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의 그늘…갈 길 먼 ‘고준위 방폐장’
입력 2023.11.25 (22:23)
수정 2023.11.25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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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원전을 가동하면 전력 말고도 반드시 생기는 게 있죠. 바로 방사성 폐기물입니다.
하지만 방사성 폐기물 최종 처분 시설이 갖춰진 나라는 아직 없어서, 원전이 점점 '화장실 없는 아파트'가 돼 가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해법을 놓고 고심 중인 일본에선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박원기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일본 최북단 홋카이도 서부에 있는 작은 마을, '슷쓰초'입니다.
마을 곳곳에서 거대한 풍력발전기 날개가 쉴새 없이 돌아갑니다.
풍력 발전으로 매년 수십억 원 수입을 올리고 있는 이곳은, 3년 전 마을 읍장 주도로 '방사성 폐기물 처리시설' 방폐장 선정 절차에 뛰어들었습니다.
[가타오카/슷쓰초 읍장/2020.10 : "'문헌조사'에 응모하기로 오늘 결의했습니다."]
방폐장 최종 후보지로 선정되려면 세 단계 조사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1단계 '문헌조사'엔 신청만 해도 정부로부터 20억 엔을 받을 수 있었고, 슷쓰초는 3년 전 신청으로 이 돈을 끌어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70억 엔이 걸린 2단계 '개요조사' 신청을 놓고 여론은 다시 분열됐고, 최근 치러진 선거에서도 핵심 쟁점이 됐습니다.
['방폐장 선정 조사' 찬성 후보 : "'개요조사(2차)' 교부금을 받아 다음 산업을 위한 기반으로 활용하면 되잖습니까?"]
['방폐장 선정 조사' 반대 후보 : "핵폐기물은 필요 없습니다. 교부금에 의존한 마을 만들기나 마을 예산 편성엔 반대합니다."]
우라늄을 원료로, 원자력발전소를 가동하면 '사용후 핵연료'가 나옵니다.
재처리를 거쳐도 강한 방사능을 내뿜는 폐기물이 나오는데, 이걸 이중, 삼중으로 밀폐해 땅속 깊은 암반층에 최종적으로 처분하는 시설이 바로 '고준위 방폐장'입니다.
[나라바야시 다케시/도쿄공업대 교수 : "나중에 '폐기물들이 여기 묻혀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려도 될 만한 곳에 묻는 거예요. 원전은 '화장실 없는 아파트'라고 계속 비판을 받고 있어서 (제대로 방폐장을 짓는 게 좋습니다.)"]
기피·혐오 시설인줄 알면서도 슷쓰초 읍장이 유치에 손을 든 건 쇠퇴해가는 지역 경제와 인구 감소때문입니다.
고령화가 진행되고, 마을 주력사업이었던 어업마저 쇠퇴하면서 한때 만 명이 넘었던 이 곳 인구는 현재 3천 명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이마저도 40% 이상은 65살 이상 고령자입니다.
인근 마을도 상황이 비슷합니다.
슷쓰초에서 도마리 원전을 지나 북쪽으로 1시간 정도 차를 달리면 나오는 '가모에나이무라'.
인구 8백명 남짓한 이 마을 역시 방폐장 유치를 위해 1차 조사를 받았습니다.
[사토 타다시/가모에나이무라 주민 : "(인구가 줄어) 되는 게 없습니다. 핵폐기물에 의지하더라도 조금은 마을이 활기를 찾았으면 해요."]
부산에서 불과 50킬로미터 떨어진 쓰시마 역시 방폐장 후보지 명단에 이름을 올릴 뻔했습니다.
지역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시 의회가 교부금이라도 받자며 유치에 팔을 걷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인 관광객 급감 등을 우려한 시장이 제동을 걸어, 결국 1차 조사 신청은 무산됐습니다.
[히타카쓰 나오키/쓰시마 시장 : "쓰시마 시민과 쓰시마의 미래를 위해 깊이 고민한 결과, (방폐장 선정) 조사를 수용하지 않겠다는 판단에 이르렀습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10년 넘게 탈원전 정책을 추진했던 일본이었지만, 세계적인 연료비 상승과 탈 탄소 정책 추진으로 원전을 최대한 활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180도 바꿨습니다.
하지만 원전 가동이 활발해질수록 사용후 핵연료나 핵폐기물은 더 많이 나올 수 밖에 없고, 저장엔 한계가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제대로 된 해법 제시 없이, 그저 '방폐장은 안전하니까 유치 신청을 해달라'며 교부금을 내걸고 쇠락해가는 지역에 등을 떠미는 모양새입니다.
[사토 히데유키/홋카이도 의원 : "지방자치단체의 재정력이 점점 낮아지고 약해지면... 그 약점을 노려 (정부가) 이렇게 '메이와쿠 시설'을 떠넘기는 구조로 돼 있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여기에,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계기로 일본 정부에 대한 일부 주민의 불신은 더욱 커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고사카 준코/슷쓰초 주민 : "후쿠시마 오염수도 흘렸잖아요. 정부가 '주민의 이해가 없으면 방류하지 않겠다'고 했었는데요. '나라 사정'으로 내보내고 있으니 역시 믿을 수 없다고 (마을 사람들이 말합니다)."]
처리를 어떻게 할진 계속 미뤄둔 채 효율성만 부각하는 에너지 정책의 문제점은, 사라질 위기에 처한 지방의 작은 마을들이 떠안고 가게 됐습니다.
홋카이도에서 박원기입니다.
원전을 가동하면 전력 말고도 반드시 생기는 게 있죠. 바로 방사성 폐기물입니다.
하지만 방사성 폐기물 최종 처분 시설이 갖춰진 나라는 아직 없어서, 원전이 점점 '화장실 없는 아파트'가 돼 가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해법을 놓고 고심 중인 일본에선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박원기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일본 최북단 홋카이도 서부에 있는 작은 마을, '슷쓰초'입니다.
마을 곳곳에서 거대한 풍력발전기 날개가 쉴새 없이 돌아갑니다.
풍력 발전으로 매년 수십억 원 수입을 올리고 있는 이곳은, 3년 전 마을 읍장 주도로 '방사성 폐기물 처리시설' 방폐장 선정 절차에 뛰어들었습니다.
[가타오카/슷쓰초 읍장/2020.10 : "'문헌조사'에 응모하기로 오늘 결의했습니다."]
방폐장 최종 후보지로 선정되려면 세 단계 조사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1단계 '문헌조사'엔 신청만 해도 정부로부터 20억 엔을 받을 수 있었고, 슷쓰초는 3년 전 신청으로 이 돈을 끌어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70억 엔이 걸린 2단계 '개요조사' 신청을 놓고 여론은 다시 분열됐고, 최근 치러진 선거에서도 핵심 쟁점이 됐습니다.
['방폐장 선정 조사' 찬성 후보 : "'개요조사(2차)' 교부금을 받아 다음 산업을 위한 기반으로 활용하면 되잖습니까?"]
['방폐장 선정 조사' 반대 후보 : "핵폐기물은 필요 없습니다. 교부금에 의존한 마을 만들기나 마을 예산 편성엔 반대합니다."]
우라늄을 원료로, 원자력발전소를 가동하면 '사용후 핵연료'가 나옵니다.
재처리를 거쳐도 강한 방사능을 내뿜는 폐기물이 나오는데, 이걸 이중, 삼중으로 밀폐해 땅속 깊은 암반층에 최종적으로 처분하는 시설이 바로 '고준위 방폐장'입니다.
[나라바야시 다케시/도쿄공업대 교수 : "나중에 '폐기물들이 여기 묻혀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려도 될 만한 곳에 묻는 거예요. 원전은 '화장실 없는 아파트'라고 계속 비판을 받고 있어서 (제대로 방폐장을 짓는 게 좋습니다.)"]
기피·혐오 시설인줄 알면서도 슷쓰초 읍장이 유치에 손을 든 건 쇠퇴해가는 지역 경제와 인구 감소때문입니다.
고령화가 진행되고, 마을 주력사업이었던 어업마저 쇠퇴하면서 한때 만 명이 넘었던 이 곳 인구는 현재 3천 명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이마저도 40% 이상은 65살 이상 고령자입니다.
인근 마을도 상황이 비슷합니다.
슷쓰초에서 도마리 원전을 지나 북쪽으로 1시간 정도 차를 달리면 나오는 '가모에나이무라'.
인구 8백명 남짓한 이 마을 역시 방폐장 유치를 위해 1차 조사를 받았습니다.
[사토 타다시/가모에나이무라 주민 : "(인구가 줄어) 되는 게 없습니다. 핵폐기물에 의지하더라도 조금은 마을이 활기를 찾았으면 해요."]
부산에서 불과 50킬로미터 떨어진 쓰시마 역시 방폐장 후보지 명단에 이름을 올릴 뻔했습니다.
지역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시 의회가 교부금이라도 받자며 유치에 팔을 걷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인 관광객 급감 등을 우려한 시장이 제동을 걸어, 결국 1차 조사 신청은 무산됐습니다.
[히타카쓰 나오키/쓰시마 시장 : "쓰시마 시민과 쓰시마의 미래를 위해 깊이 고민한 결과, (방폐장 선정) 조사를 수용하지 않겠다는 판단에 이르렀습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10년 넘게 탈원전 정책을 추진했던 일본이었지만, 세계적인 연료비 상승과 탈 탄소 정책 추진으로 원전을 최대한 활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180도 바꿨습니다.
하지만 원전 가동이 활발해질수록 사용후 핵연료나 핵폐기물은 더 많이 나올 수 밖에 없고, 저장엔 한계가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제대로 된 해법 제시 없이, 그저 '방폐장은 안전하니까 유치 신청을 해달라'며 교부금을 내걸고 쇠락해가는 지역에 등을 떠미는 모양새입니다.
[사토 히데유키/홋카이도 의원 : "지방자치단체의 재정력이 점점 낮아지고 약해지면... 그 약점을 노려 (정부가) 이렇게 '메이와쿠 시설'을 떠넘기는 구조로 돼 있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여기에,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계기로 일본 정부에 대한 일부 주민의 불신은 더욱 커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고사카 준코/슷쓰초 주민 : "후쿠시마 오염수도 흘렸잖아요. 정부가 '주민의 이해가 없으면 방류하지 않겠다'고 했었는데요. '나라 사정'으로 내보내고 있으니 역시 믿을 수 없다고 (마을 사람들이 말합니다)."]
처리를 어떻게 할진 계속 미뤄둔 채 효율성만 부각하는 에너지 정책의 문제점은, 사라질 위기에 처한 지방의 작은 마을들이 떠안고 가게 됐습니다.
홋카이도에서 박원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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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3-11-25 22:23:30
- 수정2023-11-25 22:29:19

[앵커]
원전을 가동하면 전력 말고도 반드시 생기는 게 있죠. 바로 방사성 폐기물입니다.
하지만 방사성 폐기물 최종 처분 시설이 갖춰진 나라는 아직 없어서, 원전이 점점 '화장실 없는 아파트'가 돼 가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해법을 놓고 고심 중인 일본에선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박원기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일본 최북단 홋카이도 서부에 있는 작은 마을, '슷쓰초'입니다.
마을 곳곳에서 거대한 풍력발전기 날개가 쉴새 없이 돌아갑니다.
풍력 발전으로 매년 수십억 원 수입을 올리고 있는 이곳은, 3년 전 마을 읍장 주도로 '방사성 폐기물 처리시설' 방폐장 선정 절차에 뛰어들었습니다.
[가타오카/슷쓰초 읍장/2020.10 : "'문헌조사'에 응모하기로 오늘 결의했습니다."]
방폐장 최종 후보지로 선정되려면 세 단계 조사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1단계 '문헌조사'엔 신청만 해도 정부로부터 20억 엔을 받을 수 있었고, 슷쓰초는 3년 전 신청으로 이 돈을 끌어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70억 엔이 걸린 2단계 '개요조사' 신청을 놓고 여론은 다시 분열됐고, 최근 치러진 선거에서도 핵심 쟁점이 됐습니다.
['방폐장 선정 조사' 찬성 후보 : "'개요조사(2차)' 교부금을 받아 다음 산업을 위한 기반으로 활용하면 되잖습니까?"]
['방폐장 선정 조사' 반대 후보 : "핵폐기물은 필요 없습니다. 교부금에 의존한 마을 만들기나 마을 예산 편성엔 반대합니다."]
우라늄을 원료로, 원자력발전소를 가동하면 '사용후 핵연료'가 나옵니다.
재처리를 거쳐도 강한 방사능을 내뿜는 폐기물이 나오는데, 이걸 이중, 삼중으로 밀폐해 땅속 깊은 암반층에 최종적으로 처분하는 시설이 바로 '고준위 방폐장'입니다.
[나라바야시 다케시/도쿄공업대 교수 : "나중에 '폐기물들이 여기 묻혀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려도 될 만한 곳에 묻는 거예요. 원전은 '화장실 없는 아파트'라고 계속 비판을 받고 있어서 (제대로 방폐장을 짓는 게 좋습니다.)"]
기피·혐오 시설인줄 알면서도 슷쓰초 읍장이 유치에 손을 든 건 쇠퇴해가는 지역 경제와 인구 감소때문입니다.
고령화가 진행되고, 마을 주력사업이었던 어업마저 쇠퇴하면서 한때 만 명이 넘었던 이 곳 인구는 현재 3천 명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이마저도 40% 이상은 65살 이상 고령자입니다.
인근 마을도 상황이 비슷합니다.
슷쓰초에서 도마리 원전을 지나 북쪽으로 1시간 정도 차를 달리면 나오는 '가모에나이무라'.
인구 8백명 남짓한 이 마을 역시 방폐장 유치를 위해 1차 조사를 받았습니다.
[사토 타다시/가모에나이무라 주민 : "(인구가 줄어) 되는 게 없습니다. 핵폐기물에 의지하더라도 조금은 마을이 활기를 찾았으면 해요."]
부산에서 불과 50킬로미터 떨어진 쓰시마 역시 방폐장 후보지 명단에 이름을 올릴 뻔했습니다.
지역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시 의회가 교부금이라도 받자며 유치에 팔을 걷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인 관광객 급감 등을 우려한 시장이 제동을 걸어, 결국 1차 조사 신청은 무산됐습니다.
[히타카쓰 나오키/쓰시마 시장 : "쓰시마 시민과 쓰시마의 미래를 위해 깊이 고민한 결과, (방폐장 선정) 조사를 수용하지 않겠다는 판단에 이르렀습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10년 넘게 탈원전 정책을 추진했던 일본이었지만, 세계적인 연료비 상승과 탈 탄소 정책 추진으로 원전을 최대한 활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180도 바꿨습니다.
하지만 원전 가동이 활발해질수록 사용후 핵연료나 핵폐기물은 더 많이 나올 수 밖에 없고, 저장엔 한계가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제대로 된 해법 제시 없이, 그저 '방폐장은 안전하니까 유치 신청을 해달라'며 교부금을 내걸고 쇠락해가는 지역에 등을 떠미는 모양새입니다.
[사토 히데유키/홋카이도 의원 : "지방자치단체의 재정력이 점점 낮아지고 약해지면... 그 약점을 노려 (정부가) 이렇게 '메이와쿠 시설'을 떠넘기는 구조로 돼 있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여기에,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계기로 일본 정부에 대한 일부 주민의 불신은 더욱 커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고사카 준코/슷쓰초 주민 : "후쿠시마 오염수도 흘렸잖아요. 정부가 '주민의 이해가 없으면 방류하지 않겠다'고 했었는데요. '나라 사정'으로 내보내고 있으니 역시 믿을 수 없다고 (마을 사람들이 말합니다)."]
처리를 어떻게 할진 계속 미뤄둔 채 효율성만 부각하는 에너지 정책의 문제점은, 사라질 위기에 처한 지방의 작은 마을들이 떠안고 가게 됐습니다.
홋카이도에서 박원기입니다.
원전을 가동하면 전력 말고도 반드시 생기는 게 있죠. 바로 방사성 폐기물입니다.
하지만 방사성 폐기물 최종 처분 시설이 갖춰진 나라는 아직 없어서, 원전이 점점 '화장실 없는 아파트'가 돼 가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해법을 놓고 고심 중인 일본에선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박원기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일본 최북단 홋카이도 서부에 있는 작은 마을, '슷쓰초'입니다.
마을 곳곳에서 거대한 풍력발전기 날개가 쉴새 없이 돌아갑니다.
풍력 발전으로 매년 수십억 원 수입을 올리고 있는 이곳은, 3년 전 마을 읍장 주도로 '방사성 폐기물 처리시설' 방폐장 선정 절차에 뛰어들었습니다.
[가타오카/슷쓰초 읍장/2020.10 : "'문헌조사'에 응모하기로 오늘 결의했습니다."]
방폐장 최종 후보지로 선정되려면 세 단계 조사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1단계 '문헌조사'엔 신청만 해도 정부로부터 20억 엔을 받을 수 있었고, 슷쓰초는 3년 전 신청으로 이 돈을 끌어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70억 엔이 걸린 2단계 '개요조사' 신청을 놓고 여론은 다시 분열됐고, 최근 치러진 선거에서도 핵심 쟁점이 됐습니다.
['방폐장 선정 조사' 찬성 후보 : "'개요조사(2차)' 교부금을 받아 다음 산업을 위한 기반으로 활용하면 되잖습니까?"]
['방폐장 선정 조사' 반대 후보 : "핵폐기물은 필요 없습니다. 교부금에 의존한 마을 만들기나 마을 예산 편성엔 반대합니다."]
우라늄을 원료로, 원자력발전소를 가동하면 '사용후 핵연료'가 나옵니다.
재처리를 거쳐도 강한 방사능을 내뿜는 폐기물이 나오는데, 이걸 이중, 삼중으로 밀폐해 땅속 깊은 암반층에 최종적으로 처분하는 시설이 바로 '고준위 방폐장'입니다.
[나라바야시 다케시/도쿄공업대 교수 : "나중에 '폐기물들이 여기 묻혀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려도 될 만한 곳에 묻는 거예요. 원전은 '화장실 없는 아파트'라고 계속 비판을 받고 있어서 (제대로 방폐장을 짓는 게 좋습니다.)"]
기피·혐오 시설인줄 알면서도 슷쓰초 읍장이 유치에 손을 든 건 쇠퇴해가는 지역 경제와 인구 감소때문입니다.
고령화가 진행되고, 마을 주력사업이었던 어업마저 쇠퇴하면서 한때 만 명이 넘었던 이 곳 인구는 현재 3천 명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이마저도 40% 이상은 65살 이상 고령자입니다.
인근 마을도 상황이 비슷합니다.
슷쓰초에서 도마리 원전을 지나 북쪽으로 1시간 정도 차를 달리면 나오는 '가모에나이무라'.
인구 8백명 남짓한 이 마을 역시 방폐장 유치를 위해 1차 조사를 받았습니다.
[사토 타다시/가모에나이무라 주민 : "(인구가 줄어) 되는 게 없습니다. 핵폐기물에 의지하더라도 조금은 마을이 활기를 찾았으면 해요."]
부산에서 불과 50킬로미터 떨어진 쓰시마 역시 방폐장 후보지 명단에 이름을 올릴 뻔했습니다.
지역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시 의회가 교부금이라도 받자며 유치에 팔을 걷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인 관광객 급감 등을 우려한 시장이 제동을 걸어, 결국 1차 조사 신청은 무산됐습니다.
[히타카쓰 나오키/쓰시마 시장 : "쓰시마 시민과 쓰시마의 미래를 위해 깊이 고민한 결과, (방폐장 선정) 조사를 수용하지 않겠다는 판단에 이르렀습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10년 넘게 탈원전 정책을 추진했던 일본이었지만, 세계적인 연료비 상승과 탈 탄소 정책 추진으로 원전을 최대한 활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180도 바꿨습니다.
하지만 원전 가동이 활발해질수록 사용후 핵연료나 핵폐기물은 더 많이 나올 수 밖에 없고, 저장엔 한계가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제대로 된 해법 제시 없이, 그저 '방폐장은 안전하니까 유치 신청을 해달라'며 교부금을 내걸고 쇠락해가는 지역에 등을 떠미는 모양새입니다.
[사토 히데유키/홋카이도 의원 : "지방자치단체의 재정력이 점점 낮아지고 약해지면... 그 약점을 노려 (정부가) 이렇게 '메이와쿠 시설'을 떠넘기는 구조로 돼 있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여기에,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계기로 일본 정부에 대한 일부 주민의 불신은 더욱 커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고사카 준코/슷쓰초 주민 : "후쿠시마 오염수도 흘렸잖아요. 정부가 '주민의 이해가 없으면 방류하지 않겠다'고 했었는데요. '나라 사정'으로 내보내고 있으니 역시 믿을 수 없다고 (마을 사람들이 말합니다)."]
처리를 어떻게 할진 계속 미뤄둔 채 효율성만 부각하는 에너지 정책의 문제점은, 사라질 위기에 처한 지방의 작은 마을들이 떠안고 가게 됐습니다.
홋카이도에서 박원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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