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가는K] 1년이나 기다렸지만 ‘꽃 없는’ 꽃 축제

입력 2024.10.10 (20:11) 수정 2024.10.10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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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선한 바람에 산들거리는 가을꽃.

가을 정취를 만끽하는 나들이객은 오늘을 사진 한 장으로 기록합니다.

화려한 만큼 발길을 끌어당기기 쉬운 꽃 축제.

전남 곳곳에서도 계절마다 비슷한 행사가 끊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의외의 복병이 나타났습니다.

이상 기후로 꽃이 제때 안 피면서, '꽃 없는 꽃 축제'가 이어지는 겁니다.

신안의 대표 관광지 퍼플섬입니다.

지금쯤이면 아스타 꽃이 만개해 보랏빛으로 가득해야 하지만 보시다시피 푸른 잎이 가득합니다.

어떤 사정이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UN 관광기구가 세계 최우수 관광마을로 선정한 퍼플섬.

마을 지붕과 벽, 식당, 여기에 옷 색깔까지 섬을 대표하는 색깔은 보라색입니다.

신안군이 해마다 보라색 꽃을 골라 개최한 축제도 퍼플섬을 널리 알린 요소가 됐습니다.

올해도 지난달 27일부터 국화의 한 종류인 아스타 꽃을 주제로 축제를 열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개막을 불과 일주일 앞두고 축제는 취소됐습니다.

보랏빛을 띠어야 할 꽃잎은 불에 그을린 듯 검게 탔고, 꽃이 피지 않아 개화율이 30%밖에 안 됐기 때문입니다.

[원현정/전북 익산시 : "(봄에 왔을 때는) 완전 라벤더 꽃이 만개했었는데 지금은 이제 (아스타 꽃이) 조금 시든 게 숱도 적고 이런 게 아쉬웠죠."]

축제 취소에 상인들도 울상입니다.

[김복순/상인 : "꽃 축제를 했더라면 작년같이 관광객분들도 많이 오셔서 상인들도 많이 살려주고 할 텐데 올해 같은 경우는 날도 뜨겁고 이렇게 하다 보니 꽃도 많이 죽고 (그래서) 꽃 축제가 취소되다 보니까 상인들도 너무 힘들고..."]

'퍼플섬'에 심어진 아스타 꽃은 3천만 송이.

신안군은 올해 유난히 길었던 폭염과 폭우가 생육 환경에 영향을 미친 걸로 보고 있습니다.

내년에도 아스타 꽃으로 축제를 꾸미려 했는데, 재검토가 불가피한 상황이 됐습니다.

[강병순/신안 중부정원관리사업소장 : "올해 유난히 폭염이 오랫동안 지속돼 가지고 아마 식물의 국화 성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그 이유가 첫 번째 같고요. 이래서 내년에는 아마 대체 작물도 고려해 보지만..."]

꽃이 안 펴 축제가 취소된 곳도 있지만, 개화 시기를 못 맞춰 축제가 끝나고 꽃이 핀 곳도 있습니다.

해마다 9월 초 열리는 지역 명물, 영광 상사화 축제.

올해도 영광군은 지금까지 알던 개화 시기에 맞춰, 9월 13일부터 22일까지를 축제 기간으로 잡았습니다.

추석 연휴까지 겹쳐 '대박'도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축제장엔 꽃이 없었습니다.

폭염특보까지 내려질 정도로 유례없던 9월 더위에 개화가 이뤄지지 않은 겁니다.

결국 축제 방문객 25만 명은 꽃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발걸음을 돌려야 했습니다.

영광군은 인위적으로 꽃을 피워 보려고도 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서옥화/영광군 문화관광과 팀장 : "꽃이 좀 늦게 필 것 같아서 저희도 살수차도 좀 뿌려서 한번 해보기도 했고 (노력을) 많이 해봤는데 그것만큼 또 하늘을 저희가 이길 수는 없는 상황이었고요. 다른 홍보 프로그램도 많이 준비했지만, 개화 시기를 못 맞췄던 것이 너무 아쉬워서..."]

꽃 없는 꽃 축제, 신안과 영광만의 일이 아닙니다.

찾아가는K 취재진이 올해 전남에서 열린 꽃 축제 33개에서, 실제로 꽃이 얼마나 피었는지 전수 조사해 봤습니다.

'만개' 기준인 개화율 80%를 만족한 꽃 축제는 불과 5개뿐.

개화율 50%에 미치지 못한 축제는 전체의 40%가 넘는 14개에 이르렀습니다.

축제 3개는 꽃이 제대로 피지 않아 취소했습니다.

여수 영취산 진달래 축제, 함평 꽃무릇 축제 같은 대표적 축제들도 '꽃 흉년'을 겪었습니다.

개화 시기를 종잡을 수 없게 되면서 지자체 축제도 영향을 받는 겁니다.

특히, 꽃 축제 비율이 유난히 높은 전남은 대응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찾아가는K 확인 결과, 전남 지역 축제 가운데 꽃 축제가 차지하는 비율은 35%.

반면 전북은 20%, 충북은 15%, 충남·강원은 15% 미만으로 나타났습니다.

계절형 축제에서 벗어나 축제 유형을 다양화하고 스토리텔링을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심원섭/목포대학교 관광학과 교수 : "조금 더 이야기를 만들어낸다고 한다 그러면, 지금 가지고 있는 당장 문화 콘텐츠형 축제로 완전히 바뀌지는 않겠지만 지금 그런 계절형 축제, 꽃 축제가 가지고 있는 계절적인 한계들을 조금은 위험을 회피할 수 있고 그렇게 돼야지만 그 축제가 지속 가능하게 발전합니다."]

올가을 전국 곳곳에서 피어난 때아닌 벚꽃.

가을 단풍 역시 예년만큼 울긋불긋하게 들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미 성큼 다가온 '뉴 노멀'.

되돌릴 수 없다면, 적응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지난봄 속초시의 사과문이 화제였습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하늘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벚꽃 축제를 앞두고 꽃이 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갈수록 심해지는 기후변화에 안전지대는 없습니다.

날씨에 민감한 꽃 축제를 계획하기 전 과거와는 다른 대응이 필요해 보입니다.

찾아가는 k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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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찾아가는K] 1년이나 기다렸지만 ‘꽃 없는’ 꽃 축제
    • 입력 2024-10-10 20:11:54
    • 수정2024-10-10 21:03:51
    뉴스7(광주)
선선한 바람에 산들거리는 가을꽃.

가을 정취를 만끽하는 나들이객은 오늘을 사진 한 장으로 기록합니다.

화려한 만큼 발길을 끌어당기기 쉬운 꽃 축제.

전남 곳곳에서도 계절마다 비슷한 행사가 끊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의외의 복병이 나타났습니다.

이상 기후로 꽃이 제때 안 피면서, '꽃 없는 꽃 축제'가 이어지는 겁니다.

신안의 대표 관광지 퍼플섬입니다.

지금쯤이면 아스타 꽃이 만개해 보랏빛으로 가득해야 하지만 보시다시피 푸른 잎이 가득합니다.

어떤 사정이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UN 관광기구가 세계 최우수 관광마을로 선정한 퍼플섬.

마을 지붕과 벽, 식당, 여기에 옷 색깔까지 섬을 대표하는 색깔은 보라색입니다.

신안군이 해마다 보라색 꽃을 골라 개최한 축제도 퍼플섬을 널리 알린 요소가 됐습니다.

올해도 지난달 27일부터 국화의 한 종류인 아스타 꽃을 주제로 축제를 열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개막을 불과 일주일 앞두고 축제는 취소됐습니다.

보랏빛을 띠어야 할 꽃잎은 불에 그을린 듯 검게 탔고, 꽃이 피지 않아 개화율이 30%밖에 안 됐기 때문입니다.

[원현정/전북 익산시 : "(봄에 왔을 때는) 완전 라벤더 꽃이 만개했었는데 지금은 이제 (아스타 꽃이) 조금 시든 게 숱도 적고 이런 게 아쉬웠죠."]

축제 취소에 상인들도 울상입니다.

[김복순/상인 : "꽃 축제를 했더라면 작년같이 관광객분들도 많이 오셔서 상인들도 많이 살려주고 할 텐데 올해 같은 경우는 날도 뜨겁고 이렇게 하다 보니 꽃도 많이 죽고 (그래서) 꽃 축제가 취소되다 보니까 상인들도 너무 힘들고..."]

'퍼플섬'에 심어진 아스타 꽃은 3천만 송이.

신안군은 올해 유난히 길었던 폭염과 폭우가 생육 환경에 영향을 미친 걸로 보고 있습니다.

내년에도 아스타 꽃으로 축제를 꾸미려 했는데, 재검토가 불가피한 상황이 됐습니다.

[강병순/신안 중부정원관리사업소장 : "올해 유난히 폭염이 오랫동안 지속돼 가지고 아마 식물의 국화 성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그 이유가 첫 번째 같고요. 이래서 내년에는 아마 대체 작물도 고려해 보지만..."]

꽃이 안 펴 축제가 취소된 곳도 있지만, 개화 시기를 못 맞춰 축제가 끝나고 꽃이 핀 곳도 있습니다.

해마다 9월 초 열리는 지역 명물, 영광 상사화 축제.

올해도 영광군은 지금까지 알던 개화 시기에 맞춰, 9월 13일부터 22일까지를 축제 기간으로 잡았습니다.

추석 연휴까지 겹쳐 '대박'도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축제장엔 꽃이 없었습니다.

폭염특보까지 내려질 정도로 유례없던 9월 더위에 개화가 이뤄지지 않은 겁니다.

결국 축제 방문객 25만 명은 꽃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발걸음을 돌려야 했습니다.

영광군은 인위적으로 꽃을 피워 보려고도 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서옥화/영광군 문화관광과 팀장 : "꽃이 좀 늦게 필 것 같아서 저희도 살수차도 좀 뿌려서 한번 해보기도 했고 (노력을) 많이 해봤는데 그것만큼 또 하늘을 저희가 이길 수는 없는 상황이었고요. 다른 홍보 프로그램도 많이 준비했지만, 개화 시기를 못 맞췄던 것이 너무 아쉬워서..."]

꽃 없는 꽃 축제, 신안과 영광만의 일이 아닙니다.

찾아가는K 취재진이 올해 전남에서 열린 꽃 축제 33개에서, 실제로 꽃이 얼마나 피었는지 전수 조사해 봤습니다.

'만개' 기준인 개화율 80%를 만족한 꽃 축제는 불과 5개뿐.

개화율 50%에 미치지 못한 축제는 전체의 40%가 넘는 14개에 이르렀습니다.

축제 3개는 꽃이 제대로 피지 않아 취소했습니다.

여수 영취산 진달래 축제, 함평 꽃무릇 축제 같은 대표적 축제들도 '꽃 흉년'을 겪었습니다.

개화 시기를 종잡을 수 없게 되면서 지자체 축제도 영향을 받는 겁니다.

특히, 꽃 축제 비율이 유난히 높은 전남은 대응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찾아가는K 확인 결과, 전남 지역 축제 가운데 꽃 축제가 차지하는 비율은 35%.

반면 전북은 20%, 충북은 15%, 충남·강원은 15% 미만으로 나타났습니다.

계절형 축제에서 벗어나 축제 유형을 다양화하고 스토리텔링을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심원섭/목포대학교 관광학과 교수 : "조금 더 이야기를 만들어낸다고 한다 그러면, 지금 가지고 있는 당장 문화 콘텐츠형 축제로 완전히 바뀌지는 않겠지만 지금 그런 계절형 축제, 꽃 축제가 가지고 있는 계절적인 한계들을 조금은 위험을 회피할 수 있고 그렇게 돼야지만 그 축제가 지속 가능하게 발전합니다."]

올가을 전국 곳곳에서 피어난 때아닌 벚꽃.

가을 단풍 역시 예년만큼 울긋불긋하게 들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미 성큼 다가온 '뉴 노멀'.

되돌릴 수 없다면, 적응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지난봄 속초시의 사과문이 화제였습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하늘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벚꽃 축제를 앞두고 꽃이 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갈수록 심해지는 기후변화에 안전지대는 없습니다.

날씨에 민감한 꽃 축제를 계획하기 전 과거와는 다른 대응이 필요해 보입니다.

찾아가는 k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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