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사기공식]⑥ 몸통 대신 꼬리만 잡힌다

입력 2021.07.13 (08:00) 수정 2021.07.13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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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기사에서는 보이스피싱 사기범들이 피해자를 어떻게 속이는지 그들의 대화와 음성까지 분석해봤습니다. 목소리에 문자메시지까지 무차별 공세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데요.

그렇다면, 보이스피싱 사기범들을 얼마나 검거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번 기사에서는 보이스피싱 사기범들이 얼마나 잡히는지 그리고 범행이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는 원인은 무엇인지 알아보겠습니다.

■보이스피싱 발생 건수보다 검거 인원 더 많지만...


보이스피싱 발생 건수와 검거 인원을 비교해보겠습니다. 지난해 보이스피싱 검거 인원은 3만 9,324명으로, 발생 건수 3만 1,681건보다도 많았습니다. 붙잡힌 인원 수가 발생 건수보다 대체로 더 많았고요. 사건 발생이 늘면 검거 인원도 대체로 느는 추세였습니다.

다만, 보이스피싱 한 사건에 연루된 사기범이 다수일 수 있는 데다, 사건 발생과 검거 시점에도 차이가 있었습니다. 검거가 꾸준히 늘고 있지만 피해액이 역대 최고인 7천억 원에 이른 원인을 좀 더 면밀히 따져보기 위해, 정보공개청구로 피의자들의 역할별 검거 현황을 살펴봤습니다.

■“100명 잡아도 '몸통'은 2명뿐”


전체 검거 현황만 놓고 보면 보이스피싱 사기범 조직을 대규모 잡아들인 것처럼 비쳐졌는데요. 실제로는 검거 인원의 절대 다수는 피해자의 돈을 전달하거나 특정 장소에서 가로채는 역할을 한 하부 조직원 또는 통장에 명의를 빌려준 말단 조직원들이었습니다.

검거 인원 가운데 보이스피싱 사건을 지휘하고 조직을 운영하는 이른바 ‘상선’은 845명, 전체 검거 인원의 2.1%에 그쳤습니다. 경찰은 콜센터에서 피해자에게 전화를 거는 사람도 ‘상선’에 포함하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결국 보이스피싱을 기획하고 사기단을 조직한 최상단의 조직원들은 대부분 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으로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국내에서는 보이스피싱 피해자들의 돈을 인출하거나 수거하는 일에 얽혀 가해자가 되는 사례도 늘고 있었습니다. 경찰에 붙잡히는 하부 조직원이 많다는 점도 이 같은 현실과 관련 있어 보이는데요. 실제로 보이스피싱 수거책으로 붙잡혀 재판을 받고 있는 피의자를 취재진이 만나 봤습니다.

■“코로나19 이겨내자” 문자 보고 일자리 구했더니...‘보이스피싱 수거책’

지난 5월 KBS 취재진과 만난 보이스피싱 전달책 피의자 A씨지난 5월 KBS 취재진과 만난 보이스피싱 전달책 피의자 A씨

올해 초 A씨는 ‘코로나19를 함께 극복하자’는 광고 문자메시지를 통해 일자리를 구했습니다. 신용정보회사 채권 담당 대리인 업무로만 알고 있었지만, 사실은 보이스피싱 피해자에게 현금을 받아 조직원에게 넘겨주는 업무였습니다. 전달한 현금이 적게는 1,400만 원, 많게는 1억 원도 있었습니다. 일당은 10만~20만 원이었습니다.

그쪽에서 뭐 회수라는 말을 자꾸 쓰니까, 유튜브에 채권 회수라고 검색을 하니까 연관 검색어로 채권 회수 알바라고 딱 뜨더라고요. 제일 먼저 나오는 게 경찰청에서 올린 유튜브 영상이었거든요. 알바하다가 범죄자가 됐습니다, 라는 게 딱 뜨고......보이스피싱 전달책이라는 뭐 인출책, 수거책 말이 많더라고요. 저도 놀라가지고 채권 회수가 원래 이런 거였나, 하면서 검색을 한 걸 다 눌러보니까 제가 한 일이랑 거의 뭐... 너무 놀라가지고 바로 그때 경찰에 자수를 했죠.

실제로 수사 당국에서도 이 같은 사례들이 최근에 늘고 있다고 말합니다. 서울 동부지검의 원민영 검사는 “일일 아르바이트를 할 정도로 지금 현재 일자리가 급한 분들. 이런 분들이 연루된다. 얼마 전에 실직하신 분들, 취업을 구직 활동을 하고 있는데 그 틈을 이용해서 조금 아르바이트를 해보겠다는 분들도 많다”고 설명했습니다.

문제는 보이스피싱 수거책 등 하부 조직원 업무인줄 몰랐다고 하더라도 처벌을 피할 수는 없다는 점입니다.

서울 동부지검의 조종민 검사는 “사기죄 공동정범 또는 사기 방조가 될 수 있다. 주로 현금 수거책들은 미필적으로 고의가 있거나 보이스피싱에 대한 어느 정도 잠정적인 인식이 있어 처벌되는 경우”라고 설명했습니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한 실직, 폐업 등에 따른 구직자들이 보이스피싱에 연루돼 처벌을 받는 사례가 계속 나오고 있지만 결국 보이스피싱 상선 검거는 어려운 상황으로 분석됐는데요. 왜 조직적 검거가 쉽지 않은지도 살펴보겠습니다.

■잡았더니 한국인 97.5%...국제 '수사 공조' 시급


지난해 경찰이 검거한 보이스피싱범들의 국적을 살펴봤더니 대부분이 한국인이었습니다. 보이스피싱 사기를 총괄하는 윗선 검거율이 낮은 현실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총책이 외국 국적인 경우가 많은 반면 검거는 어렵다는 뜻으로도 해석됩니다. 결국 피해자의 돈을 인출하거나 전달하는 역할은 한국에서 '아르바이트'로 속여서 충원하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에 대해 김현수 경찰청 금융범죄수사계장은 “총책들과 콜센터는 중국에서 주로 운영한다. 외국에서 경찰력은 한계가 있다. 국제 협력까지도 필요한 부분이 있어서 총책 검거는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경찰은 전화금융사기를 단순사기로 보지 않고 조직범죄사기로 본다. 전국 시도청에 200여 명의 전종수사팀을 운영하면서 조직범죄 자체를 쫓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경찰은 중국과의 공조에 대해서는 지난 2019년 11월 ‘한-중-인터폴 간 전화금융사기 국제공조회의’를 열고, 공조 수사를 논의했다고 밝혔는데요. 올해에는 필리핀에 이어 베트남과 캄보디아 코리안데스크에 경찰관을 파견해 보이스피싱범의 국내 송환 등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부 교수는 “수거책이나 전달책들만 잡으면 도마뱀의 꼬리만 짤려 나가는 것이다. 그 역할을 할 사람은 얼마든지 아르바이트생들을 모집하는 식으로 대체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보이스피싱 조직들은 계속해서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곽 교수는 “중국 공안 조직이 현지에서 보이스피싱 조직의 총책이나 우두머리들을 검거할 수 있게 정보를 전달하고 거기서 파악된 정보들을 우리가 전달받는 식의 공조 체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다음 기사에서는 보이스피싱 사기에 대한 신고와 포상 체계 등을 살펴보고 재발 방지를 위해 갖추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분석해보겠습니다.


이미지 클릭(일부 포털사이트 제한), 또는 링크 주소(https://news.kbs.co.kr/special/voicephishing/index.html)를 주소창에 입력하면, 인터랙티브 ‘사기범 대화 120만 자 분석, 그들의 사기공식’ 페이지로 이동합니다.이미지 클릭(일부 포털사이트 제한), 또는 링크 주소(https://news.kbs.co.kr/special/voicephishing/index.html)를 주소창에 입력하면, 인터랙티브 ‘사기범 대화 120만 자 분석, 그들의 사기공식’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보이스피싱과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KBS 1TV 시사기획 창 <그들의 사기공식> 유튜브를 통해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e-cs_noV2xA

데이터 수집·분석:윤지희, 이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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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들의 사기공식]⑥ 몸통 대신 꼬리만 잡힌다
    • 입력 2021-07-13 08:00:22
    • 수정2021-07-13 08: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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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기사에서는 보이스피싱 사기범들이 피해자를 어떻게 속이는지 그들의 대화와 음성까지 분석해봤습니다. 목소리에 문자메시지까지 무차별 공세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데요.

그렇다면, 보이스피싱 사기범들을 얼마나 검거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번 기사에서는 보이스피싱 사기범들이 얼마나 잡히는지 그리고 범행이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는 원인은 무엇인지 알아보겠습니다.

■보이스피싱 발생 건수보다 검거 인원 더 많지만...


보이스피싱 발생 건수와 검거 인원을 비교해보겠습니다. 지난해 보이스피싱 검거 인원은 3만 9,324명으로, 발생 건수 3만 1,681건보다도 많았습니다. 붙잡힌 인원 수가 발생 건수보다 대체로 더 많았고요. 사건 발생이 늘면 검거 인원도 대체로 느는 추세였습니다.

다만, 보이스피싱 한 사건에 연루된 사기범이 다수일 수 있는 데다, 사건 발생과 검거 시점에도 차이가 있었습니다. 검거가 꾸준히 늘고 있지만 피해액이 역대 최고인 7천억 원에 이른 원인을 좀 더 면밀히 따져보기 위해, 정보공개청구로 피의자들의 역할별 검거 현황을 살펴봤습니다.

■“100명 잡아도 '몸통'은 2명뿐”


전체 검거 현황만 놓고 보면 보이스피싱 사기범 조직을 대규모 잡아들인 것처럼 비쳐졌는데요. 실제로는 검거 인원의 절대 다수는 피해자의 돈을 전달하거나 특정 장소에서 가로채는 역할을 한 하부 조직원 또는 통장에 명의를 빌려준 말단 조직원들이었습니다.

검거 인원 가운데 보이스피싱 사건을 지휘하고 조직을 운영하는 이른바 ‘상선’은 845명, 전체 검거 인원의 2.1%에 그쳤습니다. 경찰은 콜센터에서 피해자에게 전화를 거는 사람도 ‘상선’에 포함하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결국 보이스피싱을 기획하고 사기단을 조직한 최상단의 조직원들은 대부분 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으로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국내에서는 보이스피싱 피해자들의 돈을 인출하거나 수거하는 일에 얽혀 가해자가 되는 사례도 늘고 있었습니다. 경찰에 붙잡히는 하부 조직원이 많다는 점도 이 같은 현실과 관련 있어 보이는데요. 실제로 보이스피싱 수거책으로 붙잡혀 재판을 받고 있는 피의자를 취재진이 만나 봤습니다.

■“코로나19 이겨내자” 문자 보고 일자리 구했더니...‘보이스피싱 수거책’

지난 5월 KBS 취재진과 만난 보이스피싱 전달책 피의자 A씨
올해 초 A씨는 ‘코로나19를 함께 극복하자’는 광고 문자메시지를 통해 일자리를 구했습니다. 신용정보회사 채권 담당 대리인 업무로만 알고 있었지만, 사실은 보이스피싱 피해자에게 현금을 받아 조직원에게 넘겨주는 업무였습니다. 전달한 현금이 적게는 1,400만 원, 많게는 1억 원도 있었습니다. 일당은 10만~20만 원이었습니다.

그쪽에서 뭐 회수라는 말을 자꾸 쓰니까, 유튜브에 채권 회수라고 검색을 하니까 연관 검색어로 채권 회수 알바라고 딱 뜨더라고요. 제일 먼저 나오는 게 경찰청에서 올린 유튜브 영상이었거든요. 알바하다가 범죄자가 됐습니다, 라는 게 딱 뜨고......보이스피싱 전달책이라는 뭐 인출책, 수거책 말이 많더라고요. 저도 놀라가지고 채권 회수가 원래 이런 거였나, 하면서 검색을 한 걸 다 눌러보니까 제가 한 일이랑 거의 뭐... 너무 놀라가지고 바로 그때 경찰에 자수를 했죠.

실제로 수사 당국에서도 이 같은 사례들이 최근에 늘고 있다고 말합니다. 서울 동부지검의 원민영 검사는 “일일 아르바이트를 할 정도로 지금 현재 일자리가 급한 분들. 이런 분들이 연루된다. 얼마 전에 실직하신 분들, 취업을 구직 활동을 하고 있는데 그 틈을 이용해서 조금 아르바이트를 해보겠다는 분들도 많다”고 설명했습니다.

문제는 보이스피싱 수거책 등 하부 조직원 업무인줄 몰랐다고 하더라도 처벌을 피할 수는 없다는 점입니다.

서울 동부지검의 조종민 검사는 “사기죄 공동정범 또는 사기 방조가 될 수 있다. 주로 현금 수거책들은 미필적으로 고의가 있거나 보이스피싱에 대한 어느 정도 잠정적인 인식이 있어 처벌되는 경우”라고 설명했습니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한 실직, 폐업 등에 따른 구직자들이 보이스피싱에 연루돼 처벌을 받는 사례가 계속 나오고 있지만 결국 보이스피싱 상선 검거는 어려운 상황으로 분석됐는데요. 왜 조직적 검거가 쉽지 않은지도 살펴보겠습니다.

■잡았더니 한국인 97.5%...국제 '수사 공조' 시급


지난해 경찰이 검거한 보이스피싱범들의 국적을 살펴봤더니 대부분이 한국인이었습니다. 보이스피싱 사기를 총괄하는 윗선 검거율이 낮은 현실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총책이 외국 국적인 경우가 많은 반면 검거는 어렵다는 뜻으로도 해석됩니다. 결국 피해자의 돈을 인출하거나 전달하는 역할은 한국에서 '아르바이트'로 속여서 충원하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에 대해 김현수 경찰청 금융범죄수사계장은 “총책들과 콜센터는 중국에서 주로 운영한다. 외국에서 경찰력은 한계가 있다. 국제 협력까지도 필요한 부분이 있어서 총책 검거는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경찰은 전화금융사기를 단순사기로 보지 않고 조직범죄사기로 본다. 전국 시도청에 200여 명의 전종수사팀을 운영하면서 조직범죄 자체를 쫓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경찰은 중국과의 공조에 대해서는 지난 2019년 11월 ‘한-중-인터폴 간 전화금융사기 국제공조회의’를 열고, 공조 수사를 논의했다고 밝혔는데요. 올해에는 필리핀에 이어 베트남과 캄보디아 코리안데스크에 경찰관을 파견해 보이스피싱범의 국내 송환 등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부 교수는 “수거책이나 전달책들만 잡으면 도마뱀의 꼬리만 짤려 나가는 것이다. 그 역할을 할 사람은 얼마든지 아르바이트생들을 모집하는 식으로 대체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보이스피싱 조직들은 계속해서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곽 교수는 “중국 공안 조직이 현지에서 보이스피싱 조직의 총책이나 우두머리들을 검거할 수 있게 정보를 전달하고 거기서 파악된 정보들을 우리가 전달받는 식의 공조 체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다음 기사에서는 보이스피싱 사기에 대한 신고와 포상 체계 등을 살펴보고 재발 방지를 위해 갖추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분석해보겠습니다.


이미지 클릭(일부 포털사이트 제한), 또는 링크 주소(https://news.kbs.co.kr/special/voicephishing/index.html)를 주소창에 입력하면, 인터랙티브 ‘사기범 대화 120만 자 분석, 그들의 사기공식’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보이스피싱과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KBS 1TV 시사기획 창 <그들의 사기공식> 유튜브를 통해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e-cs_noV2xA

데이터 수집·분석:윤지희, 이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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