만들기 위해 미국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와 미 행정부 주요 부처 등 14개 정부 기관이 참여해 만들었습니다. 그만큼 탄소의 사회적 비용이 포괄적이고 종합적으로 연구돼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채여라 / 한국환경연구원 기후대기안전연구본부 선임연구위원
"그동안 정부가 (탄소의 사회적 비용을) 만들 시도를 안 했죠. 제가 알기론 움직임이 없었죠. 관련 연구나 움직임이 없었던 이유는 이해가 부족하고 중요성을 적게 봤던 게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정부가 '우리가 보는 탄소의 비용은 이렇다.'라고 제시를 해야 합니다. 연구기관 혼자 비용을 정할 수 없어요. 권위가 없거든요. 정부 부처에서 주도해서 발표하고 자료도 주기적으로 갱신해야 합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많은 기후위기 전문가들은 '탄소의 사회적 비용'이 중요하고 반드시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탄소의 사회적 비용'이 있어야 탄소세, 배출권거래제 등 탄소 감축 정책들을 제대로 짤 수 있고, 해외 압박에 대응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취재진은 미국의 '탄소의 사회적 비용'을 이용해 우리나라에서 배출한 탄소의 경제 피해 규모를 추산했습니다. 그리고 한 해 41조 원의 돈이 탄소 비용으로 추산됐습니다.

[연관 기사] 한국 기후 재난에 부담하는 돈은?…한 해 ‘41조 원’ 추산 (KBS 뉴스9, 2021.12.23)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355925

하지만 이제 우리나라 현실에 맞는, 우리 사회에 특성화된 탄소의 사회적 비용 계산이 시급합니다. 탄소중립은 결코, 먼 미래 얘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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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탄소, 너 얼마니?”…우리나라엔 없는 ‘탄소 사회적 비용’
    • 입력 2021-12-28 07:00:06
    • 수정2021-12-28 07:00:13
    취재후·사건후

겨울에도 영상 10도를 유지하는 미국 남부 텍사스. 지난 2월, 영하 20도의 이상 한파가 찾아왔습니다. 북극의 찬 공기가 이례적으로 미국 남부까지 내려왔기 때문입니다. 이례적인 북극의 찬 공기, 원인은 기후변화였습니다.

도시는 한순간에 마비됐습니다. 주민들은 수도관이 파열돼 마실 물조차 구하기 어려웠고, 정전도 계속됐습니다. 경제적 피해도 심각했습니다. 관련 피해액만 약 1조 원 이상이 났습니다.

이렇듯 기후위기는 이제 온몸으로 체감할 수 있는 피해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는 돈으로 따지면 얼마나 될까요?

미국과 영국 등에서는 이런 기후위기 피해 규모를 계산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탄소의 사회적 비용'입니다.

탄소의 사회적 비용 (SCC, Social Cost of Carbon)

◆ 1톤의 탄소(이산화탄소) 배출로 인해 사회가 1년 동안 부담해야 하는 경제적인 비용.
기후위기로 사회가 부담하는 손실 규모. 기후위기로 인한 농업 생산성, 재산 피해, 건강 영향 등 포함
◆ 국제적으로 규정된 계산법이나 기준은 없으며, 나라마다 상황에 맞춰 자의적으로 계산


■ 같은 탄소, 다른 계산…나라마다 '탄소 비용' 다른 이유는?



같은 탄소인데, 나라마다 따져 내놓은 값이 천차만별입니다.

이유는 나라마다 '기후위기 심각성'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기후위기로 인한 인명손실, 미래세대가 입을 피해에 대한 가중치에 따라 할인율 등 적용하는 값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미국의 경우 정권에 따라 이 '탄소의 사회적 비용'이 달라졌습니다. 트럼프 정부 때 탄소의 사회적 비용은 1톤당 7달러였습니다. 2017년 파리 기후변화협약을 탈퇴하는 등 기후위기 대응에 부정적이었던 까닭입니다.

반면, 기후변화협약에 재가입한 바이든 정부는 탄소의 사회적 비용을 1톤당 51달러로 계산했습니다. 전 정권과 비교해 7배 넘게 오른 셈입니다. 그나마 바이든 정부의 추산 비용도 다른 유럽 국가와 비교하면 탄소 피해를 적게 잡은, 보수적 계산이라는 게 환경전문가들의 평가입니다.

김지석 /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전문위원
"미국의 '1톤당 51달러'는 오바마 정부 때 '1톤당 36달러'에 물가 상승을 반영한 겁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1톤당 7달러'까지 내린 걸 급한 대로 복귀시킨 것에 불과합니다. 내년 초 미국 정부는 다시 사회적 비용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유럽 주요국들은 미국보다 탄소의 사회적 비용이 높습니다. 예를 들어, 독일은 비용을 계산할 때 미래세대가 겪을 기후위기 피해를 현재 피해와 동등하게 평가해 계산합니다."


■ '탄소의 사회적 비용', 우리나라는 얼마?

결론부터 말하자면 '계산 불가'입니다.

'탄소의 사회적 비용'은 기후위기 대응에 나선 해외 주요국들을 중심으로 제법 진행됐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관련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경제적 영향에 대한 연구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닙니다. 환경부는 기후위기로 인한 경제 피해 연구를 2011년과 올해 두 차례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도 '탄소의 사회적 비용'에 대한 연구는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한국환경연구원의 ‘기후위기 경제 피해 분석’ 자료. 여러 기후 시나리오별로 피해 비용을 분석
전문가들은 '탄소의 사회적 비용'을 정하는 건 국책연구기관 한 곳에서 진행할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합니다. 실제로 미국 정부는 탄소의 사회적 비용을 만들기 위해 미국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와 미 행정부 주요 부처 등 14개 정부 기관이 참여해 만들었습니다. 그만큼 탄소의 사회적 비용이 포괄적이고 종합적으로 연구돼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채여라 / 한국환경연구원 기후대기안전연구본부 선임연구위원
"그동안 정부가 (탄소의 사회적 비용을) 만들 시도를 안 했죠. 제가 알기론 움직임이 없었죠. 관련 연구나 움직임이 없었던 이유는 이해가 부족하고 중요성을 적게 봤던 게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정부가 '우리가 보는 탄소의 비용은 이렇다.'라고 제시를 해야 합니다. 연구기관 혼자 비용을 정할 수 없어요. 권위가 없거든요. 정부 부처에서 주도해서 발표하고 자료도 주기적으로 갱신해야 합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많은 기후위기 전문가들은 '탄소의 사회적 비용'이 중요하고 반드시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탄소의 사회적 비용'이 있어야 탄소세, 배출권거래제 등 탄소 감축 정책들을 제대로 짤 수 있고, 해외 압박에 대응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취재진은 미국의 '탄소의 사회적 비용'을 이용해 우리나라에서 배출한 탄소의 경제 피해 규모를 추산했습니다. 그리고 한 해 41조 원의 돈이 탄소 비용으로 추산됐습니다.

[연관 기사] 한국 기후 재난에 부담하는 돈은?…한 해 ‘41조 원’ 추산 (KBS 뉴스9, 2021.12.23)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355925

하지만 이제 우리나라 현실에 맞는, 우리 사회에 특성화된 탄소의 사회적 비용 계산이 시급합니다. 탄소중립은 결코, 먼 미래 얘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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