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국대 복서 듀오’가 만든 악몽의 학창 시절…“진정성 있는 사과 없었다”

입력 2021.03.02 (14:20) 수정 2021.03.0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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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들 시켜서 (몸을) 다 잡고 바지 벗기고 물파스같은 것을 성기나 얼굴에 막 뿌리는 거예요. 고통스러운 것보다 수치심이 제일 마음 아팠죠."
- 피해자 A

"BB탄 총을 쏘면서 웃고 장난치고, (신입생) 신고식이라는 명분으로 요구르트 50개를 페트병 한 통에 다 마시라고 한 뒤에 다 마시면 뒤에서 복부를 때려서 구토를 하게 만들고...문득문득 그들을 TV에서 보거나 얘기를 들으면 그 시절 고통이 떠오릅니다."
-피해자 B

"저는 (그들을) 지금도 원망하고 있어요. 진심 어린 사과를 한 번도 받아본 적 없거든요. 고등학교 때 있었던 일 생각하면 지금도 수치스럽고 그래요."
-피해자 C

'국가대표 복서 듀오'로 유명한 이들에게 학창 시절 학교 폭력을 당한 피해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제보 메일 한 통에서 시작된 학폭 사건 취재…의심에서 확신으로

스포츠계 유명 스타들의 '학폭 논란'으로 뜨겁던 지난달 15일 '운동선수 학교폭력을 제보합니다'는 제목의 메일 한 통을 받았습니다. 가해자로 지목된 이는 놀랍게도 과거 현장에서 취재한 경험이 있는 전·현직 복싱 국가대표 2명이었습니다.

현 국가대표로 도쿄 올림픽을 준비하고 있는 A(27)는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메달리스트, B(27)도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태극 마크를 달고 A와 함께 출전했습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잘 믿기지 않았습니다. 제가 당시 현장에서 지켜본 그들은 꿈 많고 쾌활한 청년에 가까웠지, 피해자들이 말하는 '공포의 선배'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수의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고 취재하면서 폭력으로 얼룩진 그들의 어두운 과거와 겉과 속이 다른 두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의심'에서 시작된 취재가 '확신'으로 바뀐 겁니다.


"약 2년 간 계속된 가혹행위…폭력·성추행·성희롱·금품 갈취 일삼아"

가해자로 지목된 복서 2명의 학교 폭력 사건은 단순히 한 두건의 폭행 또는 괴롭힘이 아닙니다.

두 선수가 고등학교 2학년인 2012년부터 약 2년 동안, 복싱부 후배들에게 가혹 행위를 일삼았습니다.

피해자들은 두 선수가 합숙소에서 '공포의 왕' 같은 존재였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피해자들은 "두 선수가 당시 복싱부에서 가장 힘이 세서 합숙소에서 왕처럼 군림했다”며“동기들마저 무서워하고 명령에 따를 정도”였다고 말했습니다.

가혹 행위 내용도 충격적입니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이들은 신입생 신고식이라는 이유로 후배들에게 강제로 요구르트 1.5리터를 마시게 한 뒤, 복부를 때려 구토를 하게 하거나 옷을 벗게 한 뒤 BB탄 총을 쐈습니다.

또 피어싱으로 후배의 귀를 강제로 뚫게 한 뒤, 스파링을 시켜 귀에 상해를 입게 하거나 훈련에 뒤처졌다는 이유로 후배들을 마구잡이로 폭행하는 등 죄의식 없이 온갖 폭력을 일삼았습니다.

피해자들은 이들이 성희롱, 성추행에도 거리낌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동기들을 시켜 피해자들의 속옷을 강제로 벗긴 뒤 성기에 물파스 등을 뿌리거나, '랜덤 게임'을 한다면서 게임에서 진 후배들의 옷을 다 벗긴 뒤 특정 부위에 뽀뽀하게 하는 등 입에 담기 힘들 정도의 성추행과 성희롱을 일삼았다는 겁니다.

피해자들은 이들이 금품을 갈취하기도 했다고 털어놨습니다.


학교 폭력 주동자로 정학 처분…"가해자들의 위선적인 모습이 폭로의 계기"

결국, 2명의 복서는 고3이었던 2013년 가혹행위를 견디다 못한 1학년 후배들에게 학교 폭력의 주동자로 신고당했습니다. 이들을 포함해 이들에게 동조했던 동기생 등 9명이 학교 학교폭력위원회에 회부됐습니다.

취재 결과, 두 선수는 학폭 사건으로 정학(출석 정지)과 사회봉사 처분을 받았지만, 고등학교는 정상 졸업했습니다. 이후 복싱 선수로 승승장구했고 같은 실업팀에 입단한 것은 물론, 태극마크까지 달았습니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약 8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도 고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가해자들이 TV 예능 프로그램이나 뉴스에 나올 때마다 그때의 끔찍한 기억이 저절로 떠오른다고 말합니다.

피해자들은 "가해자들로부터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받지 못했다”면서 “이들이 체육계 폭력 추방 운동에 참여하는 등 위선적인 모습을 보여 폭로를 결심했다고 밝혔습니다.

실제 이들은 지난 1월 자신들이 운영하는 SNS를 통해 체육계 폭력 추방 운동을 적극 지지한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피해자들 "가해자들, 지금도 반성하지 않고 당당한 모습 보여"

학교 폭력의 가해자였던 두 선수는 취재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A 선수는 학폭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했지만 해명이나 구체적인 답은 하지 않았고, B 선수는 기자에게 반말을 섞어가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KBS의 보도가 나간 후 복싱협회는 두 선수에 대한 징계 절차에 들어갔고, 대한체육회는 복싱협회의 징계 결과를 엄중히 지켜보겠다고 밝혔습니다. 현 국가대표인 A 선수는 복싱 대표팀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나 복싱계의 명예를 실추시킨 두 선수가 이번 사태의 책임을 느끼거나 반성하고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피해자들은 "KBS의 보도 이후 가해자들로부터 오랜만에 전화가 왔지만, 진정성 있는 사과는 전혀 없었고 오히려 친한 척을 한다"고 말했습니다. 또 "여전히 활발히 SNS를 하면서, 학폭 사건 관련 댓글은 지우는 등 당당한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며 분노했습니다.

다음은 두 선수 중 한 선수가 최근 SNS에 올린 글의 일부 내용입니다.

"누구든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만 할 뿐이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미안합니다. 앞으로 더욱 묵묵히 우리 일을 할게요"

형법에 공소시효가 있듯이 과거 미성년자 시절 저지른 잘못을 어느 정도 수위까지 처벌해야 하느냐를 놓고 의견이 갈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 자신들의 가혹행위로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후배들에게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당당히 체육계 폭력 추방을 외치는 이들이 과연 건전한 사고를 가진 체육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들이 미래에 복싱계 지도자나 행정가가 된다면 제자들이 무엇을 보고 자랄까요?

당시 이들과 함께 학교 폭력의 가해자로 처벌받았던 동기생의 생각도 비슷했습니다.

이 동기생은 기자에게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해야 하는데 이들은 그런 모습 없이, 최근 예능 방송에 출연해서 좋은 이미지를 만드려고 하는 모습을 보고 후배들의 뜻에 동참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복싱협회는 두 선수가 과거 학교 폭력으로 정학과 사회봉사 명령 등의 처분을 받았기 때문에 법리적으로 협회 차원의 징계가 가능한지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참고로 이들과 동년배인 이재영, 이다영 쌍둥이 자매는 중학교 시절 학교 폭력으로 국가대표 자격이 무기한 박탈됐습니다.

배구협회는 '사회적 물의를 야기한 사람은 국가대표 선수 및 지도자로 선발될 수 없다'국가대표 선발 및 운영 규정 제11조 1항 13호를 근거로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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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국대 복서 듀오’가 만든 악몽의 학창 시절…“진정성 있는 사과 없었다”
    • 입력 2021-03-02 14:20:50
    • 수정2021-03-02 18:00:40
    취재후·사건후

"동기들 시켜서 (몸을) 다 잡고 바지 벗기고 물파스같은 것을 성기나 얼굴에 막 뿌리는 거예요. 고통스러운 것보다 수치심이 제일 마음 아팠죠."
- 피해자 A

"BB탄 총을 쏘면서 웃고 장난치고, (신입생) 신고식이라는 명분으로 요구르트 50개를 페트병 한 통에 다 마시라고 한 뒤에 다 마시면 뒤에서 복부를 때려서 구토를 하게 만들고...문득문득 그들을 TV에서 보거나 얘기를 들으면 그 시절 고통이 떠오릅니다."
-피해자 B

"저는 (그들을) 지금도 원망하고 있어요. 진심 어린 사과를 한 번도 받아본 적 없거든요. 고등학교 때 있었던 일 생각하면 지금도 수치스럽고 그래요."
-피해자 C

'국가대표 복서 듀오'로 유명한 이들에게 학창 시절 학교 폭력을 당한 피해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제보 메일 한 통에서 시작된 학폭 사건 취재…의심에서 확신으로

스포츠계 유명 스타들의 '학폭 논란'으로 뜨겁던 지난달 15일 '운동선수 학교폭력을 제보합니다'는 제목의 메일 한 통을 받았습니다. 가해자로 지목된 이는 놀랍게도 과거 현장에서 취재한 경험이 있는 전·현직 복싱 국가대표 2명이었습니다.

현 국가대표로 도쿄 올림픽을 준비하고 있는 A(27)는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메달리스트, B(27)도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태극 마크를 달고 A와 함께 출전했습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잘 믿기지 않았습니다. 제가 당시 현장에서 지켜본 그들은 꿈 많고 쾌활한 청년에 가까웠지, 피해자들이 말하는 '공포의 선배'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수의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고 취재하면서 폭력으로 얼룩진 그들의 어두운 과거와 겉과 속이 다른 두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의심'에서 시작된 취재가 '확신'으로 바뀐 겁니다.


"약 2년 간 계속된 가혹행위…폭력·성추행·성희롱·금품 갈취 일삼아"

가해자로 지목된 복서 2명의 학교 폭력 사건은 단순히 한 두건의 폭행 또는 괴롭힘이 아닙니다.

두 선수가 고등학교 2학년인 2012년부터 약 2년 동안, 복싱부 후배들에게 가혹 행위를 일삼았습니다.

피해자들은 두 선수가 합숙소에서 '공포의 왕' 같은 존재였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피해자들은 "두 선수가 당시 복싱부에서 가장 힘이 세서 합숙소에서 왕처럼 군림했다”며“동기들마저 무서워하고 명령에 따를 정도”였다고 말했습니다.

가혹 행위 내용도 충격적입니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이들은 신입생 신고식이라는 이유로 후배들에게 강제로 요구르트 1.5리터를 마시게 한 뒤, 복부를 때려 구토를 하게 하거나 옷을 벗게 한 뒤 BB탄 총을 쐈습니다.

또 피어싱으로 후배의 귀를 강제로 뚫게 한 뒤, 스파링을 시켜 귀에 상해를 입게 하거나 훈련에 뒤처졌다는 이유로 후배들을 마구잡이로 폭행하는 등 죄의식 없이 온갖 폭력을 일삼았습니다.

피해자들은 이들이 성희롱, 성추행에도 거리낌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동기들을 시켜 피해자들의 속옷을 강제로 벗긴 뒤 성기에 물파스 등을 뿌리거나, '랜덤 게임'을 한다면서 게임에서 진 후배들의 옷을 다 벗긴 뒤 특정 부위에 뽀뽀하게 하는 등 입에 담기 힘들 정도의 성추행과 성희롱을 일삼았다는 겁니다.

피해자들은 이들이 금품을 갈취하기도 했다고 털어놨습니다.


학교 폭력 주동자로 정학 처분…"가해자들의 위선적인 모습이 폭로의 계기"

결국, 2명의 복서는 고3이었던 2013년 가혹행위를 견디다 못한 1학년 후배들에게 학교 폭력의 주동자로 신고당했습니다. 이들을 포함해 이들에게 동조했던 동기생 등 9명이 학교 학교폭력위원회에 회부됐습니다.

취재 결과, 두 선수는 학폭 사건으로 정학(출석 정지)과 사회봉사 처분을 받았지만, 고등학교는 정상 졸업했습니다. 이후 복싱 선수로 승승장구했고 같은 실업팀에 입단한 것은 물론, 태극마크까지 달았습니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약 8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도 고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가해자들이 TV 예능 프로그램이나 뉴스에 나올 때마다 그때의 끔찍한 기억이 저절로 떠오른다고 말합니다.

피해자들은 "가해자들로부터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받지 못했다”면서 “이들이 체육계 폭력 추방 운동에 참여하는 등 위선적인 모습을 보여 폭로를 결심했다고 밝혔습니다.

실제 이들은 지난 1월 자신들이 운영하는 SNS를 통해 체육계 폭력 추방 운동을 적극 지지한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피해자들 "가해자들, 지금도 반성하지 않고 당당한 모습 보여"

학교 폭력의 가해자였던 두 선수는 취재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A 선수는 학폭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했지만 해명이나 구체적인 답은 하지 않았고, B 선수는 기자에게 반말을 섞어가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KBS의 보도가 나간 후 복싱협회는 두 선수에 대한 징계 절차에 들어갔고, 대한체육회는 복싱협회의 징계 결과를 엄중히 지켜보겠다고 밝혔습니다. 현 국가대표인 A 선수는 복싱 대표팀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나 복싱계의 명예를 실추시킨 두 선수가 이번 사태의 책임을 느끼거나 반성하고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피해자들은 "KBS의 보도 이후 가해자들로부터 오랜만에 전화가 왔지만, 진정성 있는 사과는 전혀 없었고 오히려 친한 척을 한다"고 말했습니다. 또 "여전히 활발히 SNS를 하면서, 학폭 사건 관련 댓글은 지우는 등 당당한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며 분노했습니다.

다음은 두 선수 중 한 선수가 최근 SNS에 올린 글의 일부 내용입니다.

"누구든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만 할 뿐이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미안합니다. 앞으로 더욱 묵묵히 우리 일을 할게요"

형법에 공소시효가 있듯이 과거 미성년자 시절 저지른 잘못을 어느 정도 수위까지 처벌해야 하느냐를 놓고 의견이 갈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 자신들의 가혹행위로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후배들에게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당당히 체육계 폭력 추방을 외치는 이들이 과연 건전한 사고를 가진 체육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들이 미래에 복싱계 지도자나 행정가가 된다면 제자들이 무엇을 보고 자랄까요?

당시 이들과 함께 학교 폭력의 가해자로 처벌받았던 동기생의 생각도 비슷했습니다.

이 동기생은 기자에게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해야 하는데 이들은 그런 모습 없이, 최근 예능 방송에 출연해서 좋은 이미지를 만드려고 하는 모습을 보고 후배들의 뜻에 동참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복싱협회는 두 선수가 과거 학교 폭력으로 정학과 사회봉사 명령 등의 처분을 받았기 때문에 법리적으로 협회 차원의 징계가 가능한지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참고로 이들과 동년배인 이재영, 이다영 쌍둥이 자매는 중학교 시절 학교 폭력으로 국가대표 자격이 무기한 박탈됐습니다.

배구협회는 '사회적 물의를 야기한 사람은 국가대표 선수 및 지도자로 선발될 수 없다'국가대표 선발 및 운영 규정 제11조 1항 13호를 근거로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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