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용 희생자 원혼, 70여 년 만에 고국 품으로
입력 2015.08.19 (06:19)
수정 2015.08.19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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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일제 강점기때 일본 홋카이도에 강제 징용됐다가 숨진 사람이 2천 명이 넘는데요.
그동안 땅속에 방치됐던 이분들의 유골 가운데 백여 구가 한일 양국 시민단체의 노력으로 70여 년 만인 다음 달, 드디어 고국으로 돌아온다고 합니다.
홋카이도에서 박재우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최근 미국과 중국의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보상을 약속했던 '미쓰비시'의 한 광산, 태평양전쟁 때 일본 최대의 탄광으로 조선인 2천 8백여 명이 이곳에 강제 징용됐습니다.
이 가운데 5백여 명이 숨졌지만, 그동안 찾아낸 유골은 6구에 불과합니다.
<인터뷰> 채홍철(홋카이도 포럼 공동대표) : "현재까지 유족을 찾지 못하고 일본 사찰에 봉안하고 있습니다."
1943년 완공된 이 댐 공사에도 조선인 3천 명이 강제노역했습니다.
가혹한 중노동과 잇단 사고로 수십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인터뷰> 박재우(홋카이도 슈마리나이) : "발굴작업 당시 조선인들의 유골은 일본인들이 묻혀있던 공동묘지 뒤쪽 숲 속에 아무런 팻말이나 흔적도 없이 방치돼 있었습니다."
홋카이도에 강제 징용된 조선인 14만여 명 가운데 2천여 명이 숨졌습니다.
땅속에 방치돼 온 유골을 찾아낸 것은 한일 두 나라 대학생과 시민단체였습니다.
<인터뷰> 도노히라(강제노동희생자 유골반환위 공동대표) : "산 속에 잠들어 있는 것을 방치해 둘 수는 없었습니다."
이들이 지금까지 발굴해 사찰에 보관해왔던 유골 115구가 다음 달 20일 고국의 품으로 돌아갑니다.
70여 년 만의 귀향이지만 세월이 너무 많이 흘러 유족을 찾을지는 미지수입니다.
홋카이도에서 KBS 뉴스 박재우입니다.
일제 강점기때 일본 홋카이도에 강제 징용됐다가 숨진 사람이 2천 명이 넘는데요.
그동안 땅속에 방치됐던 이분들의 유골 가운데 백여 구가 한일 양국 시민단체의 노력으로 70여 년 만인 다음 달, 드디어 고국으로 돌아온다고 합니다.
홋카이도에서 박재우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최근 미국과 중국의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보상을 약속했던 '미쓰비시'의 한 광산, 태평양전쟁 때 일본 최대의 탄광으로 조선인 2천 8백여 명이 이곳에 강제 징용됐습니다.
이 가운데 5백여 명이 숨졌지만, 그동안 찾아낸 유골은 6구에 불과합니다.
<인터뷰> 채홍철(홋카이도 포럼 공동대표) : "현재까지 유족을 찾지 못하고 일본 사찰에 봉안하고 있습니다."
1943년 완공된 이 댐 공사에도 조선인 3천 명이 강제노역했습니다.
가혹한 중노동과 잇단 사고로 수십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인터뷰> 박재우(홋카이도 슈마리나이) : "발굴작업 당시 조선인들의 유골은 일본인들이 묻혀있던 공동묘지 뒤쪽 숲 속에 아무런 팻말이나 흔적도 없이 방치돼 있었습니다."
홋카이도에 강제 징용된 조선인 14만여 명 가운데 2천여 명이 숨졌습니다.
땅속에 방치돼 온 유골을 찾아낸 것은 한일 두 나라 대학생과 시민단체였습니다.
<인터뷰> 도노히라(강제노동희생자 유골반환위 공동대표) : "산 속에 잠들어 있는 것을 방치해 둘 수는 없었습니다."
이들이 지금까지 발굴해 사찰에 보관해왔던 유골 115구가 다음 달 20일 고국의 품으로 돌아갑니다.
70여 년 만의 귀향이지만 세월이 너무 많이 흘러 유족을 찾을지는 미지수입니다.
홋카이도에서 KBS 뉴스 박재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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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제징용 희생자 원혼, 70여 년 만에 고국 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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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5-08-19 06:16:25
- 수정2015-08-19 07: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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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일제 강점기때 일본 홋카이도에 강제 징용됐다가 숨진 사람이 2천 명이 넘는데요.
그동안 땅속에 방치됐던 이분들의 유골 가운데 백여 구가 한일 양국 시민단체의 노력으로 70여 년 만인 다음 달, 드디어 고국으로 돌아온다고 합니다.
홋카이도에서 박재우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최근 미국과 중국의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보상을 약속했던 '미쓰비시'의 한 광산, 태평양전쟁 때 일본 최대의 탄광으로 조선인 2천 8백여 명이 이곳에 강제 징용됐습니다.
이 가운데 5백여 명이 숨졌지만, 그동안 찾아낸 유골은 6구에 불과합니다.
<인터뷰> 채홍철(홋카이도 포럼 공동대표) : "현재까지 유족을 찾지 못하고 일본 사찰에 봉안하고 있습니다."
1943년 완공된 이 댐 공사에도 조선인 3천 명이 강제노역했습니다.
가혹한 중노동과 잇단 사고로 수십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인터뷰> 박재우(홋카이도 슈마리나이) : "발굴작업 당시 조선인들의 유골은 일본인들이 묻혀있던 공동묘지 뒤쪽 숲 속에 아무런 팻말이나 흔적도 없이 방치돼 있었습니다."
홋카이도에 강제 징용된 조선인 14만여 명 가운데 2천여 명이 숨졌습니다.
땅속에 방치돼 온 유골을 찾아낸 것은 한일 두 나라 대학생과 시민단체였습니다.
<인터뷰> 도노히라(강제노동희생자 유골반환위 공동대표) : "산 속에 잠들어 있는 것을 방치해 둘 수는 없었습니다."
이들이 지금까지 발굴해 사찰에 보관해왔던 유골 115구가 다음 달 20일 고국의 품으로 돌아갑니다.
70여 년 만의 귀향이지만 세월이 너무 많이 흘러 유족을 찾을지는 미지수입니다.
홋카이도에서 KBS 뉴스 박재우입니다.
일제 강점기때 일본 홋카이도에 강제 징용됐다가 숨진 사람이 2천 명이 넘는데요.
그동안 땅속에 방치됐던 이분들의 유골 가운데 백여 구가 한일 양국 시민단체의 노력으로 70여 년 만인 다음 달, 드디어 고국으로 돌아온다고 합니다.
홋카이도에서 박재우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최근 미국과 중국의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보상을 약속했던 '미쓰비시'의 한 광산, 태평양전쟁 때 일본 최대의 탄광으로 조선인 2천 8백여 명이 이곳에 강제 징용됐습니다.
이 가운데 5백여 명이 숨졌지만, 그동안 찾아낸 유골은 6구에 불과합니다.
<인터뷰> 채홍철(홋카이도 포럼 공동대표) : "현재까지 유족을 찾지 못하고 일본 사찰에 봉안하고 있습니다."
1943년 완공된 이 댐 공사에도 조선인 3천 명이 강제노역했습니다.
가혹한 중노동과 잇단 사고로 수십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인터뷰> 박재우(홋카이도 슈마리나이) : "발굴작업 당시 조선인들의 유골은 일본인들이 묻혀있던 공동묘지 뒤쪽 숲 속에 아무런 팻말이나 흔적도 없이 방치돼 있었습니다."
홋카이도에 강제 징용된 조선인 14만여 명 가운데 2천여 명이 숨졌습니다.
땅속에 방치돼 온 유골을 찾아낸 것은 한일 두 나라 대학생과 시민단체였습니다.
<인터뷰> 도노히라(강제노동희생자 유골반환위 공동대표) : "산 속에 잠들어 있는 것을 방치해 둘 수는 없었습니다."
이들이 지금까지 발굴해 사찰에 보관해왔던 유골 115구가 다음 달 20일 고국의 품으로 돌아갑니다.
70여 년 만의 귀향이지만 세월이 너무 많이 흘러 유족을 찾을지는 미지수입니다.
홋카이도에서 KBS 뉴스 박재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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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우 기자 pjwoo@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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