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정사진 품은 채 이곳, 저곳으로…‘온전한’ 이태원 참사 추모공간은 언제쯤?
입력 2024.11.01 (11:17)
수정 2024.11.01 (11:40)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꼭 2년이 되던 날, 참사가 난 골목을 찾았습니다. 골목 한쪽 벽은 국화꽃과 함께 희생자들이 생전 좋아하던 과자와 음료로 가득했습니다.
골목의 벽을 마주한 시민들은 쉽게 걸음을 옮기지 못했습니다. 희생자들을 추모하려는 긴 줄이 늘어섰고 추모객과 취재진, 행인들이 겹치며 한때 골목이 혼잡해지기도 했습니다.
18㎡ 남짓한 이 좁은 골목은 엄밀히 말하면 '정식' 추모 공간이 아닙니다. 이태원 참사 추모 공간은 골목으로부터 약 6km 떨어진 서울 남대문구 부림빌딩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2년 동안 이사만 세 번…떠도는 추모 공간
참사 직후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에 마련된 합동분향소
추모 공간이 처음부터 부림빌딩에 있었던 건 아닙니다.
참사 직후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에 합동 분향소가 차려졌습니다. '이태원 사고 사망자 분향소'. 참사 하루 뒤 행정안전부가 '참사'가 아닌 '사고'로, '희생자'나 '피해자'가 아닌 '사망자'로 표현하도록 방침을 정하면서 붙여진 이름이었습니다.
가족을 잃은 슬픔만으로도 버거웠던 겨울, 유가족들은 모욕적인 폭언까지 견뎌야 했습니다. 분향소 주변에 '국민에게 슬픔을 강요하지 말라', '이제 그만 합시다'와 같은 일부 보수 단체의 현수막이 걸렸고, 유튜버들은 분향소와 유가족들의 텐트를 찍으며 혐오 발언을 쏟아냈습니다.
참사 100일째인 지난해 2월 4일, 유가족들은 더 많은 시민들과 만나기 위해 아픈 기억이 많은 녹사평역을 떠났습니다. 당초 광화문 광장에 분향소를 설치하려 했지만 서울시의 요청으로 경찰이 유가족들을 차 벽으로 막아섰고, 분향소는 서울시청 앞에 차려졌습니다.
서울시청 앞에 마련된 합동분향소
겨우 차려진 서울시청 분향소에는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서울시는 분향소를 '불법 건축물'로 규정하면서, '자진 철거하지 않으면 행정대집행을 하겠다'는 계고장을 보냈습니다. 경찰과 연일 대치를 이어가다 실신하는 유가족들도 생겼습니다.
설치일부터 매일 43만 원씩 쌓인 변상금은 약 2억 원까지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서울시와 유가족 측은 50여 차례의 면담 끝에, 서울시청 인근 부림빌딩으로 공간을 옮기기로 했습니다.
참사 499일 만인 지난 6월 16일, 유가족은 또 한 번 이사를 위한 짐을 쌌습니다. 희생자들의 영정 사진이 분향소에서 내려오자, 유가족들은 눈물을 흘리며 흰 장갑으로 사진을 연신 닦아냈습니다.
서울 남대문구 부림빌딩 1층에 위치한 ‘별들의 집’
처음으로 갖게 된 실내 공간을 유가족들은 정성껏 꾸몄습니다. 자녀의 사진을 나무 액자에 담아 벽면에 걸어두고, 한쪽엔 시민들이 추모 메시지를 남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별들의 집'이란 이름도 붙였습니다.
하지만 이 공간 역시 '임시'였습니다. 부림빌딩은 내일(2일) 재개발 공사를 시작하는데, 그 전에 공간을 비워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난한 협의 끝에, 최근 서울시와 유가족 측은 경복궁역 앞의 적선현대빌딩으로 공간을 옮기기로 했습니다.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추모 공간이 생기기 전까지 이 공간을 최대 2년간 사용할 예정입니다.
■'유명무실' 재난안전법…온전한 추모 공간은 언제?
159명의 희생자는 왜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온전히 머물 곳을 찾지 못했을까요?
재난안전법에 따르면, 세월호나 이태원 참사처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지역에 대한 추모 사업 비용을 국고로 지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법적 구속력이 없어 실제로 행정안전부가 관련 법에 따라 지원한 사례는 한 건도 없습니다. 세월호 유족들도 참사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서울시의회 기억공간을 임시 공간으로 두고 있습니다.
이와 별개로 지난 5월 통과된 이태원참사특별법은 국무총리 소속으로 추모위원회를 두고, 추모 공원이나 기념관을 수립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시행령을 만들고 추모위원회가 꾸려지면 추모 공간을 만들기 위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언제, 어디에, 어떤 장소를 꾸릴지에 대해서는 지자체와 협의를 해야 하는 만큼 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조인영 변호사는 "이때까지는 계속 공간을 이전해야 한다는 불안정성이 있었던 것 같다"며 "추모위가 마련되면 조금 더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유가족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추모 공간을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별들의 집의 또 다른 이름은 '10.29 이태원 참사 기억·소통 공간'입니다. 유가족과 시민이 만나 서로를 보듬고 참사를 기억하는 공간, 희생자들을 위한 온전한 공간이 마련될 때, 진정한 의미의 애도 또한 시작될 수 있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영정사진 품은 채 이곳, 저곳으로…‘온전한’ 이태원 참사 추모공간은 언제쯤?
-
- 입력 2024-11-01 11:17:37
- 수정2024-11-01 11:40:36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꼭 2년이 되던 날, 참사가 난 골목을 찾았습니다. 골목 한쪽 벽은 국화꽃과 함께 희생자들이 생전 좋아하던 과자와 음료로 가득했습니다.
골목의 벽을 마주한 시민들은 쉽게 걸음을 옮기지 못했습니다. 희생자들을 추모하려는 긴 줄이 늘어섰고 추모객과 취재진, 행인들이 겹치며 한때 골목이 혼잡해지기도 했습니다.
18㎡ 남짓한 이 좁은 골목은 엄밀히 말하면 '정식' 추모 공간이 아닙니다. 이태원 참사 추모 공간은 골목으로부터 약 6km 떨어진 서울 남대문구 부림빌딩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2년 동안 이사만 세 번…떠도는 추모 공간
추모 공간이 처음부터 부림빌딩에 있었던 건 아닙니다.
참사 직후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에 합동 분향소가 차려졌습니다. '이태원 사고 사망자 분향소'. 참사 하루 뒤 행정안전부가 '참사'가 아닌 '사고'로, '희생자'나 '피해자'가 아닌 '사망자'로 표현하도록 방침을 정하면서 붙여진 이름이었습니다.
가족을 잃은 슬픔만으로도 버거웠던 겨울, 유가족들은 모욕적인 폭언까지 견뎌야 했습니다. 분향소 주변에 '국민에게 슬픔을 강요하지 말라', '이제 그만 합시다'와 같은 일부 보수 단체의 현수막이 걸렸고, 유튜버들은 분향소와 유가족들의 텐트를 찍으며 혐오 발언을 쏟아냈습니다.
참사 100일째인 지난해 2월 4일, 유가족들은 더 많은 시민들과 만나기 위해 아픈 기억이 많은 녹사평역을 떠났습니다. 당초 광화문 광장에 분향소를 설치하려 했지만 서울시의 요청으로 경찰이 유가족들을 차 벽으로 막아섰고, 분향소는 서울시청 앞에 차려졌습니다.
겨우 차려진 서울시청 분향소에는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서울시는 분향소를 '불법 건축물'로 규정하면서, '자진 철거하지 않으면 행정대집행을 하겠다'는 계고장을 보냈습니다. 경찰과 연일 대치를 이어가다 실신하는 유가족들도 생겼습니다.
설치일부터 매일 43만 원씩 쌓인 변상금은 약 2억 원까지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서울시와 유가족 측은 50여 차례의 면담 끝에, 서울시청 인근 부림빌딩으로 공간을 옮기기로 했습니다.
참사 499일 만인 지난 6월 16일, 유가족은 또 한 번 이사를 위한 짐을 쌌습니다. 희생자들의 영정 사진이 분향소에서 내려오자, 유가족들은 눈물을 흘리며 흰 장갑으로 사진을 연신 닦아냈습니다.
처음으로 갖게 된 실내 공간을 유가족들은 정성껏 꾸몄습니다. 자녀의 사진을 나무 액자에 담아 벽면에 걸어두고, 한쪽엔 시민들이 추모 메시지를 남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별들의 집'이란 이름도 붙였습니다.
하지만 이 공간 역시 '임시'였습니다. 부림빌딩은 내일(2일) 재개발 공사를 시작하는데, 그 전에 공간을 비워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난한 협의 끝에, 최근 서울시와 유가족 측은 경복궁역 앞의 적선현대빌딩으로 공간을 옮기기로 했습니다.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추모 공간이 생기기 전까지 이 공간을 최대 2년간 사용할 예정입니다.
■'유명무실' 재난안전법…온전한 추모 공간은 언제?
159명의 희생자는 왜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온전히 머물 곳을 찾지 못했을까요?
재난안전법에 따르면, 세월호나 이태원 참사처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지역에 대한 추모 사업 비용을 국고로 지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법적 구속력이 없어 실제로 행정안전부가 관련 법에 따라 지원한 사례는 한 건도 없습니다. 세월호 유족들도 참사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서울시의회 기억공간을 임시 공간으로 두고 있습니다.
이와 별개로 지난 5월 통과된 이태원참사특별법은 국무총리 소속으로 추모위원회를 두고, 추모 공원이나 기념관을 수립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시행령을 만들고 추모위원회가 꾸려지면 추모 공간을 만들기 위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언제, 어디에, 어떤 장소를 꾸릴지에 대해서는 지자체와 협의를 해야 하는 만큼 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조인영 변호사는 "이때까지는 계속 공간을 이전해야 한다는 불안정성이 있었던 것 같다"며 "추모위가 마련되면 조금 더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유가족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추모 공간을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별들의 집의 또 다른 이름은 '10.29 이태원 참사 기억·소통 공간'입니다. 유가족과 시민이 만나 서로를 보듬고 참사를 기억하는 공간, 희생자들을 위한 온전한 공간이 마련될 때, 진정한 의미의 애도 또한 시작될 수 있습니다.
-
-
신현욱 기자 woogi@kbs.co.kr
신현욱 기자의 기사 모음
-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
좋아요
0
-
응원해요
0
-
후속 원해요
0
이슈
이태원 참사 2주기
다만 해당 기사는 댓글을 통해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우려가 제기됨에 따라 자체 논의를 거쳐 댓글창을 운영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여러분의 양해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