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방과후 봉사자 348명 채용’, 진짜 차별인 이유는?

입력 2021.01.15 (16:53) 수정 2021.01.15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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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갑자기 날아든 '방과후 공문' 논란의 시작

지난해 12월 경남교육청은 각 학교에 <방과후 학교실무사 면접시행> 공문을 보냈습니다. 방과후 자원봉사자들을 공공부문 무기계약직, 즉 공무직으로 전환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주당 15시간 미만으로 일하는 자원봉사자들을, 공무직의 일종인 주 40시간 '방과후 실무사'로 고용해 정년을 보장하고, 4대 보험과 각종 수당, 퇴직금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한 겁니다.

전환 대상자는 11월 1일 기준 근무자 348명으로 못 박았습니다.

■교무행정원 응시생 600명, 왜 분노했나?

문제는 '방과후 실무사'와 업무가 유사한 경남교육청 '교무 행정원'의 경우 지난해부터 공개 채용을 통해 선발되고 있다는 겁니다.

1차 인·적성과 직무역량 필기를 거쳐 2차 면접을 통과해야 하는데 12명 뽑는 시험에 응시자만 600여 명이 몰려 경쟁률이 50대 1입니다.


취업준비생 다수는 방과후 자원봉사자들의 공무직 전환을 중단해 달라는 '국민청원'에 동의하며 분노를 쏟아냈습니다.

특히 전환 대상자 348명 가운데 근속 연한 1년 미만자들까지 다수 포함된 것으로 드러나자, 논란은 가중됐습니다.

■근로자 아니라면서 정규직 채용…? 앞뒤 안 맞는 해명만 반복

2017년 정부가 내놓은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는 정규직 전환 범위와 방식, 채용방법에 대해 '심의기구'를 통해 결정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전환 과정에서 불거질 수 있는 불공정 논란을 최소화하기 위한 겁니다.

실제로 2018년 경남교육청은 환경미화원과 경비원 등 용역 근로자 1,300여 명을 정규직 전환하면서 외부 전문가 등 12명이 참여하는 '노사전문가 협의회'를 열었고 이 심의기구를 통해 전환 대상자를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자원봉사자의 공무직 전환에는 이 같은 심의 절차가 빠졌습니다.


심의기구를 거치치 않아 절차적 정당성이 없다는 지적에 대해 경남교육청은 방과후 자원봉사자는 애초 정규직 전환 대상이 아니어서 '정규직 전환 지침'을 적용할 필요가 없다고 해명했습니다.

교육청이 파악한 정규직 전환 대상은 기간제법에 명시된 최소 4시간 이상 근무하는 '단기 근로자'인데, 방과후 자원봉사자들의 근로 시간은 하루 3시간 미만으로 이들의 신분 역시 근로자가 아닌 '자원봉사자'라는 설명이었습니다.

교육청 말을 그대로 인정한다면, 근로자가 아닌 자원봉사자들을 일시에 대거 정규직 근로자로 신규 채용한 셈입니다. 그것도 '교육공무직원 채용 조례'에 명시된 '공개채용' 원칙을 무시하고 자원봉사자들을 '특별채용'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교육청 20일 만에 결정 번복 "방과후 실무사 면접 중단, 의견 수렴할 것"


논리가 궁색해진 경남교육청은 결국 20여 일 만에 공무직 채용 결정을 잠정 보류했습니다.

박종훈 경남교육감은 기자회견을 열어, '방과후 실무사' 면접시험을 연기하고 교육공동체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공무원' 신분 교직원 뽑는 절차였다면?

경남교육청은 지난해 10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와의 합의를 통해 방과후 자원봉사자 348명의 공무직 전환을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은 지난해 12월 말 각 학교에 공문이 전달되기 전까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교원단체와 교사노조가 '밀실협약' '졸속행정'이라고 비판하는 이유입니다.

만일 이것이 '공무원' 신분의 교사와 교직원을 신규채용하거나 승진시키는 문제였다면, 경남교육청은 비슷한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까요? 교육감의 '교육철학'을 명분으로, 아무도 모르게 특정 단체와 '합의문'을 만들고 특정 교사를 신규채용하거나 승진시켜주는 일이 가능할까요?

■불합리한 채용을 용인하는 '진짜 차별'


교육 공무원을 채용하는 방식은 '교육공무원법'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반면 교육 공무직은 시도별 조례를 통해 채용 방식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취재진의 거듭된 문제 제기에 경남교육청 관계자는 "공무직 채용은 공무원처럼 '법제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채용 방식 역시 각 교육청이 판단할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법제화'되어 있지 않다고 해서, 교육청이 자의적으로 채용해도 된다는 건 아닙니다. '교육공무직'이 되기 위해 청춘의 한 시기를 바쳐 공부하고, 또 당락에 울고 웃는 청년들을 한 번이라도 고려했더라면 적어도 지금처럼 안이하게 결정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공무원' 신분의 교사와 교직원 채용이었다면 상상조차 못 했을 불합리한 채용 방식, 이걸 용인한 사고 속에 어쩌면 '진짜 차별'이 자리 잡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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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방과후 봉사자 348명 채용’, 진짜 차별인 이유는?
    • 입력 2021-01-15 16:53:58
    • 수정2021-01-15 16:55:13
    취재후·사건후

■ 어느 날 갑자기 날아든 '방과후 공문' 논란의 시작

지난해 12월 경남교육청은 각 학교에 <방과후 학교실무사 면접시행> 공문을 보냈습니다. 방과후 자원봉사자들을 공공부문 무기계약직, 즉 공무직으로 전환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주당 15시간 미만으로 일하는 자원봉사자들을, 공무직의 일종인 주 40시간 '방과후 실무사'로 고용해 정년을 보장하고, 4대 보험과 각종 수당, 퇴직금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한 겁니다.

전환 대상자는 11월 1일 기준 근무자 348명으로 못 박았습니다.

■교무행정원 응시생 600명, 왜 분노했나?

문제는 '방과후 실무사'와 업무가 유사한 경남교육청 '교무 행정원'의 경우 지난해부터 공개 채용을 통해 선발되고 있다는 겁니다.

1차 인·적성과 직무역량 필기를 거쳐 2차 면접을 통과해야 하는데 12명 뽑는 시험에 응시자만 600여 명이 몰려 경쟁률이 50대 1입니다.


취업준비생 다수는 방과후 자원봉사자들의 공무직 전환을 중단해 달라는 '국민청원'에 동의하며 분노를 쏟아냈습니다.

특히 전환 대상자 348명 가운데 근속 연한 1년 미만자들까지 다수 포함된 것으로 드러나자, 논란은 가중됐습니다.

■근로자 아니라면서 정규직 채용…? 앞뒤 안 맞는 해명만 반복

2017년 정부가 내놓은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는 정규직 전환 범위와 방식, 채용방법에 대해 '심의기구'를 통해 결정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전환 과정에서 불거질 수 있는 불공정 논란을 최소화하기 위한 겁니다.

실제로 2018년 경남교육청은 환경미화원과 경비원 등 용역 근로자 1,300여 명을 정규직 전환하면서 외부 전문가 등 12명이 참여하는 '노사전문가 협의회'를 열었고 이 심의기구를 통해 전환 대상자를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자원봉사자의 공무직 전환에는 이 같은 심의 절차가 빠졌습니다.


심의기구를 거치치 않아 절차적 정당성이 없다는 지적에 대해 경남교육청은 방과후 자원봉사자는 애초 정규직 전환 대상이 아니어서 '정규직 전환 지침'을 적용할 필요가 없다고 해명했습니다.

교육청이 파악한 정규직 전환 대상은 기간제법에 명시된 최소 4시간 이상 근무하는 '단기 근로자'인데, 방과후 자원봉사자들의 근로 시간은 하루 3시간 미만으로 이들의 신분 역시 근로자가 아닌 '자원봉사자'라는 설명이었습니다.

교육청 말을 그대로 인정한다면, 근로자가 아닌 자원봉사자들을 일시에 대거 정규직 근로자로 신규 채용한 셈입니다. 그것도 '교육공무직원 채용 조례'에 명시된 '공개채용' 원칙을 무시하고 자원봉사자들을 '특별채용'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교육청 20일 만에 결정 번복 "방과후 실무사 면접 중단, 의견 수렴할 것"


논리가 궁색해진 경남교육청은 결국 20여 일 만에 공무직 채용 결정을 잠정 보류했습니다.

박종훈 경남교육감은 기자회견을 열어, '방과후 실무사' 면접시험을 연기하고 교육공동체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공무원' 신분 교직원 뽑는 절차였다면?

경남교육청은 지난해 10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와의 합의를 통해 방과후 자원봉사자 348명의 공무직 전환을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은 지난해 12월 말 각 학교에 공문이 전달되기 전까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교원단체와 교사노조가 '밀실협약' '졸속행정'이라고 비판하는 이유입니다.

만일 이것이 '공무원' 신분의 교사와 교직원을 신규채용하거나 승진시키는 문제였다면, 경남교육청은 비슷한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까요? 교육감의 '교육철학'을 명분으로, 아무도 모르게 특정 단체와 '합의문'을 만들고 특정 교사를 신규채용하거나 승진시켜주는 일이 가능할까요?

■불합리한 채용을 용인하는 '진짜 차별'


교육 공무원을 채용하는 방식은 '교육공무원법'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반면 교육 공무직은 시도별 조례를 통해 채용 방식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취재진의 거듭된 문제 제기에 경남교육청 관계자는 "공무직 채용은 공무원처럼 '법제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채용 방식 역시 각 교육청이 판단할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법제화'되어 있지 않다고 해서, 교육청이 자의적으로 채용해도 된다는 건 아닙니다. '교육공무직'이 되기 위해 청춘의 한 시기를 바쳐 공부하고, 또 당락에 울고 웃는 청년들을 한 번이라도 고려했더라면 적어도 지금처럼 안이하게 결정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공무원' 신분의 교사와 교직원 채용이었다면 상상조차 못 했을 불합리한 채용 방식, 이걸 용인한 사고 속에 어쩌면 '진짜 차별'이 자리 잡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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