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화천 산천어축제 흥행 실패…산천어 대량 폐기

입력 2020.04.01 (15:06) 수정 2020.04.01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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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동안 물고기 농사를 지어 왔는데 이런 적은 처음이네요."

이달 30일, 산천어 축제로 유명한 화천에서 만난 양어장 대표 오세록 씨는 산천어가 있는 대형 수조의 물을 빼면서 한숨을 쉬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도 이미 물을 빼, 말라가는 수조에서는 산천어들이 퍼덕거리며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얼음이 얼지 않는 겨울철 이상 고온과 지난해 9월부터 이어져 오고 있는 아프리카돼지열병, 그리고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코로나 19' 여파까지. 이렇게 전에 없는 외부 악재가 겹치면서 올해 화천 산천어 축제는 흥행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지난해 180만 명이 찾았던 산천어 축제의 올해 방문객은 4분의 1도 안 되는 40만 명 선에 그쳤습니다.

찾는 사람이 없다 보니 잔뜩 사놨던 산천어는 남아돌았고, 화천군은 매년 해왔던 추가 매입도 못 했습니다. 화천군에 산천어를 납품해 오던 오세록 씨의 양어장에서는 남는 산천어를 '폐기'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결국, 일 년 동안 공을 들여 길렀던 산천어 3만여 마리는 판로를 찾지 못해 폐사됐습니다. 폐사를 시키는 장면은 KBS 보도를 통해 소개됐습니다. 여기서는 보도에서 소개하지 못한 내용과 취재 뒷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연관 기사] 축제 실패 여파…산천어 무덤 된 양어장

■ 어민 희망 자라던 양어장이 '산천어 무덤'으로

올해 1월 말까지 강원도 화천군에 있는 오세록 씨의 양어장에서는 산천어 30여 톤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산천어 치어를 한 마리 300원씩에 들여와 2억 원에 가까운 돈을 들여 1년간 키워낸 자식 같은 물고기입니다.

산천어축제에 납품할 산천어 12만 마리, 무게로는 30톤을 키워냈습니다. 축제 준비가 시작되자, 화천군에 계약 물량 20톤을 넘겼습니다. 10톤이 추가 납품되지 못하고 '재고'로 그냥 남게 된 것인데, 사료와 전기요금 등 양어장 운영비가 매일 적게는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까지 지출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었습니다.

산천어 양어장 대표 오세록 씨가 폐사시킨 산천어를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산천어 양어장 대표 오세록 씨가 폐사시킨 산천어를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축제 흥행 실패로 판로가 막혔지만, 오 씨는 희망을 놓지 않았습니다. 화천군이 남은 산천어 처리를 위해 축제가 끝난 뒤에도 수상 낚시터를 운영했고, 전국 단위 대규모 낚시대회 개최도 고려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코로나 19 여파로 이 계획도 물거품이 되면서, 오 씨는 결국 '산지 폐기' 결정을 내리고 맙니다.

가격이 맞지 않아 농산물이 산지 폐기되는 경우는 종종 봐 왔지만, 물고기의 산지 폐기는 매우 이례적입니다. 오 씨가 폐기를 결정한 이후 오 씨가 사는 화천군 간동면 간척리 마을에는 방송이 울려 퍼졌습니다.

"오세록 씨가 자신이 기르던 산천어를 무상으로 주민들에게 드리고 있으니 필요하신 분들은 가져가세요."

오세록 씨의 양어장에서 주민들이 산천어를 공짜로 얻고 있다.오세록 씨의 양어장에서 주민들이 산천어를 공짜로 얻고 있다.

이렇게 마을 주민과 춘천 일부 시민들에게 이틀 동안 전달한 양만 2톤. 1kg당 1만 5,500원이니까, 금액으로 따지면 3천만 원어치가 넘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7톤이 넘는 산천어가 남아 있었고, 주변에서 오 씨의 딱한 상황을 본 주민이 KBS에 제보하게 됩니다.

■ 화천군 "최선 다했지만, 더 매입할 순 없는 상황"

이런 사정은 산천어 축제를 여는 화천군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 씨를 비롯해 지역 내 5개 산천어 양어장 어민들을 도와줄 방법은 없었습니다.

화천군은 축제 준비를 위해 산천어 180톤을 매입했습니다. 전국 생산량의 90% 이상입니다. 하지만 축제가 흥행에 실패하면서, 무려 43톤이나 되는 산천어가 남게 됐습니다.

화천군은 이상 고온으로 얼음이 얼지 않은 산천어 축제장을 루어 낚시터로 활용했지만, 결국 흥행에 실패했다.화천군은 이상 고온으로 얼음이 얼지 않은 산천어 축제장을 루어 낚시터로 활용했지만, 결국 흥행에 실패했다.

화천군은 남은 산천어 43톤 중 19톤을 어묵 원료로 생산하고 있고, 3톤은 강원도 원주에 있는 화장품 업체에 원료로 재매각한 상탭니다. 나머지 19톤은 원예 농가에 쓸 비료 원료로 생산할 수 있도록 추진하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빠듯하다 보니, 어민들을 위해 세금을 들여 산천어를 추가 매입할 수 없는 겁니다.

결국,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상황. 어민들은 이런 상황이 더 답답합니다.

■ "생태계 교란될 것" 하천 방류는 불가능

뉴스를 본 일부 시청자들은 이런 얘기를 전해 옵니다. 아까운 생명을 저렇게 폐사시키지 말고 차라리 지역 하천에 방류하는 게 어떻겠냐고.

하지만 현시점에서는 불가능한 얘깁니다. 생물학적으로 연어와 송어의 사촌격인 산천어는 엄연한 '육식 어종'입니다. 게다가 산천어의 고향은 원래 화천 같은 내륙지역이 아닙니다. 강원대학교 어류연구센터장 최재석 교수는 "토종 산천어는 강원 영동 북부인 고성지역 일부 계곡 상류에서 관찰되고, 북한에 상당수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설명합니다. 이어 "산천어를 북한강 지역에 방류할 경우, 먹이 경쟁에서 우월한 지위에 있는 산천어가 빙어 같은 작은 물고기와 다슬기처럼 하천 바닥과 주변에 사는 저서생물을 다 잡아먹어서 결국 생태계 교란으로 이어질 것이다"라고 덧붙였습니다.

갈 곳을 잃은 산천어는 현시점에선 폐기 처분이 유일한 해답인 상황입니다.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처리 방안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는 게 어민과 화천군의 공통된 의견이지만, 묘안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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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화천 산천어축제 흥행 실패…산천어 대량 폐기
    • 입력 2020-04-01 15:06:15
    • 수정2020-04-01 15:08:47
    취재후·사건후
"9년 동안 물고기 농사를 지어 왔는데 이런 적은 처음이네요."

이달 30일, 산천어 축제로 유명한 화천에서 만난 양어장 대표 오세록 씨는 산천어가 있는 대형 수조의 물을 빼면서 한숨을 쉬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도 이미 물을 빼, 말라가는 수조에서는 산천어들이 퍼덕거리며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얼음이 얼지 않는 겨울철 이상 고온과 지난해 9월부터 이어져 오고 있는 아프리카돼지열병, 그리고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코로나 19' 여파까지. 이렇게 전에 없는 외부 악재가 겹치면서 올해 화천 산천어 축제는 흥행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지난해 180만 명이 찾았던 산천어 축제의 올해 방문객은 4분의 1도 안 되는 40만 명 선에 그쳤습니다.

찾는 사람이 없다 보니 잔뜩 사놨던 산천어는 남아돌았고, 화천군은 매년 해왔던 추가 매입도 못 했습니다. 화천군에 산천어를 납품해 오던 오세록 씨의 양어장에서는 남는 산천어를 '폐기'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결국, 일 년 동안 공을 들여 길렀던 산천어 3만여 마리는 판로를 찾지 못해 폐사됐습니다. 폐사를 시키는 장면은 KBS 보도를 통해 소개됐습니다. 여기서는 보도에서 소개하지 못한 내용과 취재 뒷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연관 기사] 축제 실패 여파…산천어 무덤 된 양어장

■ 어민 희망 자라던 양어장이 '산천어 무덤'으로

올해 1월 말까지 강원도 화천군에 있는 오세록 씨의 양어장에서는 산천어 30여 톤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산천어 치어를 한 마리 300원씩에 들여와 2억 원에 가까운 돈을 들여 1년간 키워낸 자식 같은 물고기입니다.

산천어축제에 납품할 산천어 12만 마리, 무게로는 30톤을 키워냈습니다. 축제 준비가 시작되자, 화천군에 계약 물량 20톤을 넘겼습니다. 10톤이 추가 납품되지 못하고 '재고'로 그냥 남게 된 것인데, 사료와 전기요금 등 양어장 운영비가 매일 적게는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까지 지출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었습니다.

산천어 양어장 대표 오세록 씨가 폐사시킨 산천어를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축제 흥행 실패로 판로가 막혔지만, 오 씨는 희망을 놓지 않았습니다. 화천군이 남은 산천어 처리를 위해 축제가 끝난 뒤에도 수상 낚시터를 운영했고, 전국 단위 대규모 낚시대회 개최도 고려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코로나 19 여파로 이 계획도 물거품이 되면서, 오 씨는 결국 '산지 폐기' 결정을 내리고 맙니다.

가격이 맞지 않아 농산물이 산지 폐기되는 경우는 종종 봐 왔지만, 물고기의 산지 폐기는 매우 이례적입니다. 오 씨가 폐기를 결정한 이후 오 씨가 사는 화천군 간동면 간척리 마을에는 방송이 울려 퍼졌습니다.

"오세록 씨가 자신이 기르던 산천어를 무상으로 주민들에게 드리고 있으니 필요하신 분들은 가져가세요."

오세록 씨의 양어장에서 주민들이 산천어를 공짜로 얻고 있다.
이렇게 마을 주민과 춘천 일부 시민들에게 이틀 동안 전달한 양만 2톤. 1kg당 1만 5,500원이니까, 금액으로 따지면 3천만 원어치가 넘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7톤이 넘는 산천어가 남아 있었고, 주변에서 오 씨의 딱한 상황을 본 주민이 KBS에 제보하게 됩니다.

■ 화천군 "최선 다했지만, 더 매입할 순 없는 상황"

이런 사정은 산천어 축제를 여는 화천군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 씨를 비롯해 지역 내 5개 산천어 양어장 어민들을 도와줄 방법은 없었습니다.

화천군은 축제 준비를 위해 산천어 180톤을 매입했습니다. 전국 생산량의 90% 이상입니다. 하지만 축제가 흥행에 실패하면서, 무려 43톤이나 되는 산천어가 남게 됐습니다.

화천군은 이상 고온으로 얼음이 얼지 않은 산천어 축제장을 루어 낚시터로 활용했지만, 결국 흥행에 실패했다.
화천군은 남은 산천어 43톤 중 19톤을 어묵 원료로 생산하고 있고, 3톤은 강원도 원주에 있는 화장품 업체에 원료로 재매각한 상탭니다. 나머지 19톤은 원예 농가에 쓸 비료 원료로 생산할 수 있도록 추진하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빠듯하다 보니, 어민들을 위해 세금을 들여 산천어를 추가 매입할 수 없는 겁니다.

결국,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상황. 어민들은 이런 상황이 더 답답합니다.

■ "생태계 교란될 것" 하천 방류는 불가능

뉴스를 본 일부 시청자들은 이런 얘기를 전해 옵니다. 아까운 생명을 저렇게 폐사시키지 말고 차라리 지역 하천에 방류하는 게 어떻겠냐고.

하지만 현시점에서는 불가능한 얘깁니다. 생물학적으로 연어와 송어의 사촌격인 산천어는 엄연한 '육식 어종'입니다. 게다가 산천어의 고향은 원래 화천 같은 내륙지역이 아닙니다. 강원대학교 어류연구센터장 최재석 교수는 "토종 산천어는 강원 영동 북부인 고성지역 일부 계곡 상류에서 관찰되고, 북한에 상당수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설명합니다. 이어 "산천어를 북한강 지역에 방류할 경우, 먹이 경쟁에서 우월한 지위에 있는 산천어가 빙어 같은 작은 물고기와 다슬기처럼 하천 바닥과 주변에 사는 저서생물을 다 잡아먹어서 결국 생태계 교란으로 이어질 것이다"라고 덧붙였습니다.

갈 곳을 잃은 산천어는 현시점에선 폐기 처분이 유일한 해답인 상황입니다.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처리 방안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는 게 어민과 화천군의 공통된 의견이지만, 묘안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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