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편의시설 미설치, 법령 방치한 정부가 배상? [뉴스in뉴스]

입력 2024.10.24 (12:37) 수정 2024.10.24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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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건을 다루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어제 대법정에서 공개 변론을 열었습니다.

장애인 접근권과 관련해 국가에 배상 책임을 따지는 사건이라는데, 오늘 이 사안 자세히 설명해 줄 백인성 법조전문기자 스튜디오에 나와 있습니다.

백 기자, 어제 공개변론이 오랜만에 열린 거라면서요?

어떤 사건인지 설명해 주시죠.

[기자]

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2021년 주거침입죄 사건 이후 3년 만에 공개 변론을 열었습니다.

조희대 대법원장 취임 이후로는 첫 공개 변론인데요.

2018년 지체장애인 김 모 씨 등은 정부 등을 상대로 편의점 이용을 부당하게 제한받고 있다면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습니다.

1998년 제정된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 제3조는 장애인 출입로, 호출벨 등 지체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을 갖춰야 하는 대상을 바닥 면적 300㎡(약 90평) 이상 점포로 규정했는데요.

그런데 이 기준대로면 장애인 편의시설을 갖춰야 하는 편의점은 2019년 전국에서 1.8% 정도였습니다.

바꿔말하면 전국 편의점 98%가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 대상에서 제외된 겁니다.

이 규정은 2022년에 법원에서 위헌이 나면서 바닥 면적 '50제곱미터' 이상 점포로 개정이 됐는데요.

김 씨 등은 시행령의 너무 낮은 기준을 정부가 20년 넘도록 개정하지 않아 장애인의 행복추구권 등을 제한했다며, 국가의 위법행위를 이유로 위자료 500만 원을 청구했습니다.

[앵커]

시행령이 문제가 있을 수는 있는데, 정부가 법령을 개정하지 않은 게 이게 어떤 잘못이 있다고 볼 수 있나요?

[기자]

방금 말씀하신 부분이 이 사건의 핵심인데요.

법률이 시행령이나 규칙에 내용을 위임하는 경우가 있는데,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을 아예 만들지 않았다면 당연히 나라에 배상 책임이 인정된다는 게 판례입니다.

법률이 군법무관 보수 내용을 시행령으로 정해놨는데, 이 시행령을 아예 제정하지 않은 사건에서 대법원은 지난 2007년 국가 배상 책임을 인정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앞서와 달리 시행령이 일단 만들어져 있고, 불완전하거나 불충분한 상태로 방치한 점이 다른데요.

이런 경우가 위법하다면 어느 정도로 시행령에 문제가 있어야 하는지, 정부가 얼마 동안 방치해야 위법한지, 배상 책임이 인정되는지, 이런 기준이 새로 만들어지는 겁니다.

[앵커]

하급심도 고민이 많았을 것 같은데요.

어떤 결론을 내렸습니까?

[기자]

1심 서울중앙지법과 2심 서울고법은 원고 청구를 기각하고, 국가 배상책임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정부 배상책임이 인정되기 위해선 크게 네 가지 정도의 조건이 필요한데요.

공무원이 직무 중 행위를 할 것, 이 행위가 법령 위반일 것, 고의 과실로 인한 행위일 것, 타인에게 손해를 가할 것이란 요건이 모두 만족 되어야 합니다.

1,2심은 시행령 조항이 편의점 등에 장애인 접근권을 중대하게 제한했고, 국가가 장애인 보호 의무를 소홀히 했다는 점은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정부가 특정한 내용으로 시행령을 개정할 법적 의무가 있다거나 공무원들이 고의·과실로 직무를 게을리했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손해 배상 책임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봤습니다.

[앵커]

원고 측이 할 말이 많을 것 같은데요.

변론에선 어떤 주장들이 나왔습니까?

[기자]

네, 원고 측에서는 모든 사람들의 접근권을 보장해야 할 정부가 오히려 시행령을 제대로 만들지 않고 방치해 제도적 차별을 조장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특히 유엔이 2014년 이 법령에 문제가 있다며 건물의 크기, 규격, 준공일 등에 관계없이 접근권을 보장하라고 지적을 했고,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동일한 취지로 규정 개정을 권고했음에도 개정을 미뤘다며, 정부 책임이 인정된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국가 재정 문제로 배상책임 자체가 부정되어서는 안 된다고도 했습니다.

[앵커]

피고, 그러니까 정부 측은 뭐라고 하나요?

[기자]

정부 측은 국가가 시행령을 개정할 헌법이나 법령상 의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습니다.

장애인 접근권 확보를 위해 여러 정책을 시행한 만큼 입법을 게을리한 것은 아니라고도 주장했고, 편의시설 설치 의무를 부담하게 될 소상공인의 부담도 고려해야 한다고 맞섰습니다.

또 장애인들이 주장하는 소매점 접근권은 대형마트나 온라인 등 다른 수단으로도 얼마든지 달성 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앵커]

다른 나라는 어떻게 규정을 하고 있습니까?

[기자]

영미권에선 일괄적으로 장애인 접근권이 보장됩니다.

실제로 미국장애인법이나 영국 차별금지법을 보면요.

건축 연도나 시설 규모, 바닥 면적 같은 기준으로 제한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미국에선 우선 시설주가 비용을 지출하지만 이후 세액공제나 소득공제 혜택 등을 제공한다고 합니다.

특히 영국은 경사로가 없는 매장에서 경사로가 설치된 매장까지 교통편을 제공하기도 한다는데요.

다만 일본은 우리 나라처럼 일정 규모 이상의 건축물에 편의시설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앵커]

이번 재판 결과에 따라 다른 장애인 분들도 영향을 받게 될 가능성이 있다면서요?

[기자]

네, 법령 자체가 문제인 이 사건에서 원고 승소 판결이 날 경우엔, 다른 지체장애인이 소송을 내는 경우에도 정부는 동일한 위자료를 지급해야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만 소멸시효 때문에 대법원 선고가 난 때로부터 3년이라는 시간 안에 소송을 내야 받을 수 있겠죠.

[앵커]

언제쯤 선고가 이뤄질까요?

[기자]

대법원장 및 대법관들의 최종 토론을 거쳐 결론이 나올 예정인데요.

이르면 올해 말이나 내년 초 선고가 나올 걸로 예상됩니다.

[앵커]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백인성 법조전문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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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10-24 12:37:24
    • 수정2024-10-24 14:2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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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건을 다루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어제 대법정에서 공개 변론을 열었습니다.

장애인 접근권과 관련해 국가에 배상 책임을 따지는 사건이라는데, 오늘 이 사안 자세히 설명해 줄 백인성 법조전문기자 스튜디오에 나와 있습니다.

백 기자, 어제 공개변론이 오랜만에 열린 거라면서요?

어떤 사건인지 설명해 주시죠.

[기자]

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2021년 주거침입죄 사건 이후 3년 만에 공개 변론을 열었습니다.

조희대 대법원장 취임 이후로는 첫 공개 변론인데요.

2018년 지체장애인 김 모 씨 등은 정부 등을 상대로 편의점 이용을 부당하게 제한받고 있다면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습니다.

1998년 제정된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 제3조는 장애인 출입로, 호출벨 등 지체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을 갖춰야 하는 대상을 바닥 면적 300㎡(약 90평) 이상 점포로 규정했는데요.

그런데 이 기준대로면 장애인 편의시설을 갖춰야 하는 편의점은 2019년 전국에서 1.8% 정도였습니다.

바꿔말하면 전국 편의점 98%가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 대상에서 제외된 겁니다.

이 규정은 2022년에 법원에서 위헌이 나면서 바닥 면적 '50제곱미터' 이상 점포로 개정이 됐는데요.

김 씨 등은 시행령의 너무 낮은 기준을 정부가 20년 넘도록 개정하지 않아 장애인의 행복추구권 등을 제한했다며, 국가의 위법행위를 이유로 위자료 500만 원을 청구했습니다.

[앵커]

시행령이 문제가 있을 수는 있는데, 정부가 법령을 개정하지 않은 게 이게 어떤 잘못이 있다고 볼 수 있나요?

[기자]

방금 말씀하신 부분이 이 사건의 핵심인데요.

법률이 시행령이나 규칙에 내용을 위임하는 경우가 있는데,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을 아예 만들지 않았다면 당연히 나라에 배상 책임이 인정된다는 게 판례입니다.

법률이 군법무관 보수 내용을 시행령으로 정해놨는데, 이 시행령을 아예 제정하지 않은 사건에서 대법원은 지난 2007년 국가 배상 책임을 인정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앞서와 달리 시행령이 일단 만들어져 있고, 불완전하거나 불충분한 상태로 방치한 점이 다른데요.

이런 경우가 위법하다면 어느 정도로 시행령에 문제가 있어야 하는지, 정부가 얼마 동안 방치해야 위법한지, 배상 책임이 인정되는지, 이런 기준이 새로 만들어지는 겁니다.

[앵커]

하급심도 고민이 많았을 것 같은데요.

어떤 결론을 내렸습니까?

[기자]

1심 서울중앙지법과 2심 서울고법은 원고 청구를 기각하고, 국가 배상책임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정부 배상책임이 인정되기 위해선 크게 네 가지 정도의 조건이 필요한데요.

공무원이 직무 중 행위를 할 것, 이 행위가 법령 위반일 것, 고의 과실로 인한 행위일 것, 타인에게 손해를 가할 것이란 요건이 모두 만족 되어야 합니다.

1,2심은 시행령 조항이 편의점 등에 장애인 접근권을 중대하게 제한했고, 국가가 장애인 보호 의무를 소홀히 했다는 점은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정부가 특정한 내용으로 시행령을 개정할 법적 의무가 있다거나 공무원들이 고의·과실로 직무를 게을리했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손해 배상 책임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봤습니다.

[앵커]

원고 측이 할 말이 많을 것 같은데요.

변론에선 어떤 주장들이 나왔습니까?

[기자]

네, 원고 측에서는 모든 사람들의 접근권을 보장해야 할 정부가 오히려 시행령을 제대로 만들지 않고 방치해 제도적 차별을 조장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특히 유엔이 2014년 이 법령에 문제가 있다며 건물의 크기, 규격, 준공일 등에 관계없이 접근권을 보장하라고 지적을 했고,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동일한 취지로 규정 개정을 권고했음에도 개정을 미뤘다며, 정부 책임이 인정된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국가 재정 문제로 배상책임 자체가 부정되어서는 안 된다고도 했습니다.

[앵커]

피고, 그러니까 정부 측은 뭐라고 하나요?

[기자]

정부 측은 국가가 시행령을 개정할 헌법이나 법령상 의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습니다.

장애인 접근권 확보를 위해 여러 정책을 시행한 만큼 입법을 게을리한 것은 아니라고도 주장했고, 편의시설 설치 의무를 부담하게 될 소상공인의 부담도 고려해야 한다고 맞섰습니다.

또 장애인들이 주장하는 소매점 접근권은 대형마트나 온라인 등 다른 수단으로도 얼마든지 달성 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앵커]

다른 나라는 어떻게 규정을 하고 있습니까?

[기자]

영미권에선 일괄적으로 장애인 접근권이 보장됩니다.

실제로 미국장애인법이나 영국 차별금지법을 보면요.

건축 연도나 시설 규모, 바닥 면적 같은 기준으로 제한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미국에선 우선 시설주가 비용을 지출하지만 이후 세액공제나 소득공제 혜택 등을 제공한다고 합니다.

특히 영국은 경사로가 없는 매장에서 경사로가 설치된 매장까지 교통편을 제공하기도 한다는데요.

다만 일본은 우리 나라처럼 일정 규모 이상의 건축물에 편의시설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앵커]

이번 재판 결과에 따라 다른 장애인 분들도 영향을 받게 될 가능성이 있다면서요?

[기자]

네, 법령 자체가 문제인 이 사건에서 원고 승소 판결이 날 경우엔, 다른 지체장애인이 소송을 내는 경우에도 정부는 동일한 위자료를 지급해야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만 소멸시효 때문에 대법원 선고가 난 때로부터 3년이라는 시간 안에 소송을 내야 받을 수 있겠죠.

[앵커]

언제쯤 선고가 이뤄질까요?

[기자]

대법원장 및 대법관들의 최종 토론을 거쳐 결론이 나올 예정인데요.

이르면 올해 말이나 내년 초 선고가 나올 걸로 예상됩니다.

[앵커]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백인성 법조전문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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