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하우스 숙소 금지에 농가 발 동동…양성화·유예기간 절실

입력 2021.03.07 (21:21) 수정 2021.03.07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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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지난해 12월, 경기도 포천의 한 농장 비닐하우스 속 가건물 숙소에서 한 외국인 노동자가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지병 때문에 숨진 것으로 확인되기는 했지만, 외국인 노동자들이 머무는 숙소의 열악한 실태가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농어촌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사실상 모두가 고용주가 제공한 숙소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앞서 본 사례처럼 농장에 딸린 비닐하우스 속 가건물이거나, 컨테이너를 개조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열악할 수밖에 없겠죠.

그래서 정부가 올해부터 개선책을 내놨습니다.

가건물 등을 숙소로 제공하면 고용허가를 아예 내주지 않겠다는 겁니다.

제대로 된 숙소를 제공하라는 취지인데, 어찌된 일인지 현장에서는 "농촌의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아예 일을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이런 지적이 나온다고 합니다.

어떤 사정인지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들어봤습니다.

변진석 기잡니다.

[리포트]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해 열무 농사를 짓고 있는 이윤성 씨는 다가온 농번기가 걱정입니다.

15년 전 수천만 원을 들여 지은 비닐하우스 속 가건물 숙소.

냉난방 시설과 안전시설, 수세식 화장실까지 갖췄는데 갑자기 무용지물이 됐습니다.

불법 가설 건축물로 분류돼 외국인 노동자가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윤성/농민 : "작년까지는 그렇게 (숙소로) 다 인정해 놓고 갑자기 채용불가, 이거는 너무나 현실적으로 안 맞는 말씀이다..."]

그렇다고 정부 기준에 맞춰 따로 숙소 건물을 짓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이윤성/농민 : "저는 전부 '절대농지'만 가지고 있기 때문에 (농지법상) 어떻게 건축행위를 할 수가 없어요. 이거 어떻게 합니까?"]

특히 땅을 빌려 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땅 주인이 숙소를 짓게 허락해 줄지도 미지수입니다.

결국 남은 방법은 기존 주택을 숙소로 얻어야 하는데 농촌에서 집 찾기도 쉽지 않습니다.

시내에 집을 얻는 건 늘어나는 생활비나 출퇴근 문제로 외국인 노동자들마저 난감해 합니다.

[수르아르/외국인 노동자 : "200만 원 벌면 50만 원이나 60만 원 돈 여기 (외부 숙소에) 내야 하면 네팔에 돈 많이 보낼 수 없잖아요."]

급기야 포천 일대 외국인 노동자 200여 명이 이번 조치를 철회해 달라고 정부에 탄원서까지 제출한 상황.

정부는 9월 1일까지 유예 기간을 주기로 했지만, 근본적으로 조건을 맞추긴 어렵다는 게 농민들의 입장입니다.

[송태선/농민 : "외국인 근로자들은 여기서 일할 수 없을 거예요. 일단 주거환경의 문제가 생겼기 때문에 농장주 입장에서는 나가야 되는 상황이 되어 버리는 거니까."]

이 때문에 농지에 지은 기존 시설을 양성화하고, 주기적인 안전점검을 통해 열악한 시설을 골라 없애는 방식으로 관리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외국인 노동자 없이는 농사를 지을 수 없는 게 농촌의 현실입니다.

또 이들의 인권, 특히 주거권은 당연히 보장돼야 합니다.

결국 이 두 가지 모두를 해결해야 하는 숙제를 우리 사회가 안고 있습니다.

KBS 뉴스 변진석입니다.

촬영기자:김태현/영상편집:이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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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닐하우스 숙소 금지에 농가 발 동동…양성화·유예기간 절실
    • 입력 2021-03-07 21:21:06
    • 수정2021-03-07 21:47:50
    뉴스 9
[앵커]

지난해 12월, 경기도 포천의 한 농장 비닐하우스 속 가건물 숙소에서 한 외국인 노동자가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지병 때문에 숨진 것으로 확인되기는 했지만, 외국인 노동자들이 머무는 숙소의 열악한 실태가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농어촌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사실상 모두가 고용주가 제공한 숙소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앞서 본 사례처럼 농장에 딸린 비닐하우스 속 가건물이거나, 컨테이너를 개조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열악할 수밖에 없겠죠.

그래서 정부가 올해부터 개선책을 내놨습니다.

가건물 등을 숙소로 제공하면 고용허가를 아예 내주지 않겠다는 겁니다.

제대로 된 숙소를 제공하라는 취지인데, 어찌된 일인지 현장에서는 "농촌의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아예 일을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이런 지적이 나온다고 합니다.

어떤 사정인지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들어봤습니다.

변진석 기잡니다.

[리포트]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해 열무 농사를 짓고 있는 이윤성 씨는 다가온 농번기가 걱정입니다.

15년 전 수천만 원을 들여 지은 비닐하우스 속 가건물 숙소.

냉난방 시설과 안전시설, 수세식 화장실까지 갖췄는데 갑자기 무용지물이 됐습니다.

불법 가설 건축물로 분류돼 외국인 노동자가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윤성/농민 : "작년까지는 그렇게 (숙소로) 다 인정해 놓고 갑자기 채용불가, 이거는 너무나 현실적으로 안 맞는 말씀이다..."]

그렇다고 정부 기준에 맞춰 따로 숙소 건물을 짓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이윤성/농민 : "저는 전부 '절대농지'만 가지고 있기 때문에 (농지법상) 어떻게 건축행위를 할 수가 없어요. 이거 어떻게 합니까?"]

특히 땅을 빌려 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땅 주인이 숙소를 짓게 허락해 줄지도 미지수입니다.

결국 남은 방법은 기존 주택을 숙소로 얻어야 하는데 농촌에서 집 찾기도 쉽지 않습니다.

시내에 집을 얻는 건 늘어나는 생활비나 출퇴근 문제로 외국인 노동자들마저 난감해 합니다.

[수르아르/외국인 노동자 : "200만 원 벌면 50만 원이나 60만 원 돈 여기 (외부 숙소에) 내야 하면 네팔에 돈 많이 보낼 수 없잖아요."]

급기야 포천 일대 외국인 노동자 200여 명이 이번 조치를 철회해 달라고 정부에 탄원서까지 제출한 상황.

정부는 9월 1일까지 유예 기간을 주기로 했지만, 근본적으로 조건을 맞추긴 어렵다는 게 농민들의 입장입니다.

[송태선/농민 : "외국인 근로자들은 여기서 일할 수 없을 거예요. 일단 주거환경의 문제가 생겼기 때문에 농장주 입장에서는 나가야 되는 상황이 되어 버리는 거니까."]

이 때문에 농지에 지은 기존 시설을 양성화하고, 주기적인 안전점검을 통해 열악한 시설을 골라 없애는 방식으로 관리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외국인 노동자 없이는 농사를 지을 수 없는 게 농촌의 현실입니다.

또 이들의 인권, 특히 주거권은 당연히 보장돼야 합니다.

결국 이 두 가지 모두를 해결해야 하는 숙제를 우리 사회가 안고 있습니다.

KBS 뉴스 변진석입니다.

촬영기자:김태현/영상편집:이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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