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갓 태어난 새끼뱀들은 왜 냉동고에서 죽어갔을까

입력 2020.01.17 (12:01) 수정 2020.01.17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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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서울대공원 동물원에 경사가 났습니다. 1984년 '그물무늬왕뱀'을 처음 데려온 뒤 35년 만에 처음으로 부화에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그로부터 3개월 전 뱀 한 쌍이 낳은 알은 모두 20개. 애지중지 품은 새끼들이 하나, 둘 껍질을 깨고 나왔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뱀으로 더 유명한 그물무늬왕뱀은 가죽을 노리는 밀렵꾼들 탓에 개체 수가 줄어,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의 국제교역에 관한 협약(CITES)'에 따라 국제멸종위기종 2급으로 지정돼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멸종위기종 희귀동물이 동물원 안에서 새끼를 낳았으니 얼마나 큰 경사일까요.

태어나자마자 냉동고로? 얼어 죽은 새끼뱀들

하지만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서울대공원 동물원에는 이 뱀들을 키울 만한 공간이 없었습니다. 덩치가 크지도 않은 새끼 뱀인데 한 곳에서 키우면 안 되나 싶을 수 있지만, 그렇게 하면 법 위반입니다. 야생생물법상 뱀 개체 수가 한 마리씩 늘어날 때마다 사육시설 넓이를 35%씩 늘리게 돼 있기 때문입니다. 당장 뱀 20마리를 키울 사육 공간을 마련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서울대공원 동물원장 주재로 회의가 소집됐고, 회의 결과 태어난 새끼 뱀 중 가장 건강한 2마리만 살리고 나머지는 모두 죽이기로 했습니다. 키울 곳이 없는데 살려둘 수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렇게 선택받지 못한 새끼 뱀 15마리와 알 3개는 냉동고에 넣어져 얼어 죽었습니다.

담당 사육사가 찍은 부화 당시 모습. 커다란 알들 사이로 두 마리의 새끼 뱀이 부화를 마쳤고, 뒤쪽으로는 이제 막 껍질이 깨지기 시작한 알도 보인다.담당 사육사가 찍은 부화 당시 모습. 커다란 알들 사이로 두 마리의 새끼 뱀이 부화를 마쳤고, 뒤쪽으로는 이제 막 껍질이 깨지기 시작한 알도 보인다.

'설마 태어나겠어'… 사전 대책 마련 못 한 서울대공원 동물원

서울대공원 동물원 측은 뱀이 알을 낳았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지만, 실제 부화가 될 줄은 몰랐다고 말합니다. 지난 2017년과 2018년 뱀이 알을 낳은 적은 있지만, 무정란 상태여서 부화까지 이어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알을 품고 있던 어미 뱀은 공격성이 더욱 강해진 상태여서 알이 담겨있던 항아리에 접근하기도 힘들었다고 합니다. 이번에도 비슷한 상황이겠거니 했던 사육사들은 실제 새끼들이 태어나자 크게 놀랐습니다.

동물원에서 만난 한 사육사는 "사육관 내부의 온도와 습도가 부화에 적합한 조건이 아니었기 때문에 실제 부화까지 성공할 줄은 몰랐다"면서 "알을 낳기 직전에 사육관 내부 환경을 바꾸면서 항아리를 하나 넣어줬는데, 뱀이 이 항아리 안에 알을 낳고 품는 바람에 기존과는 온도와 습도가 달라져 부화에 성공했던 것 같다"고 추정했습니다.

'우리도 할 말 있다'는 동물원… "불가피한 결정"

그는 인터뷰 내내 "자식처럼 키우는 아이들인데 우리라고 그러고 싶었겠냐"며 안타까워했습니다. "환경부에 동물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으니 현실에 맞지 않는 법을 만들었다"면서 "뱀 20마리를 다 키우려면 거의 건물 한 채를 지어야 하는 정도"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과도한 법 규정 때문에 애꿎은 동물들이 희생당하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어경연 서울대공원 동물원장도 비슷한 입장을 밝혔습니다. "아무 대책 없이 많은 수의 동물을 수용한다고 해서 동물 복지가 좋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타 동물원 등으로 보내보려고 했지만, 수용 가능한 곳이 없었다"면서 "새끼 뱀의 모형을 떠서 나중에 교육용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가치가 있으므로 심사숙고 끝에 폐사 결정을 내렸다"고 했습니다. 냉동 방식을 쓴 이유에 대해서는 "부화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도 했고, 변온동물이니 서서히 온도를 내리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인터뷰를 하는 사육사 건너편으로 뱀 사육관이 보인다. 암컷 뱀은 사육관 가운데 놓인 항아리 안에 알을 낳았다.인터뷰를 하는 사육사 건너편으로 뱀 사육관이 보인다. 암컷 뱀은 사육관 가운데 놓인 항아리 안에 알을 낳았다.

"공공 동물원의 책임 잊었나" 동물보호단체 등 비판

하지만 동물보호단체와 시민들의 비판은 거셉니다. 서울시 산하로 세금이 투입되는 공공동물원인 서울대공원이 동물 보호의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는 주장입니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의 이형주 대표는 "종 보전 계획이나 번식 계획은 동물원 관리 상태나 시설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마련돼야 하는 것"이라면서 "태어날 동물들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 동물원에서 복지를 보장할 수 있을 것인지, 그렇지 못하다면 지금 복지 수준과 유사하거나 혹은 더 나은 환경으로 보낼 수 있는 방안이 있는지를 미리 고민했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대표는 "무엇보다 증식 자체가 보전이라는 개념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동물원에 있는 개체 수가 늘어난다고 해서 그 동물의 멸종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동물 복지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은 환경에서 안일하게 번식을 시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도 강조했습니다. 서울대공원 동물원 SNS 등에는 동물원 측의 결정이 비윤리적이었다고 비판하는 댓글이 이어졌습니다.

서울대공원 동물원은 지난해 9월, 아시아 동물원 최초로 미국동물원수족관협회(AZA) 인증을 획득했다. 당시 동물원 측은 “대한민국 동물원이 동물복지 수준을 세계에서 인정받고 세계 속의 선진 동물원이 된 매우 뜻깊은 일”이라고 홍보했다.서울대공원 동물원은 지난해 9월, 아시아 동물원 최초로 미국동물원수족관협회(AZA) 인증을 획득했다. 당시 동물원 측은 “대한민국 동물원이 동물복지 수준을 세계에서 인정받고 세계 속의 선진 동물원이 된 매우 뜻깊은 일”이라고 홍보했다.
결국 환경당국에 고발당한 서울대공원

새끼 뱀 폐사를 두고 논란이 커지자 지난 8일 환경부 산하 한강유역환경청은 동물원 측을 야생생물법 위반 혐의로 과천경찰서에 고발했습니다. 야생생물법은 정당한 사유 없이 야생동물을 죽이거나 학대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한강환경유역청 관계자는 "뱀 폐사에 대한 서울대공원의 해명이 법에서 말하는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고발장을 접수했다"면서 "뱀의 출산과 폐사에 대한 신고 의무도 이행하지 않아 관련 행정처분과 과태료 부과 조치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환경부 측은 사육 공간 의무화에 관한 규정이 선진국과 비교하면 절대 과도하지 않은 수준이라는 입장이지만 어경원 동물원장 측은 '환경부에 관련 제도 개선 요청을 하겠다'고 밝혀 뱀 폐사를 둘러싼 논쟁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어 원장 측은 그러면서 "다시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내부적으로 개선할 부분들은 개선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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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1-17 12:01:11
    • 수정2020-01-17 12:01:18
    취재후·사건후
지난해 9월, 서울대공원 동물원에 경사가 났습니다. 1984년 '그물무늬왕뱀'을 처음 데려온 뒤 35년 만에 처음으로 부화에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그로부터 3개월 전 뱀 한 쌍이 낳은 알은 모두 20개. 애지중지 품은 새끼들이 하나, 둘 껍질을 깨고 나왔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뱀으로 더 유명한 그물무늬왕뱀은 가죽을 노리는 밀렵꾼들 탓에 개체 수가 줄어,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의 국제교역에 관한 협약(CITES)'에 따라 국제멸종위기종 2급으로 지정돼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멸종위기종 희귀동물이 동물원 안에서 새끼를 낳았으니 얼마나 큰 경사일까요.

태어나자마자 냉동고로? 얼어 죽은 새끼뱀들

하지만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서울대공원 동물원에는 이 뱀들을 키울 만한 공간이 없었습니다. 덩치가 크지도 않은 새끼 뱀인데 한 곳에서 키우면 안 되나 싶을 수 있지만, 그렇게 하면 법 위반입니다. 야생생물법상 뱀 개체 수가 한 마리씩 늘어날 때마다 사육시설 넓이를 35%씩 늘리게 돼 있기 때문입니다. 당장 뱀 20마리를 키울 사육 공간을 마련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서울대공원 동물원장 주재로 회의가 소집됐고, 회의 결과 태어난 새끼 뱀 중 가장 건강한 2마리만 살리고 나머지는 모두 죽이기로 했습니다. 키울 곳이 없는데 살려둘 수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렇게 선택받지 못한 새끼 뱀 15마리와 알 3개는 냉동고에 넣어져 얼어 죽었습니다.

담당 사육사가 찍은 부화 당시 모습. 커다란 알들 사이로 두 마리의 새끼 뱀이 부화를 마쳤고, 뒤쪽으로는 이제 막 껍질이 깨지기 시작한 알도 보인다.
'설마 태어나겠어'… 사전 대책 마련 못 한 서울대공원 동물원

서울대공원 동물원 측은 뱀이 알을 낳았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지만, 실제 부화가 될 줄은 몰랐다고 말합니다. 지난 2017년과 2018년 뱀이 알을 낳은 적은 있지만, 무정란 상태여서 부화까지 이어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알을 품고 있던 어미 뱀은 공격성이 더욱 강해진 상태여서 알이 담겨있던 항아리에 접근하기도 힘들었다고 합니다. 이번에도 비슷한 상황이겠거니 했던 사육사들은 실제 새끼들이 태어나자 크게 놀랐습니다.

동물원에서 만난 한 사육사는 "사육관 내부의 온도와 습도가 부화에 적합한 조건이 아니었기 때문에 실제 부화까지 성공할 줄은 몰랐다"면서 "알을 낳기 직전에 사육관 내부 환경을 바꾸면서 항아리를 하나 넣어줬는데, 뱀이 이 항아리 안에 알을 낳고 품는 바람에 기존과는 온도와 습도가 달라져 부화에 성공했던 것 같다"고 추정했습니다.

'우리도 할 말 있다'는 동물원… "불가피한 결정"

그는 인터뷰 내내 "자식처럼 키우는 아이들인데 우리라고 그러고 싶었겠냐"며 안타까워했습니다. "환경부에 동물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으니 현실에 맞지 않는 법을 만들었다"면서 "뱀 20마리를 다 키우려면 거의 건물 한 채를 지어야 하는 정도"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과도한 법 규정 때문에 애꿎은 동물들이 희생당하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어경연 서울대공원 동물원장도 비슷한 입장을 밝혔습니다. "아무 대책 없이 많은 수의 동물을 수용한다고 해서 동물 복지가 좋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타 동물원 등으로 보내보려고 했지만, 수용 가능한 곳이 없었다"면서 "새끼 뱀의 모형을 떠서 나중에 교육용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가치가 있으므로 심사숙고 끝에 폐사 결정을 내렸다"고 했습니다. 냉동 방식을 쓴 이유에 대해서는 "부화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도 했고, 변온동물이니 서서히 온도를 내리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인터뷰를 하는 사육사 건너편으로 뱀 사육관이 보인다. 암컷 뱀은 사육관 가운데 놓인 항아리 안에 알을 낳았다.
"공공 동물원의 책임 잊었나" 동물보호단체 등 비판

하지만 동물보호단체와 시민들의 비판은 거셉니다. 서울시 산하로 세금이 투입되는 공공동물원인 서울대공원이 동물 보호의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는 주장입니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의 이형주 대표는 "종 보전 계획이나 번식 계획은 동물원 관리 상태나 시설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마련돼야 하는 것"이라면서 "태어날 동물들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 동물원에서 복지를 보장할 수 있을 것인지, 그렇지 못하다면 지금 복지 수준과 유사하거나 혹은 더 나은 환경으로 보낼 수 있는 방안이 있는지를 미리 고민했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대표는 "무엇보다 증식 자체가 보전이라는 개념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동물원에 있는 개체 수가 늘어난다고 해서 그 동물의 멸종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동물 복지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은 환경에서 안일하게 번식을 시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도 강조했습니다. 서울대공원 동물원 SNS 등에는 동물원 측의 결정이 비윤리적이었다고 비판하는 댓글이 이어졌습니다.

서울대공원 동물원은 지난해 9월, 아시아 동물원 최초로 미국동물원수족관협회(AZA) 인증을 획득했다. 당시 동물원 측은 “대한민국 동물원이 동물복지 수준을 세계에서 인정받고 세계 속의 선진 동물원이 된 매우 뜻깊은 일”이라고 홍보했다.결국 환경당국에 고발당한 서울대공원

새끼 뱀 폐사를 두고 논란이 커지자 지난 8일 환경부 산하 한강유역환경청은 동물원 측을 야생생물법 위반 혐의로 과천경찰서에 고발했습니다. 야생생물법은 정당한 사유 없이 야생동물을 죽이거나 학대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한강환경유역청 관계자는 "뱀 폐사에 대한 서울대공원의 해명이 법에서 말하는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고발장을 접수했다"면서 "뱀의 출산과 폐사에 대한 신고 의무도 이행하지 않아 관련 행정처분과 과태료 부과 조치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환경부 측은 사육 공간 의무화에 관한 규정이 선진국과 비교하면 절대 과도하지 않은 수준이라는 입장이지만 어경원 동물원장 측은 '환경부에 관련 제도 개선 요청을 하겠다'고 밝혀 뱀 폐사를 둘러싼 논쟁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어 원장 측은 그러면서 "다시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내부적으로 개선할 부분들은 개선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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