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혈우병 아이들의 약이 끊겼습니다” 엄마들의 호소

입력 2021.05.09 (11:01) 수정 2021.05.09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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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살 도윤이는 온몸에 멍...'관절 출혈' 생기기도

도윤이는 올해 6살입니다. 누구보다 활발하게 뛰어 놀 나이지만, 도윤이는 그럴 수 없습니다. 혈액 내 응고인자가 부족해 피가 잘 멈추지 않는 희귀난치성 질환 '혈우병'을 앓고 있기 때문입니다.

도윤이의 엄마, 이미숙 씨는 도윤이가 혈우병을 갖고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 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때 정말 병원 복도에서 엄청 많이 울었어요. 다 제 탓인 것 같아서…. 사람들이 막 쳐다봐도 눈물이 멈추지 않고 계속 나왔어요."

이마에 멍이 든 도윤이 모습이마에 멍이 든 도윤이 모습

이 씨는 "관절 출혈은 '애 낳는 강도보다 더 아프다'고 들었다."라며 "그냥 이렇게 가다가 어딘가에 부딪혀도 아이의 몸에 시퍼렇게 멍이 올라오고 멍울이 잡힌다."고 말했습니다.

생후 9개월 때 뇌출혈 수술을 받은 정민이 모습생후 9개월 때 뇌출혈 수술을 받은 정민이 모습

생후 17개월인 정민이는 뇌출혈로 큰 고비를 겪은 적이 있습니다.

정민이가 생후 9개월일 때 일입니다. 정민이의 어머니인 장윤정 씨는 "정민이가 장염 아이의 증상처럼 열이 나고, 잘 먹지 못하고 토하기만 해서 하루가 조금 지나 병원 응급실로 갔다"며 그때를 떠올렸습니다.

"당시 교수님이 '마음의 준비 하셔야 한다'라고 할 정도로 굉장히 위급 상황이었어요. '예후가 좋지 않을 거다', '목숨 부지하기도 힘들다' 라고 말씀하실 정도였으니까요."

천만다행으로 그날의 수술은 무사히 끝났습니다. 하지만 장윤정 씨는 여전히 마음을 놓을 수 없습니다. 언제든 다시 정민이의 뇌출혈이 재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장 씨는 "아이를 보행기에 태울 수조차 없다"며 "어딘가에 살짝만 부딪혀도 보라색 멍이 바로 올라오기도 했다."라고 말했습니다.

■ "5~6번 주삿바늘로 찔러도 실패했는데"...새 치료제 도입에 반색

그동안 아이들은 이렇게 멍이 들거나, 출혈이 생길 때마다 정맥에 치료제를 주사하는 방법으로 치료를 받아왔습니다. 어린아이들은 혈관이 잘 보이지 않는 탓에, 5~6번을 주삿바늘로 찔러도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도윤이 어머니 이미숙 씨는 "아이가 주사에 트라우마가 있다"며 "주사가 아픈 것도 알고, 그럼에도 맞아야 하는 걸 알기 때문에 병원에 들어가는 것부터 거부하기 시작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피하주사 형태의 치료제가 국내에도 도입됐습니다. 고통스러워 하는 아이는 물론, 이를 지켜봐야 하는 부모들도 당연히 환영할 일이죠. 굳이 혈관을 찾아 주사를 맞지 않아도 됐고, 약의 효과까지 더 좋았습니다.

도윤이 역시 병원의 기부프로그램을 통해 새 치료제를 맞기 시작했고, 멍은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원래는 아이를 씻기고 온 몸 구석구석을 훑는 게 버릇이에요. 그런데 피하주사를 맞고 나서는 맨날 봐도 멍이 안 드는 거예요.

그래서 처음에는 '에이 그냥 나만의 생각이겠지.'라고 생각을 했는데...2주가 지나고 3주가 지났는데 정말 멍이 아무래도 하나도 안 보이는 거예요. 그때부터 이제 신세계가 열린 거예요. 진짜."

■ 올해 2월부터 새 치료제 처방 중단

하지만 올해 2월 이 약의 처방은 모두 중단됐습니다. 새 치료제의 건강보험 급여에 조건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12세 미만 아이들에게는 '면역관용요법(ITI)'이란 치료법에 실패한 경우에만 새 치료제를 처방받을 수 있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면역관용요법은 정맥 주사 형태라, 그만큼 아이가 고통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달 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글지난달 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글

부모들은 새 치료제를 꼭 허용해달라는 입장입니다.

도윤이는 새 치료제를 쓰지 못하게 된 지 한 달 정도가 됐는데, 다시 무릎에 관절 출혈이 생겼습니다. 도윤이 어머니 이미숙 씨는 "지금까지 새 치료제를 1년 8개월 쓰면서 출혈이 단 한 번도 없었다"며 "아이를 다시 뛰지도 못하게 해야 하는 그 엄마 심정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왜 처방을 막아놔서 아이들을 또 사지로 몰고 있는지 모르겠다."라고 호소했습니다.

정민이 어머니 장윤정 씨도 "국가에서 어차피 희귀한 질환에 대한 급여와 복지 등을 주는 거라면, 반의 반짜리 약품을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아이가 잘 성장할 수 있고, 장애를 갖지 않고 살 수 있는 길로 제발 인도해줬으면 한다는 겁니다.

새 혈우병 치료제를 처방해 달라고 호소하는 도윤이 엄마 이미숙 씨새 혈우병 치료제를 처방해 달라고 호소하는 도윤이 엄마 이미숙 씨

부모들은 절박합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 글을 올리고, 지난 3일부터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앞에서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지난달 9일 올라온 청와대 청원에는 지금까지 2만 8천여 명이 동의했습니다.

이에 대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아이들이 다시 새 치료제를 처방받을 수 있을지 회의를 열어 검토해본다는 입장입니다.

심평원 측은 "부모들의 농성이 시작된 이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며 "이달 말이었던 전문가 회의를 오는 18일로 앞당겨, 해당 문제를 논의할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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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혈우병 아이들의 약이 끊겼습니다” 엄마들의 호소
    • 입력 2021-05-09 11:01:15
    • 수정2021-05-09 19:52:45
    취재후·사건후

■ 6살 도윤이는 온몸에 멍...'관절 출혈' 생기기도

도윤이는 올해 6살입니다. 누구보다 활발하게 뛰어 놀 나이지만, 도윤이는 그럴 수 없습니다. 혈액 내 응고인자가 부족해 피가 잘 멈추지 않는 희귀난치성 질환 '혈우병'을 앓고 있기 때문입니다.

도윤이의 엄마, 이미숙 씨는 도윤이가 혈우병을 갖고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 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때 정말 병원 복도에서 엄청 많이 울었어요. 다 제 탓인 것 같아서…. 사람들이 막 쳐다봐도 눈물이 멈추지 않고 계속 나왔어요."

이마에 멍이 든 도윤이 모습
이 씨는 "관절 출혈은 '애 낳는 강도보다 더 아프다'고 들었다."라며 "그냥 이렇게 가다가 어딘가에 부딪혀도 아이의 몸에 시퍼렇게 멍이 올라오고 멍울이 잡힌다."고 말했습니다.

생후 9개월 때 뇌출혈 수술을 받은 정민이 모습
생후 17개월인 정민이는 뇌출혈로 큰 고비를 겪은 적이 있습니다.

정민이가 생후 9개월일 때 일입니다. 정민이의 어머니인 장윤정 씨는 "정민이가 장염 아이의 증상처럼 열이 나고, 잘 먹지 못하고 토하기만 해서 하루가 조금 지나 병원 응급실로 갔다"며 그때를 떠올렸습니다.

"당시 교수님이 '마음의 준비 하셔야 한다'라고 할 정도로 굉장히 위급 상황이었어요. '예후가 좋지 않을 거다', '목숨 부지하기도 힘들다' 라고 말씀하실 정도였으니까요."

천만다행으로 그날의 수술은 무사히 끝났습니다. 하지만 장윤정 씨는 여전히 마음을 놓을 수 없습니다. 언제든 다시 정민이의 뇌출혈이 재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장 씨는 "아이를 보행기에 태울 수조차 없다"며 "어딘가에 살짝만 부딪혀도 보라색 멍이 바로 올라오기도 했다."라고 말했습니다.

■ "5~6번 주삿바늘로 찔러도 실패했는데"...새 치료제 도입에 반색

그동안 아이들은 이렇게 멍이 들거나, 출혈이 생길 때마다 정맥에 치료제를 주사하는 방법으로 치료를 받아왔습니다. 어린아이들은 혈관이 잘 보이지 않는 탓에, 5~6번을 주삿바늘로 찔러도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도윤이 어머니 이미숙 씨는 "아이가 주사에 트라우마가 있다"며 "주사가 아픈 것도 알고, 그럼에도 맞아야 하는 걸 알기 때문에 병원에 들어가는 것부터 거부하기 시작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피하주사 형태의 치료제가 국내에도 도입됐습니다. 고통스러워 하는 아이는 물론, 이를 지켜봐야 하는 부모들도 당연히 환영할 일이죠. 굳이 혈관을 찾아 주사를 맞지 않아도 됐고, 약의 효과까지 더 좋았습니다.

도윤이 역시 병원의 기부프로그램을 통해 새 치료제를 맞기 시작했고, 멍은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원래는 아이를 씻기고 온 몸 구석구석을 훑는 게 버릇이에요. 그런데 피하주사를 맞고 나서는 맨날 봐도 멍이 안 드는 거예요.

그래서 처음에는 '에이 그냥 나만의 생각이겠지.'라고 생각을 했는데...2주가 지나고 3주가 지났는데 정말 멍이 아무래도 하나도 안 보이는 거예요. 그때부터 이제 신세계가 열린 거예요. 진짜."

■ 올해 2월부터 새 치료제 처방 중단

하지만 올해 2월 이 약의 처방은 모두 중단됐습니다. 새 치료제의 건강보험 급여에 조건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12세 미만 아이들에게는 '면역관용요법(ITI)'이란 치료법에 실패한 경우에만 새 치료제를 처방받을 수 있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면역관용요법은 정맥 주사 형태라, 그만큼 아이가 고통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달 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글
부모들은 새 치료제를 꼭 허용해달라는 입장입니다.

도윤이는 새 치료제를 쓰지 못하게 된 지 한 달 정도가 됐는데, 다시 무릎에 관절 출혈이 생겼습니다. 도윤이 어머니 이미숙 씨는 "지금까지 새 치료제를 1년 8개월 쓰면서 출혈이 단 한 번도 없었다"며 "아이를 다시 뛰지도 못하게 해야 하는 그 엄마 심정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왜 처방을 막아놔서 아이들을 또 사지로 몰고 있는지 모르겠다."라고 호소했습니다.

정민이 어머니 장윤정 씨도 "국가에서 어차피 희귀한 질환에 대한 급여와 복지 등을 주는 거라면, 반의 반짜리 약품을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아이가 잘 성장할 수 있고, 장애를 갖지 않고 살 수 있는 길로 제발 인도해줬으면 한다는 겁니다.

새 혈우병 치료제를 처방해 달라고 호소하는 도윤이 엄마 이미숙 씨
부모들은 절박합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 글을 올리고, 지난 3일부터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앞에서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지난달 9일 올라온 청와대 청원에는 지금까지 2만 8천여 명이 동의했습니다.

이에 대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아이들이 다시 새 치료제를 처방받을 수 있을지 회의를 열어 검토해본다는 입장입니다.

심평원 측은 "부모들의 농성이 시작된 이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며 "이달 말이었던 전문가 회의를 오는 18일로 앞당겨, 해당 문제를 논의할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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