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IN] ‘성폭행 후 임신’ 몰랐는데 징역 30년…재심 결과는?

입력 2019.08.21 (10:47) 수정 2019.08.21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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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파도 위의 여성들'(Women on Wave)이란 글자가 적힌 이 배는 '낙태선'이라 불립니다.

네덜란드 사회단체가 운영하는 이 배는 낙태 불법국가들을 돌아다니며, 출산을 원치 않는 여성들을 돕고 있는데요.

'낙태 권리'에 대한 국제적 논란이 뜨거운 가운데, 낙태를 엄격히 금지하는 엘살바도르 한 여성의 사건이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지구촌 인에서 살펴보시죠.

[리포트]

한 손을 높이 들어 올린 여성이 엘살바도르 법원을 걸어 나옵니다.

밖에서 기다리던 지지자들은 기쁨의 환호를 보내는데요.

[에벨린 에르난데스 : "저는 결백함에도 고소를 당했기 때문에 감옥에 있는 시간이 늘 힘들었습니다. 이제 저도 감옥에 있는 젊은 여성들을 빨리 석방하기를 요구합니다."]

뱃속의 아기를 사산한 이 여성은 2017년 살인혐의로 징역 30년 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하지만, 지난 19일, 재심 공판에서 원심 판결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받았는데요.

그녀는 지난 2015년 성폭행을 당한 뒤 이듬해 배가 심하게 아파 화장실에 갔다가 아기를 사산했습니다.

과다 출혈로 의식을 잃은 뒤 응급실로 실려갔는데요.

그로부터 사흘 뒤, 태아를 살해한 혐의로 교도소로 옮겨졌습니다.

[에벨린 에르난데스 : "저는 정말 제가 임신한 것을 몰랐어요. 알았다면 (아기가 태어나길) 기쁘고 자랑스럽게 기다렸을 거예요. (어떻게 임신을 한 거죠?)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아기는 태변 흡인에 따른 폐렴으로 숨진 것으로 밝혀졌지만, 법원은 이러한 부검 결과에도 불구하고 살인 혐의를 적용해 징역 30년을 선고했습니다.

그러나 지난 2월 대법원이 고의로 태아를 해치려 했다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원심을 파기했고, 다시 열린 재판에서 33개월 만에 억울함을 풀게 된 겁니다.

[에벨린 에르난데스 : "저를 지지하기 위해 여기까지 와주신 모든 지지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무죄 판결을 기다려 온 지지자들은 거리에서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는데요.

이번 사건으로 엘살바도르의 엄격한 낙태 금지법이 다시금 세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보수 카톨릭 국가인 엘살바도르는 어떤 경우에도 낙태를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에르난데스처럼 성폭행 피해자이거나 임신 사실을 몰랐던 경우는 물론이고 근친상간으로 인한 임신, 산모의 생명이 위험에 처한 경우도 예외는 없습니다.

지난 2016년 태아에게 선천적 소두증을 유발하는 지카바이러스가 유행할 당시, 세계보건기구가 엘살바도르에 낙태 허용 범위를 확대하라고 권고했지만 당국은 이마저도 거절했습니다.

[에두아르도 안토니오 에스피노자/엘살바도르 보건부 차관/2016년 : "나라의 임신 중절에 관한 법은 매우 명확합니다. 이것은 법이며, 정부의 속한 국민으로서 우리는 이를 존중할 의무가 있으며 법을 따라야 합니다."]

엘살바도르에서는 2000년부터 2014년 사이, 147명의 여성이 유산이나 사산으로 인한 살인 또는 과실치사 혐의를 받았고, 최고 40년 형의 처벌을 받았습니다.

2009년 이후 이들 중 수감된 여성 약 39명이 석방됐으며, 16 명은 지금도 감옥에서 법이 완화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요.

[모레나 헤레라/활동가 : "이런 일을 계속 일어나도록 둘 수 없습니다. 법을 바꾸고, 법 집행을 바꿔야 하며 여전히 감옥에 있는 16명의 젊은 여성의 자유를 쟁취해야 합니다."]

이번 판결은 엘살바도르 여성들에게 너무나 가혹한 낙태 금지법이 개혁될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을 심어줬습니다.

여론 또한 성폭행 등 경우에 따라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는데요.

하지만 아직, 법 개정을 위한 실질적인 움직임으로는 이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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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8-21 10:49:15
    • 수정2019-08-21 11: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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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파도 위의 여성들'(Women on Wave)이란 글자가 적힌 이 배는 '낙태선'이라 불립니다.

네덜란드 사회단체가 운영하는 이 배는 낙태 불법국가들을 돌아다니며, 출산을 원치 않는 여성들을 돕고 있는데요.

'낙태 권리'에 대한 국제적 논란이 뜨거운 가운데, 낙태를 엄격히 금지하는 엘살바도르 한 여성의 사건이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지구촌 인에서 살펴보시죠.

[리포트]

한 손을 높이 들어 올린 여성이 엘살바도르 법원을 걸어 나옵니다.

밖에서 기다리던 지지자들은 기쁨의 환호를 보내는데요.

[에벨린 에르난데스 : "저는 결백함에도 고소를 당했기 때문에 감옥에 있는 시간이 늘 힘들었습니다. 이제 저도 감옥에 있는 젊은 여성들을 빨리 석방하기를 요구합니다."]

뱃속의 아기를 사산한 이 여성은 2017년 살인혐의로 징역 30년 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하지만, 지난 19일, 재심 공판에서 원심 판결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받았는데요.

그녀는 지난 2015년 성폭행을 당한 뒤 이듬해 배가 심하게 아파 화장실에 갔다가 아기를 사산했습니다.

과다 출혈로 의식을 잃은 뒤 응급실로 실려갔는데요.

그로부터 사흘 뒤, 태아를 살해한 혐의로 교도소로 옮겨졌습니다.

[에벨린 에르난데스 : "저는 정말 제가 임신한 것을 몰랐어요. 알았다면 (아기가 태어나길) 기쁘고 자랑스럽게 기다렸을 거예요. (어떻게 임신을 한 거죠?)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아기는 태변 흡인에 따른 폐렴으로 숨진 것으로 밝혀졌지만, 법원은 이러한 부검 결과에도 불구하고 살인 혐의를 적용해 징역 30년을 선고했습니다.

그러나 지난 2월 대법원이 고의로 태아를 해치려 했다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원심을 파기했고, 다시 열린 재판에서 33개월 만에 억울함을 풀게 된 겁니다.

[에벨린 에르난데스 : "저를 지지하기 위해 여기까지 와주신 모든 지지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무죄 판결을 기다려 온 지지자들은 거리에서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는데요.

이번 사건으로 엘살바도르의 엄격한 낙태 금지법이 다시금 세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보수 카톨릭 국가인 엘살바도르는 어떤 경우에도 낙태를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에르난데스처럼 성폭행 피해자이거나 임신 사실을 몰랐던 경우는 물론이고 근친상간으로 인한 임신, 산모의 생명이 위험에 처한 경우도 예외는 없습니다.

지난 2016년 태아에게 선천적 소두증을 유발하는 지카바이러스가 유행할 당시, 세계보건기구가 엘살바도르에 낙태 허용 범위를 확대하라고 권고했지만 당국은 이마저도 거절했습니다.

[에두아르도 안토니오 에스피노자/엘살바도르 보건부 차관/2016년 : "나라의 임신 중절에 관한 법은 매우 명확합니다. 이것은 법이며, 정부의 속한 국민으로서 우리는 이를 존중할 의무가 있으며 법을 따라야 합니다."]

엘살바도르에서는 2000년부터 2014년 사이, 147명의 여성이 유산이나 사산으로 인한 살인 또는 과실치사 혐의를 받았고, 최고 40년 형의 처벌을 받았습니다.

2009년 이후 이들 중 수감된 여성 약 39명이 석방됐으며, 16 명은 지금도 감옥에서 법이 완화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요.

[모레나 헤레라/활동가 : "이런 일을 계속 일어나도록 둘 수 없습니다. 법을 바꾸고, 법 집행을 바꿔야 하며 여전히 감옥에 있는 16명의 젊은 여성의 자유를 쟁취해야 합니다."]

이번 판결은 엘살바도르 여성들에게 너무나 가혹한 낙태 금지법이 개혁될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을 심어줬습니다.

여론 또한 성폭행 등 경우에 따라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는데요.

하지만 아직, 법 개정을 위한 실질적인 움직임으로는 이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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