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사기공식]⑨ ‘얼굴 없는 검사’ 김민수 뒤에는 범죄 조직이 있었다

입력 2021.07.17 (08:03) 수정 2021.07.17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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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을 죽인 얼굴 없는 검사 김민수 잡을 수 있을까요?"

지난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한 아버지의 글. 보이스피싱에 당한 아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면서 '가짜 검사 김민수'를 잡아달라고 한 청원을 기억하십니까?

■ 어느 20대 청년의 죽음

연구직 공무원을 준비하던 20대 청년이자 듬직한 아들, 다정한 형이었던 김동현(가명) 씨는 지난해 1월 20일 서울지방검찰청 김민수 검사, 이도현 수사관에게 걸려온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았습니다. 검찰을 사칭한 범인들은 당신 계좌가 금융사기 범죄에 연루됐는데 사건의 가담자인지 아닌지 확인해야 한다, 수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전국에 지명 수배를 내리고 공무집행방해죄로 처벌하겠다면서 동현 씨를 압박했습니다.

“수고하십니다. 여기 서울중앙지검이고요. 저희 지검에서는 금융사기단을 지금 검거를 한 상태예요. 검거 현장에서 본인 명의 통장이 지금 2개가 발견이 됐어요. 본인이 사건의 가담자인지 피해자인지 지금 구분이 되어야만 저희가 조치를 취할 수가 있어요. 본인 허위 진술을 하신다거나 혐의점이 만약에 확인이 되면 유선 조사 즉시 중단되고 수감 및 영장 발부가 될 수 있다는 점 미리 법적으로 고지를 해드리고요. 이해가세요?”
- 검찰 사칭범과 김동현(가명) 씨의 실제 통화 중 일부 발췌

보이스피싱 피해자 故 김동현(가명) 씨가 휴대전화 메모장에 남긴 유서보이스피싱 피해자 故 김동현(가명) 씨가 휴대전화 메모장에 남긴 유서

전라북도 순창에 사는 동현 씨가 보이스피싱범들이 시키는대로 420만 원을 인출하고, 서울로 이동해 마포구의 한 주민센터 택배보관함에 그 돈을 넣기까지 통화는 무려 11시간 지속됐습니다. 주변에 알리지 못 하게 했을뿐 아니라 전화가 잠시라도 끊어지면 협박의 강도는 높아졌습니다. 돈을 넘기고 난 뒤 보이스피싱범들과 연락이 닿지 않자 불안감을 떨치지 못했던 동현 씨는 억울하다는 말을 남긴 채 극단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세상을 떠난 동현 씨 휴대전화에는 이 모든 기록이 고스란히 남아있었습니다. '김민수 검사'가 보낸 가짜 신분증, 11시간의 통화 녹음 파일, 인출한 현금 420만 원을 찍은 사진, 서울로 가는 기차표 영수증, 가족들에게 남긴 유서까지 말입니다.

■ '얼굴 없는 검사' 김민수의 얼굴

지난달 7일, 동현 씨 어머니는 이른 아침부터 아들의 영정사진을 챙겨 부산으로 갔습니다. 아들의 죽음 후 1년여 만에 잡힌 '가짜 김민수 검사'와 '가짜 이도현 수사관'이 처음으로 법정에 서는 날. 동현 씨 어머니는 영정사진을 품에 안고 '얼굴 없는 검사 김민수'의 진짜 얼굴을 봤습니다.

"2020년 1월 20일경 피고인 이○○은 이도현 수사관을, 피고인 서△△은 김민수 검사를 각각 사칭하여 피해자 김 모 씨에게 전화하여 마치 범죄수사 하는 것처럼 가장해 유선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 재판장님, 피해자가 이 사건으로 인해 극심한 고통을 받다 자살했습니다."

검사가 공소 사실을 말하자 판사조차 잠시 말이 없었고 공기는 무거워졌습니다.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한 '가짜 김민수 검사'와 '가짜 이도현 수사관'은 법정을 빠져나가기까지 동현 씨 어머니가 앉아있는 방청석을 쳐다보지 않았습니다.

보이스피싱 피해자 故 김동현(가명) 씨의 외할머니가 가짜 김민수 검사를 엄벌해 달라며 재판부에 낸 탄원서보이스피싱 피해자 故 김동현(가명) 씨의 외할머니가 가짜 김민수 검사를 엄벌해 달라며 재판부에 낸 탄원서

■ '김민수 검사' 뒤에는 범죄 조직이 있었다

'김민수 검사' 목소리의 주인공, 40대 후반 남성 서 모 씨는 사건 이후 중국에서 귀국해 은신하다 지난 3월 경찰에 덜미를 잡혔습니다. '김민수 검사' 뒤에는 중국에서 활동하는 범죄 조직이 있었습니다.

"전북 지역 출신 조직폭력배가 중국 칭다오 등 8개 지역에 검찰 그리고 금융기관을 사칭한 보이스피싱 범죄단체 조직을 결성해서 운영 중이라는 첩보를 입수하고 이미 수사를 진행 중인 상황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김민수 검사를 사칭한 범인과 함께 콜센터 상담원으로 활동한 공범을 검거하고, 그 공범의 휴대전화에서 중국 현지에서 촬영한 흐릿한 사진 1장을 발견하고, 항공기 탑승객 명단 1만여 명의 여권 사진과 출입국 내역을 대조해 나가면서 결국 김민수 검사를 사칭한 범인을 특정할 수 있었습니다."

부산경찰청 이지완 형사는 '김민수 검사' 사칭범이 속한 조직의 구성원은 3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고, 그중 6명을 검거했다고 말했습니다. '김민수 검사'의 동료인 나머지 조직원, 그리고 조직의 총책은 아직 잡지 못했습니다.

■ 범죄와의 전쟁, 언제까지 지기만 할 것인가

한국에서 첫 보이스피싱 피해가 발생한 건 2006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후 15년, 여러 노력이 있었지만 범인들은 늘 새로운 방법을 찾아냈고 법망을 피해갔습니다. 말단 조직원을 잡아들이면 그뿐, 타국에 있는 총책은 또 다른 조직원을 모집해 범행을 이어갑니다.


경찰은 올해 국가수사본부를 출범하면서 보이스피싱을 첫 주요 수사 과제로 지목했습니다. 전국에서 발생하는 보이스피싱 사건을 총괄하는 수사상황실을 설치하고, 각 지역 경찰청마다 전담수사팀도 확충했습니다. 하반기에는 국가수사본부장이 보이스피싱 근절을 위한 T/F를 직접 운영하겠다고 합니다. 검찰도 얼마 전 전국 모든 검찰청마다 보이스피싱 수사 전담 검사를 두고, 보이스피싱 조직 총책에게는 피해 액수와 상관없이 법정 최고형을 구형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것입니다.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수사의 어려운 점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조직이) 외국에 있고, 전화를 통해서 들어오기 때문에 실체가 모호합니다. 범죄가 복잡하고, 개별 법률이 없고, 이렇게 실체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범죄자는 있습니다. 총책은 존재합니다. 돌아가는 구조를 정확히 파악하고 총책을 검거하면 근절될 수 있습니다."

보이스피싱 범죄를 근절할 수 있기는 한 건지, 또 쫓고 쫓기는 상황을 반복하는 건 아닌지 묻자 김현수 경찰청 금융범죄수사계장은 '제대로 대응하면 근절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범죄와의 전쟁, 이번에는 정말 이길 수 있는 걸까. 지금도 또 다른 '김민수 검사'의 전화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미지 클릭(일부 포털사이트 제한), 또는 링크 주소(https://news.kbs.co.kr/special/voicephishing/index.html)를 주소창에 입력하면, 인터랙티브 ‘사기범 대화 120만 자 분석, 그들의 사기공식’ 페이지로 이동합니다.이미지 클릭(일부 포털사이트 제한), 또는 링크 주소(https://news.kbs.co.kr/special/voicephishing/index.html)를 주소창에 입력하면, 인터랙티브 ‘사기범 대화 120만 자 분석, 그들의 사기공식’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보이스피싱과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KBS 1TV 시사기획 창 <그들의 사기공식> 유튜브를 통해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e-cs_noV2x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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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을 죽인 얼굴 없는 검사 김민수 잡을 수 있을까요?"

지난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한 아버지의 글. 보이스피싱에 당한 아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면서 '가짜 검사 김민수'를 잡아달라고 한 청원을 기억하십니까?

■ 어느 20대 청년의 죽음

연구직 공무원을 준비하던 20대 청년이자 듬직한 아들, 다정한 형이었던 김동현(가명) 씨는 지난해 1월 20일 서울지방검찰청 김민수 검사, 이도현 수사관에게 걸려온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았습니다. 검찰을 사칭한 범인들은 당신 계좌가 금융사기 범죄에 연루됐는데 사건의 가담자인지 아닌지 확인해야 한다, 수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전국에 지명 수배를 내리고 공무집행방해죄로 처벌하겠다면서 동현 씨를 압박했습니다.

“수고하십니다. 여기 서울중앙지검이고요. 저희 지검에서는 금융사기단을 지금 검거를 한 상태예요. 검거 현장에서 본인 명의 통장이 지금 2개가 발견이 됐어요. 본인이 사건의 가담자인지 피해자인지 지금 구분이 되어야만 저희가 조치를 취할 수가 있어요. 본인 허위 진술을 하신다거나 혐의점이 만약에 확인이 되면 유선 조사 즉시 중단되고 수감 및 영장 발부가 될 수 있다는 점 미리 법적으로 고지를 해드리고요. 이해가세요?”
- 검찰 사칭범과 김동현(가명) 씨의 실제 통화 중 일부 발췌

보이스피싱 피해자 故 김동현(가명) 씨가 휴대전화 메모장에 남긴 유서
전라북도 순창에 사는 동현 씨가 보이스피싱범들이 시키는대로 420만 원을 인출하고, 서울로 이동해 마포구의 한 주민센터 택배보관함에 그 돈을 넣기까지 통화는 무려 11시간 지속됐습니다. 주변에 알리지 못 하게 했을뿐 아니라 전화가 잠시라도 끊어지면 협박의 강도는 높아졌습니다. 돈을 넘기고 난 뒤 보이스피싱범들과 연락이 닿지 않자 불안감을 떨치지 못했던 동현 씨는 억울하다는 말을 남긴 채 극단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세상을 떠난 동현 씨 휴대전화에는 이 모든 기록이 고스란히 남아있었습니다. '김민수 검사'가 보낸 가짜 신분증, 11시간의 통화 녹음 파일, 인출한 현금 420만 원을 찍은 사진, 서울로 가는 기차표 영수증, 가족들에게 남긴 유서까지 말입니다.

■ '얼굴 없는 검사' 김민수의 얼굴

지난달 7일, 동현 씨 어머니는 이른 아침부터 아들의 영정사진을 챙겨 부산으로 갔습니다. 아들의 죽음 후 1년여 만에 잡힌 '가짜 김민수 검사'와 '가짜 이도현 수사관'이 처음으로 법정에 서는 날. 동현 씨 어머니는 영정사진을 품에 안고 '얼굴 없는 검사 김민수'의 진짜 얼굴을 봤습니다.

"2020년 1월 20일경 피고인 이○○은 이도현 수사관을, 피고인 서△△은 김민수 검사를 각각 사칭하여 피해자 김 모 씨에게 전화하여 마치 범죄수사 하는 것처럼 가장해 유선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 재판장님, 피해자가 이 사건으로 인해 극심한 고통을 받다 자살했습니다."

검사가 공소 사실을 말하자 판사조차 잠시 말이 없었고 공기는 무거워졌습니다.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한 '가짜 김민수 검사'와 '가짜 이도현 수사관'은 법정을 빠져나가기까지 동현 씨 어머니가 앉아있는 방청석을 쳐다보지 않았습니다.

보이스피싱 피해자 故 김동현(가명) 씨의 외할머니가 가짜 김민수 검사를 엄벌해 달라며 재판부에 낸 탄원서
■ '김민수 검사' 뒤에는 범죄 조직이 있었다

'김민수 검사' 목소리의 주인공, 40대 후반 남성 서 모 씨는 사건 이후 중국에서 귀국해 은신하다 지난 3월 경찰에 덜미를 잡혔습니다. '김민수 검사' 뒤에는 중국에서 활동하는 범죄 조직이 있었습니다.

"전북 지역 출신 조직폭력배가 중국 칭다오 등 8개 지역에 검찰 그리고 금융기관을 사칭한 보이스피싱 범죄단체 조직을 결성해서 운영 중이라는 첩보를 입수하고 이미 수사를 진행 중인 상황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김민수 검사를 사칭한 범인과 함께 콜센터 상담원으로 활동한 공범을 검거하고, 그 공범의 휴대전화에서 중국 현지에서 촬영한 흐릿한 사진 1장을 발견하고, 항공기 탑승객 명단 1만여 명의 여권 사진과 출입국 내역을 대조해 나가면서 결국 김민수 검사를 사칭한 범인을 특정할 수 있었습니다."

부산경찰청 이지완 형사는 '김민수 검사' 사칭범이 속한 조직의 구성원은 3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고, 그중 6명을 검거했다고 말했습니다. '김민수 검사'의 동료인 나머지 조직원, 그리고 조직의 총책은 아직 잡지 못했습니다.

■ 범죄와의 전쟁, 언제까지 지기만 할 것인가

한국에서 첫 보이스피싱 피해가 발생한 건 2006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후 15년, 여러 노력이 있었지만 범인들은 늘 새로운 방법을 찾아냈고 법망을 피해갔습니다. 말단 조직원을 잡아들이면 그뿐, 타국에 있는 총책은 또 다른 조직원을 모집해 범행을 이어갑니다.


경찰은 올해 국가수사본부를 출범하면서 보이스피싱을 첫 주요 수사 과제로 지목했습니다. 전국에서 발생하는 보이스피싱 사건을 총괄하는 수사상황실을 설치하고, 각 지역 경찰청마다 전담수사팀도 확충했습니다. 하반기에는 국가수사본부장이 보이스피싱 근절을 위한 T/F를 직접 운영하겠다고 합니다. 검찰도 얼마 전 전국 모든 검찰청마다 보이스피싱 수사 전담 검사를 두고, 보이스피싱 조직 총책에게는 피해 액수와 상관없이 법정 최고형을 구형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것입니다.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수사의 어려운 점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조직이) 외국에 있고, 전화를 통해서 들어오기 때문에 실체가 모호합니다. 범죄가 복잡하고, 개별 법률이 없고, 이렇게 실체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범죄자는 있습니다. 총책은 존재합니다. 돌아가는 구조를 정확히 파악하고 총책을 검거하면 근절될 수 있습니다."

보이스피싱 범죄를 근절할 수 있기는 한 건지, 또 쫓고 쫓기는 상황을 반복하는 건 아닌지 묻자 김현수 경찰청 금융범죄수사계장은 '제대로 대응하면 근절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범죄와의 전쟁, 이번에는 정말 이길 수 있는 걸까. 지금도 또 다른 '김민수 검사'의 전화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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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과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KBS 1TV 시사기획 창 <그들의 사기공식> 유튜브를 통해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e-cs_noV2x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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