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뺑소니범 찾을 수 있게 도와주세요”

입력 2019.10.16 (16:50) 수정 2019.10.16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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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주한 뺑소니범을 잡을 수 있게 도와달라."

지난달 16일 오후 3시 30분. 8살 장 모 군이 경남 창원시 진해구의 한 도로에서 뺑소니 사고를 당한 시간입니다.

뺑소니범은 사고 직후 차에서 내려 아이의 상태를 살피는 듯하더니 다시 차를 타고 도망갔습니다. 이 사고로 머리를 심하게 다친 장 군은 곧장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았지만 중태에 빠졌습니다.

사고 당일 저녁, 장 군 부모님의 지인이 "뺑소니범이 불법체류자로 추정되는데 도망을 갔다. 뺑소니범을 잡을 수 있게 도와달라"라며 KBS에 제보해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사고 다음 날, 장 군의 아버지도 청와대 국민청원에 글을 올렸고, 6만 6천여 명이 동의할 정도로 국민적 공분을 일으켰습니다.


이미 해외로 달아난 불법체류자…뒤늦게 출국 사실을 안 경찰

하지만 사고 다음 날 아침, 뺑소니범은 인천공항을 통해 이미 우즈베키스탄으로 달아났습니다. 뒤늦게 뺑소니범이 카자흐스탄 국적 불법체류자 20살 A씨이며, 무면허에 대포차를 몰다가 사고를 낸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경찰은 A씨가 출국한 지 28시간이 지나서야 A씨의 신원을 특정했습니다.

장 군의 아버지는 사고 직후부터 줄곧 불법체류자가 잠적해 잡을 수 없을까봐 불안해했었는데 우려하던 일이 벌어진 겁니다.


불법체류자 A씨, '자진 출국 제도' 악용해 해외 도피

뺑소니 피의자인 A씨가 인천공항을 통해 우즈베키스탄으로 출국했다는 소식을 듣고, 의문이 들었습니다. 불법체류자인데 어떻게 공항을 통해 해외로 도망갈 수 있었을까.

취재를 해보니 법무부의 '자진 출국 제도'가 문제였습니다. 불법체류자가 자진해서 출국하겠다고 신고하면 아무런 제재없이 해외로 나갈 수 있었습니다.

자진 출국 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이전에도 불법체류자가 이 제도를 악용해 해외로 도피한 사례가 있었는지 찾아봤습니다.

지난 2015년 경기도에서 잇따라 발생한 살인사건 피의자인 불법체류자 3명도 신원이 특정되기 전에 자진 출국으로 각각 우즈베키스탄과 중국으로 달아났지만, 아직 잡히지 않았습니다.

해당 국가들이 자국민 보호를 이유로 범죄인 인도에 적극적이지 않기 때문인데, 이런 이유로 사실상 범죄를 저지른 불법체류자들이 해외로 달아나면 잡기 힘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처럼 자진 출국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를 막기 위해 제도를 정비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법무부, '자진 출국 제도' 폐지…21일부터 '사전신고제' 도입

경찰이 2016년과 올해, '불법체류자 사전신고제' 도입을 법무부에 요청한 것을 취재를 통해 확인했습니다. 그동안 법무부는 인권 침해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왔습니다.

하지만 사전신고제 도입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KBS 보도 이후 법무부는 오는 21일부터 자진 출국 제도를 폐지하고, 사전신고제를 도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앞으로 불법체류자는 출국 최소 3일 전에 가까운 출입국·외국인관서를 미리 찾아 자진출국신고서와 여권, 항공권을 제출하고 출국 관련 심사를 거쳐야 합니다. 또, 사전신고 절차를 마치더라도 출국 당일 공항에서 최종적으로 범죄 수배 여부 등을 한 번 더 확인할 계획입니다.


불법체류자 A씨, 도주 27일 만에 자수해 입국

A씨는 카자흐스탄에 숨어있다가 도주한 지 27일 만에 자수했습니다.

자신의 도피를 도와준 불법체류자인 친누나가 출입국사무소에 보호조치 중인데다 카자흐스탄 언론에서도 이 사건에 대해 집중보도하면서 압박감을 느낀 것으로 보입니다.

A 씨는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면서 기자들에게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장 군은 의식을 되찾아 일반병실에서 회복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더는 불법체류자가 범죄를 저지르고 해외로 도망가지 못하도록 사전신고제가 도입돼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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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뺑소니범 찾을 수 있게 도와주세요”
    • 입력 2019-10-16 16:50:57
    • 수정2019-10-16 16:51:02
    취재후·사건후
"도주한 뺑소니범을 잡을 수 있게 도와달라."

지난달 16일 오후 3시 30분. 8살 장 모 군이 경남 창원시 진해구의 한 도로에서 뺑소니 사고를 당한 시간입니다.

뺑소니범은 사고 직후 차에서 내려 아이의 상태를 살피는 듯하더니 다시 차를 타고 도망갔습니다. 이 사고로 머리를 심하게 다친 장 군은 곧장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았지만 중태에 빠졌습니다.

사고 당일 저녁, 장 군 부모님의 지인이 "뺑소니범이 불법체류자로 추정되는데 도망을 갔다. 뺑소니범을 잡을 수 있게 도와달라"라며 KBS에 제보해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사고 다음 날, 장 군의 아버지도 청와대 국민청원에 글을 올렸고, 6만 6천여 명이 동의할 정도로 국민적 공분을 일으켰습니다.


이미 해외로 달아난 불법체류자…뒤늦게 출국 사실을 안 경찰

하지만 사고 다음 날 아침, 뺑소니범은 인천공항을 통해 이미 우즈베키스탄으로 달아났습니다. 뒤늦게 뺑소니범이 카자흐스탄 국적 불법체류자 20살 A씨이며, 무면허에 대포차를 몰다가 사고를 낸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경찰은 A씨가 출국한 지 28시간이 지나서야 A씨의 신원을 특정했습니다.

장 군의 아버지는 사고 직후부터 줄곧 불법체류자가 잠적해 잡을 수 없을까봐 불안해했었는데 우려하던 일이 벌어진 겁니다.


불법체류자 A씨, '자진 출국 제도' 악용해 해외 도피

뺑소니 피의자인 A씨가 인천공항을 통해 우즈베키스탄으로 출국했다는 소식을 듣고, 의문이 들었습니다. 불법체류자인데 어떻게 공항을 통해 해외로 도망갈 수 있었을까.

취재를 해보니 법무부의 '자진 출국 제도'가 문제였습니다. 불법체류자가 자진해서 출국하겠다고 신고하면 아무런 제재없이 해외로 나갈 수 있었습니다.

자진 출국 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이전에도 불법체류자가 이 제도를 악용해 해외로 도피한 사례가 있었는지 찾아봤습니다.

지난 2015년 경기도에서 잇따라 발생한 살인사건 피의자인 불법체류자 3명도 신원이 특정되기 전에 자진 출국으로 각각 우즈베키스탄과 중국으로 달아났지만, 아직 잡히지 않았습니다.

해당 국가들이 자국민 보호를 이유로 범죄인 인도에 적극적이지 않기 때문인데, 이런 이유로 사실상 범죄를 저지른 불법체류자들이 해외로 달아나면 잡기 힘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처럼 자진 출국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를 막기 위해 제도를 정비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법무부, '자진 출국 제도' 폐지…21일부터 '사전신고제' 도입

경찰이 2016년과 올해, '불법체류자 사전신고제' 도입을 법무부에 요청한 것을 취재를 통해 확인했습니다. 그동안 법무부는 인권 침해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왔습니다.

하지만 사전신고제 도입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KBS 보도 이후 법무부는 오는 21일부터 자진 출국 제도를 폐지하고, 사전신고제를 도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앞으로 불법체류자는 출국 최소 3일 전에 가까운 출입국·외국인관서를 미리 찾아 자진출국신고서와 여권, 항공권을 제출하고 출국 관련 심사를 거쳐야 합니다. 또, 사전신고 절차를 마치더라도 출국 당일 공항에서 최종적으로 범죄 수배 여부 등을 한 번 더 확인할 계획입니다.


불법체류자 A씨, 도주 27일 만에 자수해 입국

A씨는 카자흐스탄에 숨어있다가 도주한 지 27일 만에 자수했습니다.

자신의 도피를 도와준 불법체류자인 친누나가 출입국사무소에 보호조치 중인데다 카자흐스탄 언론에서도 이 사건에 대해 집중보도하면서 압박감을 느낀 것으로 보입니다.

A 씨는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면서 기자들에게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장 군은 의식을 되찾아 일반병실에서 회복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더는 불법체류자가 범죄를 저지르고 해외로 도망가지 못하도록 사전신고제가 도입돼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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