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겸상은 안해”…이란 셔틀 외교의 비밀 [지금 중동은]
입력 2025.04.16 (06:00)
수정 2025.04.16 (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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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중동의 스위스' 오만에서 미국과 이란의 고위급 인사들이 회동했습니다. 이란 핵 문제를 논의하는 협상이 열린 건데, 고위급 협상은 8년 만입니다.
중동 언론들은 미국과 이란이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는 사실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양국이 수년 간의 교착 상태 끝에 중요한 돌파구를 마련했다는 평가도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날 협상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국제적 협상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보통 두 나라의 협상은 긴 회의용 테이블을 가운데 놓고 서로 얼굴을 맞댄 채로 진행됩니다. 그런데 이번 협상에서 미국과 이란 대표는 같은 건물에 있었지만, 별도의 방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면 협상은 어떻게 진행됐을까요?

■ 미국 측 요구에도…이란, '간접 대화' 관철
여기에 '셔틀'이 등장합니다. 보통 한국인은 '한일 셔틀 외교'를 떠올릴 것입니다.
한국과 일본은 두 나라 정상이 수시로 상대국을 찾아 회담을 갖고 소통하자는 취지로 '셔틀 외교'라는 용어를 사용해 왔습니다.
반면 국제 외교가에서는 분쟁이나 갈등을 겪고 있는 당사자들을 제3자가 중재하는 '중재 외교'를 '셔틀 외교'라고 부릅니다.
간접 대화, 즉 '셔틀 외교(Shuttle Diplomacy)'는 1970년대 헨리 키신저가 중동 평화 협상 과정에서 체계화한 접근법입니다. 키신저는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 사이를 오가며 중재했고, 이는 1978년 캠프 데이비드 협정으로 이어졌습니다.
셔틀 외교의 장점은 직접 대면으로 인한 정치적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겁니다. 당사국들에게 냉각기간과 내부 협의 시간을 제공합니다.
단점도 뚜렷합니다. 무엇보다 의사소통 과정에서 미묘한 뉘앙스가 손실되거나 왜곡될 수 있습니다. 또한 협상 지연되고, 중재자의 이해관계가 개입될 여지가 있습니다.

■ 오만 외무장관, 협상 2시간여 동안 4차례 '셔틀'
이번 협상에서는 중재국 오만의 외무장관이 미국과 이란 측이 각각 머물고 있는 공간을 여러 차례 방문했습니다.
오만 외무장관이 두 나라 각각의 공간을 오가면서 협상안을 전달한 겁니다.
이란 측 대표인 압바스 아락치 외무장관에 따르면, 바드르 알부사이디 오만 외무장관은 협상 시간 2시간여 동안 4차례 '셔틀'을 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중동 특사 스티브 위트코프와 아락치 외무장관은 협상 마무리 즈음에 단 한 번 짧게 인사를 나눴을 뿐, 핵심 협상은 알부사이디 장관의 '셔틀 외교'를 통해 진행됐습니다.
이날 협상이 성사되기 전부터 미국 측은 직접 대화를 원했으나, 이란은 간접 대화 방식만을 고수했습니다.

■ 이란 내 강경파 의식한 협상파의 전략
왜 이란은 간접 대화 방식을 고집한 걸까요?
이비티삼 알카비 에미리트대학 교수는 "이란 혁명 기구들이 미국과의 대화에 대해 여전히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이란 협상단이 미국 측 인사들과 악수를 나누는 모습에 이란 강경파들이 보일 거센 반발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이란 온건파의 전략으로 봤습니다.
미국이 중동에 가공할 만한 전략 자산을 배치해 놓고 이란에게 협상에 나올 것을 강요하는 상황에서, 미국과 이란 고위급들이 함께 사진을 찍는 모습은 이란 내 강경파에게 자신들을 때릴 빌미를 제공할 뿐이라는 온건파의 계산이 깔려있다는 겁니다.
이란이 오만을 중재국으로 선택한 것도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알카비 교수는 "이란은 오만을 논의의 본질에 개입하거나 영향을 미치려 하지 않고 장소와 소통 채널을 제공하는 중립적인 의장국으로 여긴다"고 분석했습니다.
오만을 통한 의사 전달 과정에서 왜곡이나 편견 없이 자신들의 의사가 온전히 미국에 전달될 수 있다고 본다는 겁니다.

■ "간접 협상이 성공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란은 과거에도 주요 협상에서 간접 대화 전략을 고집했습니다.
2011년 오만을 중재자로 한 비밀 회담에서도 볼 수 있듯이 중재자를 통한 메시지 교환을 선호했습니다.
이 전략이 반드시 실패로 이어진 건 아니지만, 이번 협상은 다를 수도 있다는 분석입니다.
국제위기그룹(ICG)의 이란 프로젝트 책임자인 알리 바에즈는 "간접 협상이 성공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전망을 어둡게 봤습니다.
그는 "트럼프의 세계에서는 상향식 접근 방식만이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무스카트 회담 이후: 새로운 접근의 가능성
이번 무스카트 회담에서 양측은 추가 협상을 위한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아락치 이란 외무장관은 "다음 세션에서 가능한 합의의 일반적 틀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고, 미국 백악관은 대화가 "매우 긍정적이고 건설적"이었다고 평가했습니다.
양측은 오는 19일 다시 만나 협상에 나설 예정입니다.
지금으로선 협상이 또 간접 대화 방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번 협상이 성공적으로 진행된다면, 이란은 실질적 이익을 확보하면서도 국내 정치적 부담을 최소화하는 묘수를 다시 한번 발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핵 프로그램과 같은 복잡한 기술적 사안에서 간접 대화만으로 명확한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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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과 겸상은 안해”…이란 셔틀 외교의 비밀 [지금 중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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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5-04-16 06:00:45
- 수정2025-04-16 06:13:26

지난 12일 '중동의 스위스' 오만에서 미국과 이란의 고위급 인사들이 회동했습니다. 이란 핵 문제를 논의하는 협상이 열린 건데, 고위급 협상은 8년 만입니다.
중동 언론들은 미국과 이란이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는 사실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양국이 수년 간의 교착 상태 끝에 중요한 돌파구를 마련했다는 평가도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날 협상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국제적 협상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보통 두 나라의 협상은 긴 회의용 테이블을 가운데 놓고 서로 얼굴을 맞댄 채로 진행됩니다. 그런데 이번 협상에서 미국과 이란 대표는 같은 건물에 있었지만, 별도의 방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면 협상은 어떻게 진행됐을까요?

■ 미국 측 요구에도…이란, '간접 대화' 관철
여기에 '셔틀'이 등장합니다. 보통 한국인은 '한일 셔틀 외교'를 떠올릴 것입니다.
한국과 일본은 두 나라 정상이 수시로 상대국을 찾아 회담을 갖고 소통하자는 취지로 '셔틀 외교'라는 용어를 사용해 왔습니다.
반면 국제 외교가에서는 분쟁이나 갈등을 겪고 있는 당사자들을 제3자가 중재하는 '중재 외교'를 '셔틀 외교'라고 부릅니다.
간접 대화, 즉 '셔틀 외교(Shuttle Diplomacy)'는 1970년대 헨리 키신저가 중동 평화 협상 과정에서 체계화한 접근법입니다. 키신저는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 사이를 오가며 중재했고, 이는 1978년 캠프 데이비드 협정으로 이어졌습니다.
셔틀 외교의 장점은 직접 대면으로 인한 정치적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겁니다. 당사국들에게 냉각기간과 내부 협의 시간을 제공합니다.
단점도 뚜렷합니다. 무엇보다 의사소통 과정에서 미묘한 뉘앙스가 손실되거나 왜곡될 수 있습니다. 또한 협상 지연되고, 중재자의 이해관계가 개입될 여지가 있습니다.

■ 오만 외무장관, 협상 2시간여 동안 4차례 '셔틀'
이번 협상에서는 중재국 오만의 외무장관이 미국과 이란 측이 각각 머물고 있는 공간을 여러 차례 방문했습니다.
오만 외무장관이 두 나라 각각의 공간을 오가면서 협상안을 전달한 겁니다.
이란 측 대표인 압바스 아락치 외무장관에 따르면, 바드르 알부사이디 오만 외무장관은 협상 시간 2시간여 동안 4차례 '셔틀'을 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중동 특사 스티브 위트코프와 아락치 외무장관은 협상 마무리 즈음에 단 한 번 짧게 인사를 나눴을 뿐, 핵심 협상은 알부사이디 장관의 '셔틀 외교'를 통해 진행됐습니다.
이날 협상이 성사되기 전부터 미국 측은 직접 대화를 원했으나, 이란은 간접 대화 방식만을 고수했습니다.

■ 이란 내 강경파 의식한 협상파의 전략
왜 이란은 간접 대화 방식을 고집한 걸까요?
이비티삼 알카비 에미리트대학 교수는 "이란 혁명 기구들이 미국과의 대화에 대해 여전히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이란 협상단이 미국 측 인사들과 악수를 나누는 모습에 이란 강경파들이 보일 거센 반발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이란 온건파의 전략으로 봤습니다.
미국이 중동에 가공할 만한 전략 자산을 배치해 놓고 이란에게 협상에 나올 것을 강요하는 상황에서, 미국과 이란 고위급들이 함께 사진을 찍는 모습은 이란 내 강경파에게 자신들을 때릴 빌미를 제공할 뿐이라는 온건파의 계산이 깔려있다는 겁니다.
이란이 오만을 중재국으로 선택한 것도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알카비 교수는 "이란은 오만을 논의의 본질에 개입하거나 영향을 미치려 하지 않고 장소와 소통 채널을 제공하는 중립적인 의장국으로 여긴다"고 분석했습니다.
오만을 통한 의사 전달 과정에서 왜곡이나 편견 없이 자신들의 의사가 온전히 미국에 전달될 수 있다고 본다는 겁니다.

■ "간접 협상이 성공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란은 과거에도 주요 협상에서 간접 대화 전략을 고집했습니다.
2011년 오만을 중재자로 한 비밀 회담에서도 볼 수 있듯이 중재자를 통한 메시지 교환을 선호했습니다.
이 전략이 반드시 실패로 이어진 건 아니지만, 이번 협상은 다를 수도 있다는 분석입니다.
국제위기그룹(ICG)의 이란 프로젝트 책임자인 알리 바에즈는 "간접 협상이 성공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전망을 어둡게 봤습니다.
그는 "트럼프의 세계에서는 상향식 접근 방식만이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무스카트 회담 이후: 새로운 접근의 가능성
이번 무스카트 회담에서 양측은 추가 협상을 위한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아락치 이란 외무장관은 "다음 세션에서 가능한 합의의 일반적 틀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고, 미국 백악관은 대화가 "매우 긍정적이고 건설적"이었다고 평가했습니다.
양측은 오는 19일 다시 만나 협상에 나설 예정입니다.
지금으로선 협상이 또 간접 대화 방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번 협상이 성공적으로 진행된다면, 이란은 실질적 이익을 확보하면서도 국내 정치적 부담을 최소화하는 묘수를 다시 한번 발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핵 프로그램과 같은 복잡한 기술적 사안에서 간접 대화만으로 명확한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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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개형 기자 thenew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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