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미래로] 함께 웃고 달리며…실향의 설움 달래

입력 2024.10.26 (08:22) 수정 2024.10.26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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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우리나라는 1949년부터 실향민 중심으로 구성된 이북5도 위원회라는 조직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습니다.

평안남북도와 함경남북도, 황해도 등 이북 5도, 경기도와 강원도의 미수복 시군의 행정적인 사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곳을 고향으로 둔 실향민들은 매년 가을에 열리는 '이북도민 체육대회'에 참석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고 있는데요.

분단의 세월이 길어지며 이제는 여러 세대가 화합의 마음을 나누는 현장이 되었다고 합니다.

최민지 리포터가 함께했습니다.

[리포트]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커다란 운동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

[이옥영/함경남도 응원단 : "저희 체육대회를 축복하듯이 날씨가 너무 좋습니다. 기분 좋습니다."]

각 지역의 응원 구호가 적힌 현수막 아래, 흥겨운 분위기가 이어집니다.

개회식이 시작되자 각 도를 대표하는 선수단이 운동장에 입장합니다.

지난해 우승기를 차지했던 황해도 선수단은 풍물놀이패를 앞세워 분위기를 북돋웠는데요.

이북도민들에게 축제의 한마당으로 여겨진다는 체육대회.

["영원토록 사랑하리라."]

이북 지역의 5개 도를 비롯해 경기, 강원 미수복 지역에 포함된 13개 시, 84개 군을 고향으로 둔 실향민 만여 명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기덕영/이북5도위원회 위원장 : "후세대와 북한이탈주민이 같이 통일의 의지를 다지고 또 고향으로 돌아갈 마음을 함께 하는 그런 날이 되겠습니다."]

1983년 시작된 이 대회는 매년 가을에 개최되고 있는데요.

올해로 42회째를 맞이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이북도민들은 이곳에 참여해서 함께 실향의 아픔을 나누고 화합의 장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지역별로 모여 앉은 참가자들이 일사불란한 동작으로 열띤 응원을 펼칩니다.

["평남(평안남도)!"]

오래간만에 북녘 '고향'을 힘껏 외쳐보기도 하는데요.

["함경남도 파이팅, 파이팅, 파이팅."]

운동장에서는 각 도의 선수들이 경기를 앞두고 우승 결의를 다집니다.

[이광인/함경남도 선수단 : "(몇 등 하실 거예요?) 1등 해야죠. 당연히."]

각 지역의 선수들이 맞붙은 모래주머니 던지기 경기입니다.

주어진 모래주머니를 던져서 빈 통에 넣는 방식으로 치러졌는데요.

통 안에 모래주머니를 명중시킬 때마다 환호성이 터집니다.

[김하천/함경북도 선수단 : "함북(함경북도)이 원래 분위기가 좋아요. 아주 좋아요."]

경기 성적이 저조해도 분위기는 화기애애한데요.

[이광인/함경남도 선수단 : "1등 했으면 좋겠는데 실망스럽게 한 3등 한 것 같습니다."]

2010년 남한에 온 탈북민, 서학철 씨도 실향민이라는 한마음으로 경기를 치렀습니다.

[서학철/함경남도 선수단/탈북민 : "북한이탈주민이란 결국 실향민하고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6.25 전쟁 때 온) 실향민들은 먼저 온 분들이고 그래서 오늘 이런 화합의 장이 계속 확대됐으면 좋겠습니다."]

황해도 은율군에서 태어난 정창복, 신성덕 할아버지.

[정창덕/실향민 : "고향에서 중학교에서 만났어요. 전투에도 같이 구월산 유격군에 편입돼서 우리 같이 싸웠죠. 우리가 1·4 후퇴 때 인민군한테 밀려서 섬으로 들어와서 섬에서는 싸울 수가 없으니까 (황해도 부근 섬에) 상륙작전을 한 거야."]

두 사람은 고향 동기이자, 6.25 전쟁 당시 죽을 고비를 함께 넘긴 전우이기도 한데요.

고향 사람들과의 만남은 연고가 없는 남쪽 땅에서 큰 힘이 되었다고 합니다.

[신성덕/실향민 : "이렇게 모여서 서로 얼굴 대하고 이런 기회는 이때밖에 없거든요. 힘들어도 오는 거죠. 힘들어도 오는 거예요."]

고령의 나이에도 체육대회에 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는 실향민들.

[김성훈/실향민 : "현재 어떻게 살고 계신지 안부도 전하고 그래요. 그런데 요즘은 다들 연세가 높아서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들이 있어서 참 이따금 슬퍼."]

["(예전에는 많았어요?) 그럼 많았지. (많이 줄었어요?) 많이 줄었어요."]

이들을 위로하는 듯 이북오도 선수들은 줄다리기 경기에서도 전력투구해 나갔는데요.

분단 이후 70여 년의 세월이 흐른 만큼 이제는 떠나온 고향의 모습을 기억하는 1세대 실향민들이 많지는 않은데요.

4세대까지 이어진 실향민 가족들은 이곳에서 고향 사람들과 소통하고 통일의 꿈을 나누고 있습니다.

선수들은 줄다리기 경기에서도 고향 자랑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저 황해도입니다. (황해도 자랑 한번 해주세요.) 황해도는 제일 아름다운 곳이에요."]

아이들은 북한의 지명을 친숙하게 외치며 응원을 이어갑니다.

["(누가 이겼어요?) 함북(함경북도). (기분이 어때요?) 좋아요!"]

실향민 1세대들은 서서히 줄어들고 있지만 그 자리를 후손들이 채워나가고 있었는데요.

손녀와 체육대회에 방문한 실향민 2세대 박춘길 씨가 부모님의 사진을 꺼내 듭니다.

[박춘길/실향민 2세대 : "할아버지 아빠야 할아버지 많이 닮았지? 할아버지 아빠의 고향은 평안남도 평원군 태안리 오리골 80번지야. (지금도 있어?) 응."]

할아버지의 설명에도 북한은 손녀 설하에겐 아직 생소한 곳입니다.

[김설하/박춘길 씨 손녀 : "북한이 어디야? (북한이 이북 38선 넘어서 북한이야.)"]

가볼 수 없는 고향, 만날 수 없는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을 이곳에서 달래보는데요.

[박춘길/실향민 2세대 : "(부모님이) 고향을 너무 좋아하셔서 저도 모르게 부모님이 (참여) 하다 보니까 부모님을 잊지 못해 (체육대회에) 나오게 된 거고..."]

줄다리기에서 우승한 기쁨을 나누는 강원 미수복 지역의 선수단.

이들 또한 친정 나들이와 같은 하루를 만들어 갔습니다.

[김정훈/실향민 2세대 : "이제 우리는 어디 갈 데가 없어요, 명절 때. 후손들이 계속 이어져 나갈 수 있는 그런 행사가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어요."]

대회의 마지막 경기인 계주가 시작되고, 바통을 이어받으며 선수들이 힘차게 달려 나갑니다.

["우승팀은 평안남도!"]

한 해 한 해가 지날수록 희미해지는 북녘의 그리움.

이북도민들에게 고향의 기억을 이어가는 일은 앞으로 남겨진 과제이기도 합니다.

[박정희/미수복 경기 부녀회 : "체육대회 40년 가까이 왔는데 오늘 날씨도 좋아서 너무 좋았고요. 문제는 너무 아쉬운 건 매년 자리가 많이 비었다는 거 그게 가슴이 좀 아프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향민들은 언젠가는 남북의 선수단이 이 운동장에 함께 서서 경기하기를 바란다는 희망을 전했는데요.

[정재원/실향민 2세대 : "옛날에는 서울과 평양이 하는 경성 축구(대회)가 있었어요. 오고 가고 했던 체육대회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해서 매우 안타깝고 아쉬움이 있어요. 우리 같이 같은 민족이 화합되는 모습으로 나아가길 바라겠습니다."]

그들의 꿈과 바람이, 가을 체육대회의 함성과 함께 내 고향, 북녘에도 전해지기를 꿈꾸는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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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로 미래로] 함께 웃고 달리며…실향의 설움 달래
    • 입력 2024-10-26 08:22:23
    • 수정2024-10-26 08:37:41
    남북의 창
[앵커]

우리나라는 1949년부터 실향민 중심으로 구성된 이북5도 위원회라는 조직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습니다.

평안남북도와 함경남북도, 황해도 등 이북 5도, 경기도와 강원도의 미수복 시군의 행정적인 사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곳을 고향으로 둔 실향민들은 매년 가을에 열리는 '이북도민 체육대회'에 참석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고 있는데요.

분단의 세월이 길어지며 이제는 여러 세대가 화합의 마음을 나누는 현장이 되었다고 합니다.

최민지 리포터가 함께했습니다.

[리포트]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커다란 운동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

[이옥영/함경남도 응원단 : "저희 체육대회를 축복하듯이 날씨가 너무 좋습니다. 기분 좋습니다."]

각 지역의 응원 구호가 적힌 현수막 아래, 흥겨운 분위기가 이어집니다.

개회식이 시작되자 각 도를 대표하는 선수단이 운동장에 입장합니다.

지난해 우승기를 차지했던 황해도 선수단은 풍물놀이패를 앞세워 분위기를 북돋웠는데요.

이북도민들에게 축제의 한마당으로 여겨진다는 체육대회.

["영원토록 사랑하리라."]

이북 지역의 5개 도를 비롯해 경기, 강원 미수복 지역에 포함된 13개 시, 84개 군을 고향으로 둔 실향민 만여 명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기덕영/이북5도위원회 위원장 : "후세대와 북한이탈주민이 같이 통일의 의지를 다지고 또 고향으로 돌아갈 마음을 함께 하는 그런 날이 되겠습니다."]

1983년 시작된 이 대회는 매년 가을에 개최되고 있는데요.

올해로 42회째를 맞이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이북도민들은 이곳에 참여해서 함께 실향의 아픔을 나누고 화합의 장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지역별로 모여 앉은 참가자들이 일사불란한 동작으로 열띤 응원을 펼칩니다.

["평남(평안남도)!"]

오래간만에 북녘 '고향'을 힘껏 외쳐보기도 하는데요.

["함경남도 파이팅, 파이팅, 파이팅."]

운동장에서는 각 도의 선수들이 경기를 앞두고 우승 결의를 다집니다.

[이광인/함경남도 선수단 : "(몇 등 하실 거예요?) 1등 해야죠. 당연히."]

각 지역의 선수들이 맞붙은 모래주머니 던지기 경기입니다.

주어진 모래주머니를 던져서 빈 통에 넣는 방식으로 치러졌는데요.

통 안에 모래주머니를 명중시킬 때마다 환호성이 터집니다.

[김하천/함경북도 선수단 : "함북(함경북도)이 원래 분위기가 좋아요. 아주 좋아요."]

경기 성적이 저조해도 분위기는 화기애애한데요.

[이광인/함경남도 선수단 : "1등 했으면 좋겠는데 실망스럽게 한 3등 한 것 같습니다."]

2010년 남한에 온 탈북민, 서학철 씨도 실향민이라는 한마음으로 경기를 치렀습니다.

[서학철/함경남도 선수단/탈북민 : "북한이탈주민이란 결국 실향민하고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6.25 전쟁 때 온) 실향민들은 먼저 온 분들이고 그래서 오늘 이런 화합의 장이 계속 확대됐으면 좋겠습니다."]

황해도 은율군에서 태어난 정창복, 신성덕 할아버지.

[정창덕/실향민 : "고향에서 중학교에서 만났어요. 전투에도 같이 구월산 유격군에 편입돼서 우리 같이 싸웠죠. 우리가 1·4 후퇴 때 인민군한테 밀려서 섬으로 들어와서 섬에서는 싸울 수가 없으니까 (황해도 부근 섬에) 상륙작전을 한 거야."]

두 사람은 고향 동기이자, 6.25 전쟁 당시 죽을 고비를 함께 넘긴 전우이기도 한데요.

고향 사람들과의 만남은 연고가 없는 남쪽 땅에서 큰 힘이 되었다고 합니다.

[신성덕/실향민 : "이렇게 모여서 서로 얼굴 대하고 이런 기회는 이때밖에 없거든요. 힘들어도 오는 거죠. 힘들어도 오는 거예요."]

고령의 나이에도 체육대회에 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는 실향민들.

[김성훈/실향민 : "현재 어떻게 살고 계신지 안부도 전하고 그래요. 그런데 요즘은 다들 연세가 높아서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들이 있어서 참 이따금 슬퍼."]

["(예전에는 많았어요?) 그럼 많았지. (많이 줄었어요?) 많이 줄었어요."]

이들을 위로하는 듯 이북오도 선수들은 줄다리기 경기에서도 전력투구해 나갔는데요.

분단 이후 70여 년의 세월이 흐른 만큼 이제는 떠나온 고향의 모습을 기억하는 1세대 실향민들이 많지는 않은데요.

4세대까지 이어진 실향민 가족들은 이곳에서 고향 사람들과 소통하고 통일의 꿈을 나누고 있습니다.

선수들은 줄다리기 경기에서도 고향 자랑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저 황해도입니다. (황해도 자랑 한번 해주세요.) 황해도는 제일 아름다운 곳이에요."]

아이들은 북한의 지명을 친숙하게 외치며 응원을 이어갑니다.

["(누가 이겼어요?) 함북(함경북도). (기분이 어때요?) 좋아요!"]

실향민 1세대들은 서서히 줄어들고 있지만 그 자리를 후손들이 채워나가고 있었는데요.

손녀와 체육대회에 방문한 실향민 2세대 박춘길 씨가 부모님의 사진을 꺼내 듭니다.

[박춘길/실향민 2세대 : "할아버지 아빠야 할아버지 많이 닮았지? 할아버지 아빠의 고향은 평안남도 평원군 태안리 오리골 80번지야. (지금도 있어?) 응."]

할아버지의 설명에도 북한은 손녀 설하에겐 아직 생소한 곳입니다.

[김설하/박춘길 씨 손녀 : "북한이 어디야? (북한이 이북 38선 넘어서 북한이야.)"]

가볼 수 없는 고향, 만날 수 없는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을 이곳에서 달래보는데요.

[박춘길/실향민 2세대 : "(부모님이) 고향을 너무 좋아하셔서 저도 모르게 부모님이 (참여) 하다 보니까 부모님을 잊지 못해 (체육대회에) 나오게 된 거고..."]

줄다리기에서 우승한 기쁨을 나누는 강원 미수복 지역의 선수단.

이들 또한 친정 나들이와 같은 하루를 만들어 갔습니다.

[김정훈/실향민 2세대 : "이제 우리는 어디 갈 데가 없어요, 명절 때. 후손들이 계속 이어져 나갈 수 있는 그런 행사가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어요."]

대회의 마지막 경기인 계주가 시작되고, 바통을 이어받으며 선수들이 힘차게 달려 나갑니다.

["우승팀은 평안남도!"]

한 해 한 해가 지날수록 희미해지는 북녘의 그리움.

이북도민들에게 고향의 기억을 이어가는 일은 앞으로 남겨진 과제이기도 합니다.

[박정희/미수복 경기 부녀회 : "체육대회 40년 가까이 왔는데 오늘 날씨도 좋아서 너무 좋았고요. 문제는 너무 아쉬운 건 매년 자리가 많이 비었다는 거 그게 가슴이 좀 아프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향민들은 언젠가는 남북의 선수단이 이 운동장에 함께 서서 경기하기를 바란다는 희망을 전했는데요.

[정재원/실향민 2세대 : "옛날에는 서울과 평양이 하는 경성 축구(대회)가 있었어요. 오고 가고 했던 체육대회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해서 매우 안타깝고 아쉬움이 있어요. 우리 같이 같은 민족이 화합되는 모습으로 나아가길 바라겠습니다."]

그들의 꿈과 바람이, 가을 체육대회의 함성과 함께 내 고향, 북녘에도 전해지기를 꿈꾸는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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