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재판’ 3인방의 엇갈린 증언…누구 말이 맞나?

입력 2020.06.05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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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업자 고(故) 한만호 씨가 한명숙 전 총리에게 9억 원의 불법정치자금을 줬다는 이른바 '한명숙 사건'. 여기에는 '수감자 3인방'이 등장한다. 당시 검찰의 수사 행태가 위법적이었는가를 둘러싸고 이들의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KBS는 이들 3인방을 모두 만나 인터뷰를 했다. 이들 주장의 신빙성을 검증하기 위해서였다. 이번 사건에 연루된 수감자 3인방 모두를 취재한 것은 KBS가 유일하다. 물론 이들은 정치자금 사건의 직접적 당사자라기보다는 간접적 당사자다. 그러나 돈을 줬다고 지목된 한만호 씨가 이미 숨진 상황에서 이들의 이야기는 △검찰 수사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는지 △더 나아가 그것이 검찰의 법적 책임과 한명숙 전 총리의 재심 청구로 이어질 수 있는지 따져볼 수 있는 단초가 되는 게 사실이다.

이들 '수감자 3인방'의 이야기를 언론에 공개된 순서대로 간략히 정리하고 다각도로 분석해 본다.

(※참고로 수감 생활을 한 사람들은 '죄수'라는 단어를 싫어하는 편이다. 그래서 여기에선 수감자·재소자 등의 표현을 택한다. 이들 자신의 혐의와 죄명은 본 사건과 사실상 무관하기에 적지 않기로 한다. 기사의 가독성을 위해 직함은 생략하고 한명숙·한만호 두 사람의 이름은 3음절 그대로 표기한다. 수감자 3인방은 성만 표기한다.)

수감자 3인방이 '한명숙 재판'에 연루된 이유는?

한만호는 2010년 4월 검찰 조사 당시에는 한명숙에게 '직접 만나' 돈을 줬다고 진술한다. 그러나 12월 재판에 나와선 진술을 완전히 뒤바꾼다. 돈을 준 적 없다는 것이다.

검찰은 크게 당황했고, 이 같은 한만호의 바뀐 진술을 반박하기 위해 증인을 부른다. 한만호의 수감 동료 최 모 씨와 김 모 씨다. 이들은 검찰 측 증인으로 법정에 서서 "한만호가 한명숙 측에 돈을 줬다는 사실을 구치소에서 말했고 나는 그것을 들었다"는 취지로 증언한다. 검찰에 유리하고 한명숙에게 불리한 증언이었다.


첫 번째 폭로, 수감자 한 모 씨 "검찰이 허위 증언 시켰다"

수감자 3인방 가운데 언론에 첫 번째로 공개된 주장은 한 모 씨가 제기한 것이다. 한 씨는 2006년 구속돼 지금까지 수감 생활을 계속하고 있는 재소자다.

[뉴스타파]를 통해 처음 등장한 한 씨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①당시 검찰이 자신을 포함한 수감자 3인방을 법정 증인으로 세우려 했고 ②한만호가 돈을 줬다는 내용을 들었다고 법정에서 말할 것을 검찰이 종용했으며 ③한 씨 자신은 그것을 거부했으나 나머지 2명은 받아들여서 법정에 증인으로 섰다는 것이다.

일단 이들 3인방이 한만호와 구치소에서 교류했다는 사실은 재판 과정에서도 확인된다. 누구랑 더 가까웠고 누구랑 덜 가까웠는지는 입증할 수 없지만, 검찰 역시 이들 3인방을 법정 증인으로 세우려 했다는 것 자체는 인정하고 있다. 다만 위증을 종용한 바는 없다는 것이다.

KBS는 한 씨를 직접 만나 2시간여 인터뷰를 진행했다. 한 씨는 나름의 구체성을 제시하고 있다. 검찰에서 조사받을 때 초밥을 먹었다는 걸 증빙하는 영수증, 검찰이 자기 아들까지 불러서 본인을 압박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아들의 출정 기록' 등이다. 한 씨가 현 시점에서 이런 폭로를 했을 때 특별한 이득을 취할 게 없어 보인다는 점도 한 씨 주장에 신빙성을 줄 수 있는 포인트다.

그러나 반대로 한 씨 주장에 의문이 제기되는 지점도 있다.

한 씨는 정작 핵심적 대목, 즉 어떤 검사가 어떤 방식, 어떤 내용으로 위증을 교사했는지에 대해 취재진에게 구체적으로 설명하진 못했다. 2시간 동안 취재진이 가장 집중적으로 물었던 게 이 부분이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취지로 답했다. 물론 10년 전 일이라 실제 기억나지 않을 수 있지만, 폭로의 알맹이 부분에 대한 구체성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한 씨가 법정 증언대에 서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도 엇갈리는 말이 나온다. 한 씨는 본인의 양심상 위증을 거부했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뒤에서 살펴볼 '수감자 3인방' 중 한 명인 김 모 씨의 말에 따르면, 한 씨가 검찰에서 '엉뚱한 이야기'를 끄집어내 검찰이 그를 신뢰하지 않고 배제했다는 것이다.

즉 한만호로부터 들은 얘기만 전달하면 되는데, '경찰관 상납' 등 한만호가 하지 않은 이야기까지 부풀려 말하다가 수사팀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증인에서 배제됐다는 주장이다. 검찰이 최근 내놓은 해명과 맥락을 같이한다. 그러나 이는 김 씨와 검찰의 주장일 뿐이며, 한 씨는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두 번째 폭로, 수감자 최 모 씨 "위증교사는 있었다, 그러나..."

KBS가 처음 공개한 두 번째 폭로자는 최 모 씨다. 2018년 출소했다가 다른 혐의로 붙잡혀 현재 구치소에 수감된 상태다. KBS는 그를 두 차례 만났다. 총 5시간의 인터뷰가 구치소에서 진행됐다. 최 씨는 한 씨와 달리 2011년 한명숙 재판 증언대에 직접 출석했던 검찰 측 증인이었다.

최 씨 주장의 핵심은 당시 검찰에서 '위증교사'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한명숙 사건이 최근 언론에서 불거지기 한 달쯤 전인 2020년 4월 초에 이미 법무부에 진정서를 제출해, 한명숙 사건에서 '증거조작 등 검찰의 부조리'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니까 수감자 3인방 가운데 지금까지 공식적·법률적 행위를 한 유일한 사람이다. 최 씨의 진정 내용은 현재 서울중앙지검 인권감독관에 배당돼 있다.

최 씨가 실제 법정에 서서 증언을 한 사람이기 때문에 위와 같은 주장은 본인이 '모해위증'(남에게 해를 입힐 목적으로 위증하는 것)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감수한 것이라는 측면에서는 그의 주장에 신빙성을 줄 수 있다.

한만호가 법정에서 진술을 180도 바꾼 뒤 검찰 입장에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었으니 최 씨 주장대로 수감자들을 상대로 위증교사를 감행했을 가능성도 있다. 한명숙 수사가 정권 차원에서 진행된 '표적수사'의 성격이 강했다는 비판을 감안하면 위증교사가 아예 불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니다.

그러나 반대로 검찰 입장에서만 보면, 언제든 말을 바꿀 수 있는 수감자들을 상대로 위증교사라는 '위험한 작업'을 떠안을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현실적 의문은 제기된다. 최 씨는 KBS 방송 이후 '검찰의 위증교사가 있었으나 본인은 위증하지 않았다'는, 다소 이해하기 힘든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법무부나 검찰 조사가 진행될 때까지는 최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삼가겠다는 게 최 씨 입장이라 의문이 당장 해소되긴 힘들다.


■ 세 번째 폭로, 김 모 씨 "위증교사는 없었다, 그러나..."

KBS가 처음 공개한 세 번째 주장의 당사자는 김 모 씨다. 김 씨는 2010년 9월 출소한 뒤 지금까지 사업가로 활동하고 있다. 취재진은 김 씨와 2시간 가까이 인터뷰를 진행했다.

김 씨 역시 최 씨처럼 2011년 한명숙 재판에 직접 나가 진술한 검찰 측 증인이었다. 검찰의 위증교사는 없었다는 게 김 씨 주장이다. 다만 법정 출석 전에 문답을 명확하게 하기 위한 사전 연습은 있었다고 한다. 다시 말해, 없는 얘기를 지어낸 것은 전혀 없고, 따라서 한만호로부터 '돈을 줬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은 사실이라는 주장이다.

물론 김 씨 주장에도 의심을 가져볼 필요는 있다. 본인의 '모해위증죄'를 모면해 보려는 것일 수도 있고 검찰을 옹호하려는 의도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김 씨는 검찰이 불편해할 만한 이야기도 상당수 꺼냈다.

△자신이 출소 이후 '일주일에 3번꼴'로 검찰을 들락거렸고, △그 이유는 마음이 바뀌면서 정서가 불안정해진 한만호를 달래고 안정시키는 데 (평소 가까웠던) 자신이 활용됐다는 것 △출입기록을 남기지 않기 위해 검찰 직원이 매번 마중을 나와 건물 뒷문으로 출입했다는 것 △수감 시절 친하게 지냈던 재소자들을 마음껏 불러 검사실에서 만났다는 것 등이다. 김 씨는 "검찰도 잘못 많이 했죠"라고 취재진에게 말하기도 했다.

김 씨 "한만호가 한명숙을 직접 만나 준 적은 없다고 했다"

김 씨가 취재진에게 한 말 중에 주목할 부분은 또 있다. 자신은 한만호로부터 '돈을 줬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은 맞지만, '한만호가 한명숙을 직접 만나' 돈을 줬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 없다고 했다. 한만호는 자신에게 '한명숙을 만나서 돈을 준 적은 없었다'고 여러 번 이야기했다고 한다. 김 씨는 취재진에게 이 부분을 거듭 강조했다.

이는 검찰의 공소사실과 배치된다. 검찰의 공소사실은 △한만호가 한명숙을 3번 직접 만나서(차량-집-집) △각각 3억 원씩 총 9억 원을 면 대 면으로 건넸다는 것이었다. 직접 만났느냐 안 만났느냐는 중요한 포인트다. 정치자금법상 유죄가 되려면 피고인이 직접 돈을 받거나, 측근이 돈을 받는 것을 지시 또는 인지하거나 하는 '개입'이 입증돼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입증의 책임은 검찰에 있다.

이런 김 씨의 주장은 한명숙 사건을 나름 '합리적'으로 설명해주기도 한다. 만약 김 씨 말이 실체에 가깝다면, 한명숙 본인이 직접 돈을 건네받은 것은 아니기에 한명숙 개인은 억울할 수 있고 유무죄를 다시 따져봐야 한다는 세간의 주장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게 된다. 그러나 한명숙 '측'이 돈을 받은 것은 사실이 되고, 실제 대법관 전원이 유죄로 판단한 '문제의 3억 원'(한명숙 동생의 전세자금에 쓰인 수표 1억 원 + 한명숙 측근 비서가 한만호에게 돌려준 2억 원)이 설명 가능해진다.

필요한 것은 '교차 검증'과 '당국의 조사'

지금까지 한명숙 사건에 연루된 수감자 3인방의 말을 다각도로 짚어봤다. 한쪽 방향으로 속시원하게 기사를 쓸 수 없는 것은, 이들 수감자의 일방적 주장을 어디까지 인용하고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문제, 그리고 이들의 주장에 대한 정교한 검증과 분석이 필요하다는 점 등과 연관돼 있다. 수사권이나 조사권을 갖지 못한 언론의 한계이기도 하다.

따라서 당국의 조사는 불가피해 보인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도 조사 의지를 밝혔고, 현재 공은 검찰로 넘어가 있다. 수감자 3인방의 엇갈리는 주장 속에서도 하나의 공통된 것이 있으니, 그것은 3인방 모두가 당국 조사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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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숙 재판’ 3인방의 엇갈린 증언…누구 말이 맞나?
    • 입력 2020-06-05 14:58:03
    취재K
건설업자 고(故) 한만호 씨가 한명숙 전 총리에게 9억 원의 불법정치자금을 줬다는 이른바 '한명숙 사건'. 여기에는 '수감자 3인방'이 등장한다. 당시 검찰의 수사 행태가 위법적이었는가를 둘러싸고 이들의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KBS는 이들 3인방을 모두 만나 인터뷰를 했다. 이들 주장의 신빙성을 검증하기 위해서였다. 이번 사건에 연루된 수감자 3인방 모두를 취재한 것은 KBS가 유일하다. 물론 이들은 정치자금 사건의 직접적 당사자라기보다는 간접적 당사자다. 그러나 돈을 줬다고 지목된 한만호 씨가 이미 숨진 상황에서 이들의 이야기는 △검찰 수사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는지 △더 나아가 그것이 검찰의 법적 책임과 한명숙 전 총리의 재심 청구로 이어질 수 있는지 따져볼 수 있는 단초가 되는 게 사실이다.

이들 '수감자 3인방'의 이야기를 언론에 공개된 순서대로 간략히 정리하고 다각도로 분석해 본다.

(※참고로 수감 생활을 한 사람들은 '죄수'라는 단어를 싫어하는 편이다. 그래서 여기에선 수감자·재소자 등의 표현을 택한다. 이들 자신의 혐의와 죄명은 본 사건과 사실상 무관하기에 적지 않기로 한다. 기사의 가독성을 위해 직함은 생략하고 한명숙·한만호 두 사람의 이름은 3음절 그대로 표기한다. 수감자 3인방은 성만 표기한다.)

수감자 3인방이 '한명숙 재판'에 연루된 이유는?

한만호는 2010년 4월 검찰 조사 당시에는 한명숙에게 '직접 만나' 돈을 줬다고 진술한다. 그러나 12월 재판에 나와선 진술을 완전히 뒤바꾼다. 돈을 준 적 없다는 것이다.

검찰은 크게 당황했고, 이 같은 한만호의 바뀐 진술을 반박하기 위해 증인을 부른다. 한만호의 수감 동료 최 모 씨와 김 모 씨다. 이들은 검찰 측 증인으로 법정에 서서 "한만호가 한명숙 측에 돈을 줬다는 사실을 구치소에서 말했고 나는 그것을 들었다"는 취지로 증언한다. 검찰에 유리하고 한명숙에게 불리한 증언이었다.


첫 번째 폭로, 수감자 한 모 씨 "검찰이 허위 증언 시켰다"

수감자 3인방 가운데 언론에 첫 번째로 공개된 주장은 한 모 씨가 제기한 것이다. 한 씨는 2006년 구속돼 지금까지 수감 생활을 계속하고 있는 재소자다.

[뉴스타파]를 통해 처음 등장한 한 씨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①당시 검찰이 자신을 포함한 수감자 3인방을 법정 증인으로 세우려 했고 ②한만호가 돈을 줬다는 내용을 들었다고 법정에서 말할 것을 검찰이 종용했으며 ③한 씨 자신은 그것을 거부했으나 나머지 2명은 받아들여서 법정에 증인으로 섰다는 것이다.

일단 이들 3인방이 한만호와 구치소에서 교류했다는 사실은 재판 과정에서도 확인된다. 누구랑 더 가까웠고 누구랑 덜 가까웠는지는 입증할 수 없지만, 검찰 역시 이들 3인방을 법정 증인으로 세우려 했다는 것 자체는 인정하고 있다. 다만 위증을 종용한 바는 없다는 것이다.

KBS는 한 씨를 직접 만나 2시간여 인터뷰를 진행했다. 한 씨는 나름의 구체성을 제시하고 있다. 검찰에서 조사받을 때 초밥을 먹었다는 걸 증빙하는 영수증, 검찰이 자기 아들까지 불러서 본인을 압박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아들의 출정 기록' 등이다. 한 씨가 현 시점에서 이런 폭로를 했을 때 특별한 이득을 취할 게 없어 보인다는 점도 한 씨 주장에 신빙성을 줄 수 있는 포인트다.

그러나 반대로 한 씨 주장에 의문이 제기되는 지점도 있다.

한 씨는 정작 핵심적 대목, 즉 어떤 검사가 어떤 방식, 어떤 내용으로 위증을 교사했는지에 대해 취재진에게 구체적으로 설명하진 못했다. 2시간 동안 취재진이 가장 집중적으로 물었던 게 이 부분이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취지로 답했다. 물론 10년 전 일이라 실제 기억나지 않을 수 있지만, 폭로의 알맹이 부분에 대한 구체성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한 씨가 법정 증언대에 서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도 엇갈리는 말이 나온다. 한 씨는 본인의 양심상 위증을 거부했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뒤에서 살펴볼 '수감자 3인방' 중 한 명인 김 모 씨의 말에 따르면, 한 씨가 검찰에서 '엉뚱한 이야기'를 끄집어내 검찰이 그를 신뢰하지 않고 배제했다는 것이다.

즉 한만호로부터 들은 얘기만 전달하면 되는데, '경찰관 상납' 등 한만호가 하지 않은 이야기까지 부풀려 말하다가 수사팀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증인에서 배제됐다는 주장이다. 검찰이 최근 내놓은 해명과 맥락을 같이한다. 그러나 이는 김 씨와 검찰의 주장일 뿐이며, 한 씨는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두 번째 폭로, 수감자 최 모 씨 "위증교사는 있었다, 그러나..."

KBS가 처음 공개한 두 번째 폭로자는 최 모 씨다. 2018년 출소했다가 다른 혐의로 붙잡혀 현재 구치소에 수감된 상태다. KBS는 그를 두 차례 만났다. 총 5시간의 인터뷰가 구치소에서 진행됐다. 최 씨는 한 씨와 달리 2011년 한명숙 재판 증언대에 직접 출석했던 검찰 측 증인이었다.

최 씨 주장의 핵심은 당시 검찰에서 '위증교사'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한명숙 사건이 최근 언론에서 불거지기 한 달쯤 전인 2020년 4월 초에 이미 법무부에 진정서를 제출해, 한명숙 사건에서 '증거조작 등 검찰의 부조리'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니까 수감자 3인방 가운데 지금까지 공식적·법률적 행위를 한 유일한 사람이다. 최 씨의 진정 내용은 현재 서울중앙지검 인권감독관에 배당돼 있다.

최 씨가 실제 법정에 서서 증언을 한 사람이기 때문에 위와 같은 주장은 본인이 '모해위증'(남에게 해를 입힐 목적으로 위증하는 것)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감수한 것이라는 측면에서는 그의 주장에 신빙성을 줄 수 있다.

한만호가 법정에서 진술을 180도 바꾼 뒤 검찰 입장에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었으니 최 씨 주장대로 수감자들을 상대로 위증교사를 감행했을 가능성도 있다. 한명숙 수사가 정권 차원에서 진행된 '표적수사'의 성격이 강했다는 비판을 감안하면 위증교사가 아예 불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니다.

그러나 반대로 검찰 입장에서만 보면, 언제든 말을 바꿀 수 있는 수감자들을 상대로 위증교사라는 '위험한 작업'을 떠안을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현실적 의문은 제기된다. 최 씨는 KBS 방송 이후 '검찰의 위증교사가 있었으나 본인은 위증하지 않았다'는, 다소 이해하기 힘든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법무부나 검찰 조사가 진행될 때까지는 최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삼가겠다는 게 최 씨 입장이라 의문이 당장 해소되긴 힘들다.


■ 세 번째 폭로, 김 모 씨 "위증교사는 없었다, 그러나..."

KBS가 처음 공개한 세 번째 주장의 당사자는 김 모 씨다. 김 씨는 2010년 9월 출소한 뒤 지금까지 사업가로 활동하고 있다. 취재진은 김 씨와 2시간 가까이 인터뷰를 진행했다.

김 씨 역시 최 씨처럼 2011년 한명숙 재판에 직접 나가 진술한 검찰 측 증인이었다. 검찰의 위증교사는 없었다는 게 김 씨 주장이다. 다만 법정 출석 전에 문답을 명확하게 하기 위한 사전 연습은 있었다고 한다. 다시 말해, 없는 얘기를 지어낸 것은 전혀 없고, 따라서 한만호로부터 '돈을 줬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은 사실이라는 주장이다.

물론 김 씨 주장에도 의심을 가져볼 필요는 있다. 본인의 '모해위증죄'를 모면해 보려는 것일 수도 있고 검찰을 옹호하려는 의도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김 씨는 검찰이 불편해할 만한 이야기도 상당수 꺼냈다.

△자신이 출소 이후 '일주일에 3번꼴'로 검찰을 들락거렸고, △그 이유는 마음이 바뀌면서 정서가 불안정해진 한만호를 달래고 안정시키는 데 (평소 가까웠던) 자신이 활용됐다는 것 △출입기록을 남기지 않기 위해 검찰 직원이 매번 마중을 나와 건물 뒷문으로 출입했다는 것 △수감 시절 친하게 지냈던 재소자들을 마음껏 불러 검사실에서 만났다는 것 등이다. 김 씨는 "검찰도 잘못 많이 했죠"라고 취재진에게 말하기도 했다.

김 씨 "한만호가 한명숙을 직접 만나 준 적은 없다고 했다"

김 씨가 취재진에게 한 말 중에 주목할 부분은 또 있다. 자신은 한만호로부터 '돈을 줬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은 맞지만, '한만호가 한명숙을 직접 만나' 돈을 줬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 없다고 했다. 한만호는 자신에게 '한명숙을 만나서 돈을 준 적은 없었다'고 여러 번 이야기했다고 한다. 김 씨는 취재진에게 이 부분을 거듭 강조했다.

이는 검찰의 공소사실과 배치된다. 검찰의 공소사실은 △한만호가 한명숙을 3번 직접 만나서(차량-집-집) △각각 3억 원씩 총 9억 원을 면 대 면으로 건넸다는 것이었다. 직접 만났느냐 안 만났느냐는 중요한 포인트다. 정치자금법상 유죄가 되려면 피고인이 직접 돈을 받거나, 측근이 돈을 받는 것을 지시 또는 인지하거나 하는 '개입'이 입증돼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입증의 책임은 검찰에 있다.

이런 김 씨의 주장은 한명숙 사건을 나름 '합리적'으로 설명해주기도 한다. 만약 김 씨 말이 실체에 가깝다면, 한명숙 본인이 직접 돈을 건네받은 것은 아니기에 한명숙 개인은 억울할 수 있고 유무죄를 다시 따져봐야 한다는 세간의 주장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게 된다. 그러나 한명숙 '측'이 돈을 받은 것은 사실이 되고, 실제 대법관 전원이 유죄로 판단한 '문제의 3억 원'(한명숙 동생의 전세자금에 쓰인 수표 1억 원 + 한명숙 측근 비서가 한만호에게 돌려준 2억 원)이 설명 가능해진다.

필요한 것은 '교차 검증'과 '당국의 조사'

지금까지 한명숙 사건에 연루된 수감자 3인방의 말을 다각도로 짚어봤다. 한쪽 방향으로 속시원하게 기사를 쓸 수 없는 것은, 이들 수감자의 일방적 주장을 어디까지 인용하고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문제, 그리고 이들의 주장에 대한 정교한 검증과 분석이 필요하다는 점 등과 연관돼 있다. 수사권이나 조사권을 갖지 못한 언론의 한계이기도 하다.

따라서 당국의 조사는 불가피해 보인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도 조사 의지를 밝혔고, 현재 공은 검찰로 넘어가 있다. 수감자 3인방의 엇갈리는 주장 속에서도 하나의 공통된 것이 있으니, 그것은 3인방 모두가 당국 조사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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