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가는K] 투자비 회수에 55년 걸리는 농어촌 도시가스

입력 2024.10.24 (20:06) 수정 2024.10.24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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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여름철 경험했던 역대급 폭염만큼이나 극심한 한파가 예상되는 올 겨울.

최근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며 옷차림이 부쩍 두꺼워졌고 겨울 대비도 시작됐습니다.

무엇보다 걱정되는 건 난방비.

특히 '에너지 복지 사각지대'인 농어촌 고령층의 우려가 큽니다.

올겨울 기상학자들은 매서운 한파가 찾아올 것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도심과 조금 떨어진 시골 마을은 도시가스 보급률이 낮아 겨울을 앞두고 많은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

그 현장으로 가보겠습니다.

[리포트]

주민 70여 명이 사는 보성군 겸백면의 한 마을.

기온이 뚝 떨어지는 아침 시간, 88살 백미순 할머니는 이불 온기에 의지합니다.

집에 보일러가 있지만 벌써 틀기엔 기름값이 무섭습니다.

[백미순/보성군 사곡마을 : "(추울 때) 불 때고, 옷도 두껍게 입고, 기름값 많이 들지요. 전기세도 많이 나오고..."]

지금 방바닥이 차가운 상태입니다.

그런데 어르신께서는 기름값 걱정 때문에 보시는 것처럼 보일러를 꺼놓은 상태입니다.

이 마을엔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아서 주민 대부분이 등유나 LPG, 화목 보일러를 사용합니다.

도시가스를 쓸 수 있는 도심 지역보다 난방비가 훨씬 더 들 수밖에 없습니다.

[이용구/사곡마을 이장 : "(한 달에) 90만 원 정도 한 번에 들어가는 겁니다. 그런데 이게 겨울 내내 들어가는 비용이 아니라 보통 한 달 정도 사용하는 기름이라고 생각을 하시면 되겠습니다."]

15분 거리의 보성읍엔 내년 2월부터 도시가스가 들어오지만, 이 마을까지 언제 연결될지는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보성군은 읍 지역에도 도시가스가 필요하다며 공급 업체에 여러 차례 설치 요청을 했지만 경제성 문제로 추진되지 않고 있습니다.

[전영희/보성군 투자유치팀장 : "군에서 요청을 아무리 하더라도 이 부분은 (가스) 회사의 투자 방향이나 정책과 연관이 되기 때문에 저희는 그런 거에 대한 결정권은 없고 요청만 할 뿐이고, 이거에 대한 대안책으로 아까 말씀드린 마을 단위 LPG 집단 공급소를 설치하는 사업을..."]

겨울만 되면 수백 만 원의 기름값 걱정을 하는 곳은 보성만이 아닙니다.

도시가스 보급률이 90%를 넘긴 여수시, 하지만 외곽인 율촌면만은 보급률이 11%에 불과합니다.

인근에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와 도시가스가 공급되더라도 바로 옆 농어촌 지역은 가스 공급이 안 되는 실정입니다.

실제로 지난달 율촌면사무소 인근에 도시가스가 연결되는 신축 아파트가 들어서며, 주변 마을 주민들도 도시가스 공급을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도시가스 설치 우선순위가 대부분 아파트 지역에 있다 보니 주변 마을에는 5년 뒤에야 공급이 가능할 걸로 보입니다.

주민들은 여전히 온수를 쓰기 위해 물을 데우고, 전기장판으로 추위를 이겨내야 합니다.

[권영희/여수시 율촌면 : "(손주들이 오면) 추워서 자기 집 가자 그래 애기들이 그러면 하룻저녁이라도 자고 가라고 다독거리지. 그러니까 눈물이 나려고 그러네요."]

전남 전체를 보면 시 지역의 도시가스 보급률은 상대적으로 높지만, 보성과 곡성, 구례 등 군 지역의 보급률이 크게 떨어집니다.

읍면동 단위로 나눠 보면, 58%가 도시가스 공급이 전혀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농어촌 지역에 가스 공급이 잘 안되는 이유는 뭘지, 실제 공급 과정과 경제성을 살펴봤습니다.

최근 도시가스 공급이 마무리된 여수시 원도심의 한 마을.

870미터 길이의 배관과 설비를 설치하는데 업체가 쓴 돈은 3억 원, 이 가운데 6천만 원은 자치단체 보조금을 받았습니다.

마을 주민은 100여 세대인데, 각 세대 평균 사용량만큼 가스를 쓴다고 계산해 보겠습니다.

업체가 세제곱미터당 888원에 사오는 가스를 978원에 판다고 가정하면, 1년 동안 업체로 들어오는 수익은 430만 원.

자치단체 보조금을 제외한 투자비 2억 4천만 원을 회수하려면, 무려 55년이 걸립니다.

업체 입장에서는 수익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도시가스업체 관계자/음성변조 : "단독주택 지역 가지고 투자 검토를 하게 되면 (사업비 회수에) 50년 넘는 곳들이 나와요. 30년, 40년, 50년 그러면 의미가 없는 거죠. 이걸로 경제성 검토한다는 것은 그건 안 맞습니다."]

이 때문에 도시가스 요금도 수도권에 비해 전남 등 비수도권이 더 비싸서,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는 상황.

에너지 복지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정부 재정 투입이 강조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김원이/국회의원·산업통상자원중소기업벤처위원회 : "도시가스 회사에 맡길 일이 아니라 사실은 정부가 책임져야 될 문제인 거죠. 농어촌·도서·산간 지역 등 지방소멸 지역에 대해서는 재정지원을 통해 도시가스 보급률을 높여야 된다."]

도시가스 위주로 편성된 취약계층 난방비 정책도 농어촌을 고려해 개선하고, 장기적으로는 예산이 많이 드는 도시가스보다 농어촌에 더 적합한 대체 에너지 개발도 필요합니다.

해마다 낙후된 주거환경에 추위를 걱정해야 할 지역민들이 많습니다.

마을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고 있는 주민들을 위해서라도 도시가스 공급은 예산만 따질게 아니라, 지역민들 복지 차원에서 접근할 고민도 필요해 보입니다.

찾아가는 K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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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찾아가는K] 투자비 회수에 55년 걸리는 농어촌 도시가스
    • 입력 2024-10-24 20:06:20
    • 수정2024-10-24 20:28:40
    뉴스7(광주)
[앵커]

여름철 경험했던 역대급 폭염만큼이나 극심한 한파가 예상되는 올 겨울.

최근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며 옷차림이 부쩍 두꺼워졌고 겨울 대비도 시작됐습니다.

무엇보다 걱정되는 건 난방비.

특히 '에너지 복지 사각지대'인 농어촌 고령층의 우려가 큽니다.

올겨울 기상학자들은 매서운 한파가 찾아올 것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도심과 조금 떨어진 시골 마을은 도시가스 보급률이 낮아 겨울을 앞두고 많은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

그 현장으로 가보겠습니다.

[리포트]

주민 70여 명이 사는 보성군 겸백면의 한 마을.

기온이 뚝 떨어지는 아침 시간, 88살 백미순 할머니는 이불 온기에 의지합니다.

집에 보일러가 있지만 벌써 틀기엔 기름값이 무섭습니다.

[백미순/보성군 사곡마을 : "(추울 때) 불 때고, 옷도 두껍게 입고, 기름값 많이 들지요. 전기세도 많이 나오고..."]

지금 방바닥이 차가운 상태입니다.

그런데 어르신께서는 기름값 걱정 때문에 보시는 것처럼 보일러를 꺼놓은 상태입니다.

이 마을엔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아서 주민 대부분이 등유나 LPG, 화목 보일러를 사용합니다.

도시가스를 쓸 수 있는 도심 지역보다 난방비가 훨씬 더 들 수밖에 없습니다.

[이용구/사곡마을 이장 : "(한 달에) 90만 원 정도 한 번에 들어가는 겁니다. 그런데 이게 겨울 내내 들어가는 비용이 아니라 보통 한 달 정도 사용하는 기름이라고 생각을 하시면 되겠습니다."]

15분 거리의 보성읍엔 내년 2월부터 도시가스가 들어오지만, 이 마을까지 언제 연결될지는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보성군은 읍 지역에도 도시가스가 필요하다며 공급 업체에 여러 차례 설치 요청을 했지만 경제성 문제로 추진되지 않고 있습니다.

[전영희/보성군 투자유치팀장 : "군에서 요청을 아무리 하더라도 이 부분은 (가스) 회사의 투자 방향이나 정책과 연관이 되기 때문에 저희는 그런 거에 대한 결정권은 없고 요청만 할 뿐이고, 이거에 대한 대안책으로 아까 말씀드린 마을 단위 LPG 집단 공급소를 설치하는 사업을..."]

겨울만 되면 수백 만 원의 기름값 걱정을 하는 곳은 보성만이 아닙니다.

도시가스 보급률이 90%를 넘긴 여수시, 하지만 외곽인 율촌면만은 보급률이 11%에 불과합니다.

인근에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와 도시가스가 공급되더라도 바로 옆 농어촌 지역은 가스 공급이 안 되는 실정입니다.

실제로 지난달 율촌면사무소 인근에 도시가스가 연결되는 신축 아파트가 들어서며, 주변 마을 주민들도 도시가스 공급을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도시가스 설치 우선순위가 대부분 아파트 지역에 있다 보니 주변 마을에는 5년 뒤에야 공급이 가능할 걸로 보입니다.

주민들은 여전히 온수를 쓰기 위해 물을 데우고, 전기장판으로 추위를 이겨내야 합니다.

[권영희/여수시 율촌면 : "(손주들이 오면) 추워서 자기 집 가자 그래 애기들이 그러면 하룻저녁이라도 자고 가라고 다독거리지. 그러니까 눈물이 나려고 그러네요."]

전남 전체를 보면 시 지역의 도시가스 보급률은 상대적으로 높지만, 보성과 곡성, 구례 등 군 지역의 보급률이 크게 떨어집니다.

읍면동 단위로 나눠 보면, 58%가 도시가스 공급이 전혀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농어촌 지역에 가스 공급이 잘 안되는 이유는 뭘지, 실제 공급 과정과 경제성을 살펴봤습니다.

최근 도시가스 공급이 마무리된 여수시 원도심의 한 마을.

870미터 길이의 배관과 설비를 설치하는데 업체가 쓴 돈은 3억 원, 이 가운데 6천만 원은 자치단체 보조금을 받았습니다.

마을 주민은 100여 세대인데, 각 세대 평균 사용량만큼 가스를 쓴다고 계산해 보겠습니다.

업체가 세제곱미터당 888원에 사오는 가스를 978원에 판다고 가정하면, 1년 동안 업체로 들어오는 수익은 430만 원.

자치단체 보조금을 제외한 투자비 2억 4천만 원을 회수하려면, 무려 55년이 걸립니다.

업체 입장에서는 수익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도시가스업체 관계자/음성변조 : "단독주택 지역 가지고 투자 검토를 하게 되면 (사업비 회수에) 50년 넘는 곳들이 나와요. 30년, 40년, 50년 그러면 의미가 없는 거죠. 이걸로 경제성 검토한다는 것은 그건 안 맞습니다."]

이 때문에 도시가스 요금도 수도권에 비해 전남 등 비수도권이 더 비싸서,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는 상황.

에너지 복지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정부 재정 투입이 강조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김원이/국회의원·산업통상자원중소기업벤처위원회 : "도시가스 회사에 맡길 일이 아니라 사실은 정부가 책임져야 될 문제인 거죠. 농어촌·도서·산간 지역 등 지방소멸 지역에 대해서는 재정지원을 통해 도시가스 보급률을 높여야 된다."]

도시가스 위주로 편성된 취약계층 난방비 정책도 농어촌을 고려해 개선하고, 장기적으로는 예산이 많이 드는 도시가스보다 농어촌에 더 적합한 대체 에너지 개발도 필요합니다.

해마다 낙후된 주거환경에 추위를 걱정해야 할 지역민들이 많습니다.

마을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고 있는 주민들을 위해서라도 도시가스 공급은 예산만 따질게 아니라, 지역민들 복지 차원에서 접근할 고민도 필요해 보입니다.

찾아가는 K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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