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년 전 그날의 광주…횃불 들고 평화 행진
입력 2021.05.16 (21:14)
수정 2021.05.16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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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1980년, 41년 전 오늘(16일), 광주에서 열렸던 3차 민주화대성회 모습입니다.
서슬퍼런 전두환 신군부 탄압에 전국이 움츠러들었지만 유일하게 광주에선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였습니다.
[박관현 열사 녹취]
계엄군은 이 집회를 빌미로 이틀 뒤인 18일부터 광주시민을 학살했는데요.
KBS는 한국 현대사 영상자료를 발굴해 보존하는 과정에서 광주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의미있는 영상들을 찾아냈습니다.
오늘은 먼저, 민주주의 횃불을 치켜 들었던 41년 전 오늘, 영상으로 기록된 광주의 모습과 그 의미를 전해드립니다.
양창희 기잡니다.
[리포트]
버스에 내려 어딘가로 바삐 달려가는 사람들.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대학생도 보입니다.
이들은 모인 곳은 전남도청 앞 광장.
1980년 5월 16일, 41년 전 오늘입니다.
[전용호/당시 전남대학교 3학년 : "도청 앞 광장에 대학생들로 꽉 차고, 그러니까 주변에서 자전거타고 모이고...운집한 인원들이 2~3만 명이 됐을 겁니다."]
[정동년/당시 전남대 복학생 대표 연설자 :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간절해가지고 아주 사흘 동안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많이 모였어요."]
전두환 신군부 탄압으로 전국이 움츠러들었지만 광주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김태종/당시 전남대 4학년 : "그 당시 광주 대학생들이 주장하는 것이 계엄령 해제하라. 정치 일정 밝혀라."]
분수대 한가운데 널찍이 펼쳐진 태극기.
[정동년/당시 38세/전남대학교 복학생 대표로 연설 : "제가 분수대에서 연설했죠. 학생들이 일어나서 피를 흘리고 싸울 테니까, 여러분들은 진정하시라, 이렇게 이야기를 했어요."]
날이 저물고 횃불이 켜졌습니다.
[정동년 : "아주 평화적 시위를 했으니까, 그래서 경찰이 시위할 때도 양쪽으로 전부 다 경호하고..."]
야간 시위는 상상도 못 했던 당시, 광주 시민들이 횃불을 든 이유는 무엇일까?
[김태종 : "횃불 시위는, 유신의 잘못된 기운을 싹 태우고 분위기를 없애고 민주주의 새로운 희망인 횃불 들자 이런 의미였죠."]
[전용호 : "대학생들의 시위가 온 시민의 저항으로 확산되지 않습니까. 아주 질서정연하면서 시민들과 함께했던 저 3일간의 시위가 아주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는가."]
그러나 신군부는 전국 유일하게 남은 민주주의 열망을 총칼로 진압합니다.
[김태종 : "조국을 위한 것일 수도 있고, 민족을 위한 것일 수도 있고, 민주주의를 위한 것인데, 정말 순수한 열정을/야욕을 가진 신군부가 너무나 정말 비인간적으로 파괴시켰구나."]
KBS 뉴스 양창희입니다.
1980년, 41년 전 오늘(16일), 광주에서 열렸던 3차 민주화대성회 모습입니다.
서슬퍼런 전두환 신군부 탄압에 전국이 움츠러들었지만 유일하게 광주에선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였습니다.
[박관현 열사 녹취]
계엄군은 이 집회를 빌미로 이틀 뒤인 18일부터 광주시민을 학살했는데요.
KBS는 한국 현대사 영상자료를 발굴해 보존하는 과정에서 광주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의미있는 영상들을 찾아냈습니다.
오늘은 먼저, 민주주의 횃불을 치켜 들었던 41년 전 오늘, 영상으로 기록된 광주의 모습과 그 의미를 전해드립니다.
양창희 기잡니다.
[리포트]
버스에 내려 어딘가로 바삐 달려가는 사람들.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대학생도 보입니다.
이들은 모인 곳은 전남도청 앞 광장.
1980년 5월 16일, 41년 전 오늘입니다.
[전용호/당시 전남대학교 3학년 : "도청 앞 광장에 대학생들로 꽉 차고, 그러니까 주변에서 자전거타고 모이고...운집한 인원들이 2~3만 명이 됐을 겁니다."]
[정동년/당시 전남대 복학생 대표 연설자 :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간절해가지고 아주 사흘 동안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많이 모였어요."]
전두환 신군부 탄압으로 전국이 움츠러들었지만 광주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김태종/당시 전남대 4학년 : "그 당시 광주 대학생들이 주장하는 것이 계엄령 해제하라. 정치 일정 밝혀라."]
분수대 한가운데 널찍이 펼쳐진 태극기.
[정동년/당시 38세/전남대학교 복학생 대표로 연설 : "제가 분수대에서 연설했죠. 학생들이 일어나서 피를 흘리고 싸울 테니까, 여러분들은 진정하시라, 이렇게 이야기를 했어요."]
날이 저물고 횃불이 켜졌습니다.
[정동년 : "아주 평화적 시위를 했으니까, 그래서 경찰이 시위할 때도 양쪽으로 전부 다 경호하고..."]
야간 시위는 상상도 못 했던 당시, 광주 시민들이 횃불을 든 이유는 무엇일까?
[김태종 : "횃불 시위는, 유신의 잘못된 기운을 싹 태우고 분위기를 없애고 민주주의 새로운 희망인 횃불 들자 이런 의미였죠."]
[전용호 : "대학생들의 시위가 온 시민의 저항으로 확산되지 않습니까. 아주 질서정연하면서 시민들과 함께했던 저 3일간의 시위가 아주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는가."]
그러나 신군부는 전국 유일하게 남은 민주주의 열망을 총칼로 진압합니다.
[김태종 : "조국을 위한 것일 수도 있고, 민족을 위한 것일 수도 있고, 민주주의를 위한 것인데, 정말 순수한 열정을/야욕을 가진 신군부가 너무나 정말 비인간적으로 파괴시켰구나."]
KBS 뉴스 양창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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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41년 전 오늘(16일), 광주에서 열렸던 3차 민주화대성회 모습입니다.
서슬퍼런 전두환 신군부 탄압에 전국이 움츠러들었지만 유일하게 광주에선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였습니다.
[박관현 열사 녹취]
계엄군은 이 집회를 빌미로 이틀 뒤인 18일부터 광주시민을 학살했는데요.
KBS는 한국 현대사 영상자료를 발굴해 보존하는 과정에서 광주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의미있는 영상들을 찾아냈습니다.
오늘은 먼저, 민주주의 횃불을 치켜 들었던 41년 전 오늘, 영상으로 기록된 광주의 모습과 그 의미를 전해드립니다.
양창희 기잡니다.
[리포트]
버스에 내려 어딘가로 바삐 달려가는 사람들.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대학생도 보입니다.
이들은 모인 곳은 전남도청 앞 광장.
1980년 5월 16일, 41년 전 오늘입니다.
[전용호/당시 전남대학교 3학년 : "도청 앞 광장에 대학생들로 꽉 차고, 그러니까 주변에서 자전거타고 모이고...운집한 인원들이 2~3만 명이 됐을 겁니다."]
[정동년/당시 전남대 복학생 대표 연설자 :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간절해가지고 아주 사흘 동안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많이 모였어요."]
전두환 신군부 탄압으로 전국이 움츠러들었지만 광주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김태종/당시 전남대 4학년 : "그 당시 광주 대학생들이 주장하는 것이 계엄령 해제하라. 정치 일정 밝혀라."]
분수대 한가운데 널찍이 펼쳐진 태극기.
[정동년/당시 38세/전남대학교 복학생 대표로 연설 : "제가 분수대에서 연설했죠. 학생들이 일어나서 피를 흘리고 싸울 테니까, 여러분들은 진정하시라, 이렇게 이야기를 했어요."]
날이 저물고 횃불이 켜졌습니다.
[정동년 : "아주 평화적 시위를 했으니까, 그래서 경찰이 시위할 때도 양쪽으로 전부 다 경호하고..."]
야간 시위는 상상도 못 했던 당시, 광주 시민들이 횃불을 든 이유는 무엇일까?
[김태종 : "횃불 시위는, 유신의 잘못된 기운을 싹 태우고 분위기를 없애고 민주주의 새로운 희망인 횃불 들자 이런 의미였죠."]
[전용호 : "대학생들의 시위가 온 시민의 저항으로 확산되지 않습니까. 아주 질서정연하면서 시민들과 함께했던 저 3일간의 시위가 아주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는가."]
그러나 신군부는 전국 유일하게 남은 민주주의 열망을 총칼로 진압합니다.
[김태종 : "조국을 위한 것일 수도 있고, 민족을 위한 것일 수도 있고, 민주주의를 위한 것인데, 정말 순수한 열정을/야욕을 가진 신군부가 너무나 정말 비인간적으로 파괴시켰구나."]
KBS 뉴스 양창희입니다.
1980년, 41년 전 오늘(16일), 광주에서 열렸던 3차 민주화대성회 모습입니다.
서슬퍼런 전두환 신군부 탄압에 전국이 움츠러들었지만 유일하게 광주에선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였습니다.
[박관현 열사 녹취]
계엄군은 이 집회를 빌미로 이틀 뒤인 18일부터 광주시민을 학살했는데요.
KBS는 한국 현대사 영상자료를 발굴해 보존하는 과정에서 광주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의미있는 영상들을 찾아냈습니다.
오늘은 먼저, 민주주의 횃불을 치켜 들었던 41년 전 오늘, 영상으로 기록된 광주의 모습과 그 의미를 전해드립니다.
양창희 기잡니다.
[리포트]
버스에 내려 어딘가로 바삐 달려가는 사람들.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대학생도 보입니다.
이들은 모인 곳은 전남도청 앞 광장.
1980년 5월 16일, 41년 전 오늘입니다.
[전용호/당시 전남대학교 3학년 : "도청 앞 광장에 대학생들로 꽉 차고, 그러니까 주변에서 자전거타고 모이고...운집한 인원들이 2~3만 명이 됐을 겁니다."]
[정동년/당시 전남대 복학생 대표 연설자 :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간절해가지고 아주 사흘 동안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많이 모였어요."]
전두환 신군부 탄압으로 전국이 움츠러들었지만 광주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김태종/당시 전남대 4학년 : "그 당시 광주 대학생들이 주장하는 것이 계엄령 해제하라. 정치 일정 밝혀라."]
분수대 한가운데 널찍이 펼쳐진 태극기.
[정동년/당시 38세/전남대학교 복학생 대표로 연설 : "제가 분수대에서 연설했죠. 학생들이 일어나서 피를 흘리고 싸울 테니까, 여러분들은 진정하시라, 이렇게 이야기를 했어요."]
날이 저물고 횃불이 켜졌습니다.
[정동년 : "아주 평화적 시위를 했으니까, 그래서 경찰이 시위할 때도 양쪽으로 전부 다 경호하고..."]
야간 시위는 상상도 못 했던 당시, 광주 시민들이 횃불을 든 이유는 무엇일까?
[김태종 : "횃불 시위는, 유신의 잘못된 기운을 싹 태우고 분위기를 없애고 민주주의 새로운 희망인 횃불 들자 이런 의미였죠."]
[전용호 : "대학생들의 시위가 온 시민의 저항으로 확산되지 않습니까. 아주 질서정연하면서 시민들과 함께했던 저 3일간의 시위가 아주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는가."]
그러나 신군부는 전국 유일하게 남은 민주주의 열망을 총칼로 진압합니다.
[김태종 : "조국을 위한 것일 수도 있고, 민족을 위한 것일 수도 있고, 민주주의를 위한 것인데, 정말 순수한 열정을/야욕을 가진 신군부가 너무나 정말 비인간적으로 파괴시켰구나."]
KBS 뉴스 양창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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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창희 기자 shar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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